Monday, April 5, 2021

주님이 부활한 날 제자들에게 일어난 변화 Three changes that happened to disciples on the resurrection day

예수님 부활한 날 일어난 제자들의 변화 요20:19-23 

예수님은 죄 없는 죄인으로 십자가 처형되고 무덤에 묻히었다. 갈릴리에서부터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도망하고 유대인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다. 마리아가 무덤에 갔다가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에게 달려가서 사실을 알리다. 베드로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가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은 확인하였으나 부활은 알지 못하고 돌아가 함께 있다. 무덤을 들여다보던 마리아가 흰옷 입은 두 천사로부터 누구를 찾는가 질문을 받고 돌아보며 부활한 주님을 만나나 동산지기인 줄로 알다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주님을 알았다. 주님과 함께 있고 싶으나 주님은 그를 보내며 제자들에게 알리라고 한다. 제자들은 여인이 허탄한 소리를 한다고만 생각하고 믿지 않는다. 여전히 두려움과 실망, 의심 가운데 있다. 천사가 말한대로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말씀하던대로 살아 나셨다. 주님은 살아계시기에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본문에 적어도 세가지 변화를 본다. 
두려움이 기쁨, 실망이 소망, 의심이 확신으로 변한다. 제자들은 두려워 문을 잠그고 있다. 부활이라는 말을 들었으나 믿지 못하고 의혹 중에 있다. 스스로는 실망이다. 주께서 평화의 인사로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다. 매우 놀란다. 유령인가 생각되기도 한다. 주님은 손과 옆구리 보이시며 십자가에 달렸던 그들의 주라는 것을 확인시키며 평화를 준다. 의심할 수가 없다. 큰 기쁨이었다.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기에 그에게 그들이 주님을 만났다고 하자 그는 믿지 못한다고 한다. 여전히 의심으로 가득하다. 주님은 그가 다른 제자와 함께 있을 때 다시 나타나셨다.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지 않고서도 그를 믿을 수가 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온다. 불신과 의혹 두려움이 변하여 기쁨과 소망, 찬양 고백으로 변한다. 이것이 기독교 역사의 현장이다. 
사울은 예수 부활 증거하는 자를 이단이라 하고 그들을 발본색원하는데 앞장 서게 되었다. 스데반을 죽이는 증인이 되고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을 체포할 권한을 받았다. 다메섹 가까이 가는 길 대낮에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비치는 가운데 주의 음성을 듣다. 그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를 만난 것이다. 그는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사울의 눈이 어두워지고 아나니아의 기도를 받으면서 그의 눈이 열리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의 삶은 변화하였다. 
내게 영혼의 가장 어둡고 답답한 시간, 1978년 3월 23일 목요일 밤에서 25일 아침 11시까지 힘들고 어려운 의혹과 불신이 내 마음을 채웠다. 강단 앞에 있는 나에게 부활의 주님이 나타나시는 것만으로 나의 삶은 기쁨과 고백으로 채워졌다. 주님이 오시면 변화가 일어난다. 두려워하던 그들에게 샬롬 평안이 임하고 기쁨 소망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제자들은 문을 잠그고 숨어 있다. 아무나 들어올 수가 없다. 그들의 마음이 닫혀 있는ㄴ 것이다. 주님이 들어오셨다. 어떻게 오셨는지는 몰라도 그는 와 계신다. 그들을 만나시더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신다. 문을 열고 그들을 내어 보내신다. 주께서 문을 열어 주신다. 닫힌 문을 여는 것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다. 주님을 무덤에 장례하고 유대인과 로마 군인은 큰 돌로 무덤을 막아 닫았다. 여인들이 새벽에 무덤을 찾아가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문의 돌을 굴려주리오! 주의 천사가 이미 돌을 옮기었다. 
무덤은 열려 있다. 주께서 무덤에서 나오기 위함이 아니라 무덤이 열린 것을 밖에서 보고 확인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무덤 안에 들어가서 볼 수 있다. 여인도 베드로 요한도 들어가 보았다. 수의와 머리를 싼 수건은 그대로 있었다. 주께서는 매미가 껍질을 벗고 나오듯이 수의에서 나온 것이다. 잠을 잘 때는 이불을 덮지만 깨어 일어나면 이불을 저치고 나온다. 더 이상 이불이 그를 누르지 못한다. 주님의 부활은 그를 수의로 묶어 둘 수 없고 무덤이 그를 덮을 수가 없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이 생명을 누를 수 없다. 무덤은 영원히 열리게 된다. 
주께서 열면 닫힌 문이 열린다. 로마는 그리스도인을 박해하고 기독교에 문을 닫으며 많은 사람이 순교하였다. 그러나 주께서 문을 열었다.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세계를 향하여 문을 열고 나간다. 제자들이 문을 걸어 잠구었지만 주를 만난 기쁨이 충만한데다 주께서 그들을 보내시니 그들은 뛰어 나간다. 가며 주의 부활을 증거한다. 그들의 증거는 주의 부활과 부활한 그가 구주라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문을 잠그고 있다. 서로 믿지 못하고 교류하지 못한다. 코비드로 인한 격리가 아니라도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인종과 계급 사이에 장벽이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교류가 없다. 주께서는 닫힌 문을 여시었다. 가난한 자 병든 자, 죄인과 세리, 이방인 세계의 문을 열었다. 그의 십자가로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이의 막힌 담을 허셨다. 부활의 주님을 경험하면 온 세계로 문이 열린다. 이것이 주께서 하시는 일이다.  

주님은 숨을 내쉬며 그들에게 성령을 받으라 하신다. 그의 숨과 성령은 같은 말이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고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 곧 하나님의 숨길을 불어 넣으니 그가 생령이 되었다. 주님의 생기는 생명을 일으킨다. 특히 주님은 부활하여 다시는 죽지 않는 생명이 되었기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숨은 하나님의 생기다. 제자들이 생명을 누리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육체적 생명이다. 중생이 필요하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나야 영적 생명을 가지게 된다. 제자들은 이제 주님이 주시는 성령으로 중생한 새로운 생명체가 된다. 나가서 부활의 증인이 될 때 사람들은 그들을 옛날의 갈릴리 사람들로 그들의 약점과 한계를 보지만 이제는 새로워진 사람이 되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으로 존경 받는 사람이나 밤에 주님을 찾아왔다. 첫 말씀이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시다. 그는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서도 그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성령으로 나야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다. 
영의 사람이 되어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수 있다. 나를 미워하고 욕하는 자, 손해를 끼치고 박해하는 자를 어떻게 하나? 피하거나 욕하고 미워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가 없다. 용서하면 평화와 자유가 있다. 주께서 하신 일이다. 십자가에서 첫 말씀은 아버지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죄 용서는 주께서 하신 첫 째 일이다. 죄인을 용서하고 받아주시기 위하여 오시었다. 그런데 죄용서가 쉽지 않기에 성령으로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가능해진다. 그 때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소서 하고 기도할 수 있게 된다. 우리 관계의 삶에는 서로 받아주고 용서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사역에 필요한 능력을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지만 먼저는 중생하여 새 사람되는데 주의 숨을 받아 성령을 받아 생명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사람이 새롭게 되고 능력을 받아야 한다. 사람이 새로워지지 않으면서 능력을 받으면 폭도가 된다. 에스겔이 경험한 골짜기에 가득한 마른 뼈에게 생기가 들어가게 하니 그들에게 살이 덮이었으나 생명의 능력이 없었기에 다시 생기가 들어가게 하니 대군이 되어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먼저 생명체가 되어야 한다. 죽음을 넘어서는 부활생명으로 새로워지는 새로운 생명이 필요하다. 제자들에게 일어난 일이다. 
베드로가 오순절 성령이 충만하여 주의 부활과 구주 되심을 전파할 때 3천명이 회개하고 주를 믿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성령이 역사한 것이다.  

이 세가지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다. 우리 힘이 아니라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이요 은혜다. 주를 믿는 자로서 이런 감격과 복을 누리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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