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이 남긴 것 What the Korean War Has Left Behind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1953년 6월25일 일요일 새벽 훈련된 북한군이 한반도 적화통일을 목표로 소련제 장갑차와 무기로 기습적인 남침을 감행하였다. 남한은 대비가 없는 상태에서 3일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파죽지세로 남쪽으로 밀렸다. 경주의 안강 전투는 대한민국이 사라질 위기였다. 놀라운 일은 전쟁 발발 10시간에 유엔안전보장이사회가 “북한군의 침략 중지와 38선 북으로 철수”를 결의하고 통보했으나 묵살당하자 6월27일 트루만 대통령이 미해공군의 한국군 지원을 명하고 6월28일 일본주재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가 내한, 지상군 파병을 요청하다. 7월7일 유엔이 “북한의 무력공격 격퇴, 국제 평화와 한반도 안정”을 목적으로 파병을 결의하고 맥아더가 참전 유엔 16개국 군사령관이 되다. 맥아더는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하고 인민군 보급선을 차단하며 북진하여 크리스마스 전에 전쟁이 끝나리라 낙관하였다. 예상 밖에 중공군의 참전과 인해전술로 밀고 밀리다가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을 하였으나 아직도 전쟁은 진행되고 있다.
동족상잔의 이 전쟁은 무엇을 남겼나? 인적 물적 정신적 막대한 손실이다. 군인 민간의 사망 부상 실종을 합쳐 230만, 북한은 290만, 이산가족 1천만과 고아, 유엔군은 미군을 포함 26만, 중공은 100만의 인적 손실을 보았다. 휴전 당시 개인 소득 67불에 국민총생산의 배가 되는 액수의 산업과 공공건물 주택이 재로 변하였다. 전쟁은 아군 아니면 원수로 양분하고 관계에 불신과 적대감을 고조한 엄청난 피해였다.
전쟁은 또한 유익을 남기기도 하였다. 한국이 없어질 위기에서 세계 평화를 위하여 5년 전 조직된 유엔의 가맹국가들이 처음으로 군대를 파견하여 한국을 도운 것은 집단 안보 정신의 발동이며 세계 평화를 함께 지킨다는 사명을 실현함으로 유엔이 신뢰를 받게 되었다.
은둔의 나라 한국이 세계에 알려지는 기회가 되었다. 전혀 모르는 나라와 사람들을 위하여 생명과 자원을 바친 이들이 관심과 사랑으로 품고 보도하며 세계인이 한국을 찾고 많은 한인도 외국으로 나가 한국과 세계가 연결되었다. 국내에는 민족 대이동으로 지역과 풍습의 벽을 넘어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를 놓았다.
은근과 끈기의 한국인은 백절불굴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잿더미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꿈과 용기, 근면과 열정으로 새롭게 시작하였다. 1953-1961년사이 미국의 23억불 원조는 한국의 재건 의욕을 활성화하고 경제성장과 세계적인 기업 육성의 토대가 되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6.25전쟁 경험 세대로 이루어진 미주 초창기 이민은 미국 이민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교육과 경제, 교회 설립과 생활안정에서 뛰어남을 보였다.
전쟁을 통하여 교회의 역할을 확인하였다. 내일이 불투명한 현실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능력을 의지하며 예배와 기도로 깨어 전능자에게 나아가고 도우심과 힘을 얻었기에 교회가 삶의 중심이 되었다. 이 믿음이 세계로 뻗어 미국 다음으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전쟁은 공산주의 민주주의 체제의 차이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한국이 해방된 때 미국과 소련이 남북을 나누어 일본인을 철수시키고 선거로 자주 한국을 만들려는데 북에서 불응하자 남한에서만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여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였다. 북한은 남침과 점령으로 그들의 실체를 보여주었고 전쟁을 통하여 중국 소련이 불화 분리하고 붕괴함으로 민주체제가 우월함을 증명하였다.
한국은 지금 누리는 부와 안정이 전쟁에 바친 생명과 물질 덕분임을 알고 겸손하게 빚진 심정으로 세계에 기여하며 감사로 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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