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19, 2021

어둠 속의 희미한 불빛

 사사기 19:16-30 어둠 속의 희미한 불빛

사사기 시대는 왕이 없어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여 어둠과 혼돈, 공허한 시대였다. 오늘 본문에는 어둠이지만 그래도 빛이 나타나 보이는 장면이 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 인이 첩을 두었다는 것 그 첩이 행음하고는 베들레헴 친가로 돌아갔다는 것은 어둠의 일이다. 레위인이 본처 이외에 첩을 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을 따라 행하는 일이다. 그 첩이 행음하였다는 것은 창기의 일을 한 것이라 스스로 집을 나간 것인지 아니면 남편이 그를 보내었는지 모르나 그 첩이 베들레헴 자기 부모 집으로 돌아갔다. 행음하고 살 수 없어 친정으로 돌아온 딸을 쫓아 내지 않고 받아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 뿐 아니라 넉 달을 지나자 그의 남편이 그를 찾아가다. 본처가 있기에 첩이 행음하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이면 그를 버릴 수도 있고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편이 하인을 데리고 그를 찾아가 그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데려오려고 하였다. 배신한 여자이지만 남편이 그를 용납하여 데리러 간 것은 어두운 밤에 보는 빛이라 할 수 있다. 그 여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환영하고 최대한 접대한다. 그가 어떻게 하였기에 딸이 행음하게 되고 결국 친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나로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텐데 그러지 않고 사위를 오래동안 접대하고 접대한다. 아름다운 관계라 본다.

5일째 되는 날에는 늦은 시간이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첩과 사환과 같이 출발한다. 해가 넘어갈 시간이 다가오니 어느 곳에서 하루 밤 유숙을 하여야 한다. 하인은 나중에 예루살렘이 되는 여부스를 제안하였으나 레위인은 이방인 지역보다는 동족의 땅을 택하자며 벤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로 들어가 성안 광장에 도착하다. 당시 여인숙이나 여관이 없는 것으로 보아 풍습은 황혼이 다가오는데 광장에 사람이 있다면 이는 길 가는 나그네라 숙소가 필요하기에 먼저 보는 사람이 숙소를 제안하게 되는데 기브아 사람은 아무도 그의 일행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들이 거리에서 노숙해야 할지 모를 형편이다. 어두운 밤이요 인심이다. 그런데 한 노인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 나그네를 만나다.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 사람인가? 에브라임 사람으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돌아가는 중인데 아무도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자가 없다. 그 말을 듣자 노인은 그를 초청한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귀와 사람을 접대하겠다고 한다. 이 나그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겠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 기브아인지 모르나 거기 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이 나그네에게는 만족이다. 그것도 기브아 본토인이 아니라 에브라임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다. 이주해 온 사람이 나그네의 형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나그네를 접대하라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음식을 대접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그것도 잠깐이다. 밖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린다. 

불량배들이 그 집을 포위하고 문을 두들긴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관계하리라 한다. 성관계를 맺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그네로 지나가는 그 남자와 관계를 가지겠다고 한다. 소돔의 모습을 여기서도 본다. 집주인 노인이 그들에게 말한다. 내 형제들아 내가 청하노니 이런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은 내 집에 들어온 손님이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그들의 하는 일을 가하다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기 집에 유하러 온 사람을 보호하려는 마음이다. 주변 사정보다 주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모습을 본다.

노인이 불량배를 당할 힘이 없다. 손님을 보호하면서 자기 딸을 대신 희생하고자 한다. 그만 아니라 나그네가 함께 온 첩도 함께 제공한다. 사실 이 여인은 많은 남자를 상대한 사람이라 그런 일에 익숙한지 모른다. 그러자 레위인은 자기의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내어 주었다. 어두운 밤, 자기 좋은대로 행하는 때에 비록 소수라 하여도 진리를 따라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그도 이주해 온 사람이다. 그의 주변은 모두 타락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망령된 일을 행하고 있지만 그는 정당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리의 사명이 여기 있다. 레위인은 자기를 보호해 주기 위하여 그 집 주인이 자기 처녀 딸을 희생하려는 것을 알고 자기 첩을 내어 놓는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레위인의 첩을 밤새껏 능욕하였다. 이 여인은 주인이 묵는 집 앞에 왔으나 문을 열 힘이 없을 정도로 문 앞에서 기진하여 죽게 되었다. 한 여인의 운명이 이렇게 끝이 났다. 귀한 딸로 태어났으나 레위인의 첩이 되고 행음을 하다가 친정에 가서 살게 될 형편이었으나 다시 남편의 사랑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이런 집단적인 치욕을 받은 후에 생명을 마쳤다.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레위인이 죽은 첩을 나귀에 싣고 가 그 시체를 열 두 토막에 내어 각 지파에게로 보낸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없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항할 힘이 없으니 당할 만큼 당하고는 그 시체를 조각내어 보내며 형편을 알린 것이다. 지파 사람들은 보지 못하던 일을 보자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였다. 결국 사연을 모두 들은 후 그 행악자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처벌하기로 결정하였다. 기브아 사람이나 기브온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거나 행악자를 내어주면 좋았겠지만 그들을 옹호하며 함께 일어나 대항하는 것이다. 악을 추궁하고 책임을 물으며 형벌하는 정당한 길을 걷는 자가 있다는 것이 희망이요 빛이다. 

벤냐민 지파가 대항하여 싸우다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도망한 600명만 남았다. 한 지파가 없어지는 지경에 빠졌다. 그러나 동맹하여 형벌한 자들이 뉘우치고 이들을 위하여 여자를 얻을 길을 제시하여 지파가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있다.

다수는 타락하고 어둠의 길을 달린다 하여도 진리와 정의를 지키는 소수가 남아 있어 이들로 역사를 이어가는 힘과 방향이 된다. 

이민으로서의 소수자, 소외와 혐오를 많이 받고 있지만 그래도 믿음과 함께 진리와 정의를 지켜 나감으로 아름다운 날을 기다린다. 사사기 다음에 나오는 룻기에서 보는 룻은 이방인이요 소수에 속한 자이지만 그를 통하여 앞으로 다윗이 나오고 예수께서 출생하는 길을 여는 조상이 일어난다. 오늘 진리를 지키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내다보며 믿음의 길 진리의 길 하나님께서 뜻하신 그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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