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기 있어 I AN Here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소월의 시 초혼의 한 구절이다. 우리 전통 상례에서 사람이 죽으면 초혼 예식으로 지붕을 향하여 이름을 세번 부르고 옷과 신을 던지며 잘 가라고 작별한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대답도 없고 돌아오지도 않는다. 나아 여든이 넘어도 여보, 응 여기 있어! 하는 것이 행복이다..
특히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응답을 받기 위함이다. 나의 할머니는 집안 곳곳에 다른 신을 모셨다. 작은 아들이 심한 병이 들어 그는 섬기던 신에게 간절히 빌었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멀리 사는 동서라 말한다. 예수 믿으면 병이 나을텐데 하는 말에 귀가 번쩍 열려 산 넘어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를 찾아가 예수를 믿고 기도하자 아들의 병이 나았다. 그가 섬기던 모든 신을 버리고 기도애 응답하신 그 분을 참 하나님으로 확인하고 마을 첫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 믿음을 내게도 전하여 주셨다.
선지자 엘리야 시대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나 바알과 아세라 같은 신을 많이 믿었다. 3년 6개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왕은 여전히 왕비와 같이 바알을 섬긴다. 엘리야는 어느 신이 참신인지 시험하자고 제안하여 바알 아세라 신을 섬기는 선지자 850명과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자기 한 사람이 갈멜산에 모였다. 제단을 쌓고 믿는 신의 이름을 불러 불을 내려 제물을 불태우는 신이 참신이라 하자고 하다. 수가 많은 자들이 먼저 불의 신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불로 응답하라고 종일 부르고 외치나 아무런 응답이 없다.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다. 엘리야가 제단에 물을 많이 붓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자 불이 내려 제단을 전부 불살랐다.
엘리야가 믿는 하나님은 여호와시다.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 자기 백성 구출의 사명을 주시자 모세는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는 스스로 있는 자라 하신다 내가 여기 있어! 하는 말이다. 어제도 오늘도 영원히 내가 여기 있어 하신다. 예수께서 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다고 하신 이름이다.
야곱은 쌍둥이 형의 장자 명분을 거래하여 빼앗고 아버지의 축복을 받고는 생명의 위협을 받자 멀리 외삼촌 집으로 도망한다. 도중에 해가 지고 돌을 베고 잠자다가 사닥다리가 하늘에 닿은 꿈을 꾼다. 꼭대기에 하나님이 서서 자기를 여호와로 알리며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고 축복하리라 하신다. 홀로 도망하는 야곱에게 조상의 하나님이 거기서 내가 여기 있어! 하신다. 야곱은 그곳을 하나님의 전 벧엘이라 이름하였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을 인격체로 처음 만나고 그 후 어떤 형편에서나 내가 여기 있어! 하시는 여호와의 인도로 나아가고 나중 이름을 이스라엘로 개명하여 오늘 나라이름이 되어 있다.
내가 여기 있어! 하나님은 인격체라로 응답하고 만나 주신다. 과거의 경험이 중요하고 미래도 크지만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기에 내가 여기 있어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관계를 맺는다. 그는 나와 함께 하여 나를 지키시고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지만 나를 통하여 자기 이름을 나타내고 참 하나님으로 인정과 예배 받기를 기뻐하신다. 이 때 그는 더욱 친밀하게 내가 여기 있어 하며 일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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