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8, 2026

공급자 하나님 God our Provider

공급자 하나님 God our Provider 마태복음 17장에 예수님과 베드로의 성전세에 관한 대화가 나온다. 베드로가 성전세 납부에 대한 질문을 관계자로부터 받았는데 예수께서 알고 세금 납부를 하게 하신다. 왕의 아들이 왕에게 세금을 내지 않듯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 집에 세금 낼 것이 없지만 세금을 내지 않으면 그것으로 책잡히고 많은 사람의 의혹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일반 사람으로 오셨기에 세상에 사는 동안은 사람의 제도를 따르는 것이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가진 분이 세금 낼 돈이 없다. 베드로에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을 보여주시는 기회로 삼고자 그에게 바다로 가서 낚시하여 처음 잡히는 고기의 입을 열면 두 사람의 셋돈이 나올 것이라 하신다.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어부로 고기 잡기에 익숙한 베드로의 기술을 사용하게 하신다. 세금은 저절로 생긴 돈이 아니라 자신이 노력하여 얻은 것으로 내게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일반 시민의 의무와 책임을 수행한다 성전세는 일반 세금과 달리 가이사의 글과 상이 있는 데나리온이 아니라 유대인이 통용하는 세겔로 하기에 고기를 잡아 입을 열면 한 세겔이 있을 것이고 그것으로 베드로와 예수님의 세금을 내라고 하신다. 예수께서 세상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공급하시는 것을 보여주신다. 많은 바다 고기 가운데 세겔을 물고 있는 고기가 얼마나 될까? 그 고기가 돈을 삼킬 수도 있고 내 뱉을 수도 있지만 이미 주께서 그 고기를 준비하여 잡히도록 하신 것이다. 우리의 머리털 하나라도 해아리는 하나님께서 직접 다스리고 공급하시는 것이다. 겨울 내내 추위에 앙상한 가지만 있던 나무에 잎이 나오고 꽃이 피는 것은 자연의 이치라 하지만 실제로 누가 계획하고 시행하는 일인가? 현대 과학이나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나의 몸과 매일의 삶에 놀란다. 몸을 움직이는 것만 아니라 배고픔을 느끼고 음식을 먹으며 맛을 알고 그것이 위장으로 내려가 소화되고 배설되는 과정을 내가 하는 것이 없다.심장이 뛰고 5장6부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다스리고 공급하는 힘으로 된다. 밤 잠자리에 들 때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다는 보장과 확신이 있는가? 경제적인 것도 마찬가지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나의 필요를 알고 때마다 채워 주신다. 학교에 장학금이 있는 것도 내가 열심히 공부하고 그 후에 기여하라는 것이다. 우리 몸의 모든 기능을 원만하게 하는 것도 건강한 활동으로 기여하며 주의 은혜를 찬송하고 섬기게 하심이다. 나의 생명과 필요를 채워 주시는 경로는 물고기나 어느 사람이나 기관이라도 모든 것의 근원과 실행의 힘은 오직 공급자 하나님에게서 온다. 이번 이란 전쟁에 참가하던 비행기가 방공망에 걸려 바위산에 떨어졌다. 조종사는 탈출하였지만 뒷자리에 탑승한 대령 장교는 떨어지고 이란군인은 그들을 잡고자 한다. 미국 특수부대가 이들을 교란하며 장교의 구출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트럼프대통령은 다른 일을 제쳐두고 상황실에서 작전이 완수될 때까지 지켜보았다. 미국은 한 사람도 뒤에 남기지 않는다는 원칙아래 그를 지 보호하고 정보를 제공하며 구출하는 과정을 보며 미국 군인만 아니라 미국 시민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한 나라가 자기 국민을 그렇게 지킨다면 하나님은 자기 사람을 얼마나 더 지키며 모든 것을 공급하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로 그의 보호를 받으며 평생토록 모든 것을 공급받은 것은 나만 아니라 그의 모든 자녀가 누리는 특권이기에 자랑스럽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한다. God Our Provider In Matthew 17, there is a conversation between Jesus and Peter concerning the temple tax. Peter is asked by the collectors whether Jesus pays the temple tax, and Jesus, knowing what had happened, instructs him to pay it. Just as a king’s son does not pay taxes to his own father, the Son of God should not have to pay tax in His Father’s house. Yet if He did not pay, it would become a cause for accusation and raise suspicion among many people. Although He was the Son of God, He came into the world as an ordinary man, and while living in this world He followed human institutions. The One who possesses heaven and earth had no money with which to pay the tax. Jesus used this as an opportunity to show Peter how God provides. He told him to go to the sea and cast in a line. When he opened the mouth of the first fish he caught, he would find enough money to pay the tax for both of them. There may have been other ways, but Jesus chose to use Peter’s own skill, since he was a fisherman familiar with catching fish. The tax was not to be paid with money that appeared by itself, but with something gained through Peter’s own effort. Though God’s people, we still fulfill the duties and responsibilities of ordinary citizens. The temple tax was different from ordinary taxes. It was not paid with a denarius bearing Caesar’s image and inscription, but with the shekel used among the Jews. Therefore Jesus said that when Peter caught the fish and opened its mouth, he would find one shekel there, enough to pay the tax for both Peter and Jesus. In this, Jesus showed that He rules over and provides all things in the world. Among the countless fish in the sea, how many could there be with a shekel in their mouths? That fish might have swallowed the coin or spit it out, but the Lord had already prepared that fish so that it would be caught. God, who numbers even the hairs on our heads, personally rules over and provides for us. Throughout the winter, a tree may stand with nothing but bare branches in the cold. Then leaves appear and flowers bloom. We say that this is simply the order of nature, but who actually plans and carries it out? Can modern science or artificial intelligence accomplish such a thing? I am amazed at my own body and my daily life. I do not make myself feel hunger, eat food, taste it, send it down to my stomach, digest it, and eliminate it. I do none of these things. My heart beats, and all the organs of my body carry out their work, not because I command them, but because the Lord rules and provides the power for them. When you lie down to sleep at night, do you have any guarantee or certainty that you will rise the next morning? The same is true economically. When I look back on my life, I see that God knew my needs and supplied them at the right time. The scholarships available at school are there so that I may study diligently and later contribute to others. The proper functioning of every part of our body is also meant so that we may live actively, serve others, praise the grace of the Lord, and minister in His name. The channel through which my life and needs are supplied may be a fish, a person, or an institution, but the true source and power behind everything come only from God our Provider. During the recent war with Iran, an aircraft participating in the conflict was hit by air defenses and crashed into a rocky mountain. The pilot escaped, but the colonel sitting in the rear seat fell behind, and Iranian soldiers tried to capture them. While American special forces distracted the enemy and carried out the rescue mission, President Trump set aside everything else and remained in the situation room until the operation was completed. Seeing how the United States, under the principle of leaving no one behind, protected him, provided intelligence, and carried out the rescue made me proud not only of American soldiers but also of being an American citizen. If a nation protects its citizens in such a way, how much more will God protect His own people and provide all things for them? To be a child of God, protected by Him and supplied with all things throughout life, is a privilege enjoyed not only by me but by all His children. For this I am proud, grateful to the Lord, and offer Him praise.

Tuesday, April 7, 2026

부활이 없다면 If Hesus was not Risen

부활이 없다면 시카고 기독교 방송 설교 고전15:17 안녕하셔요 시카고 은퇴목사회 소속 이종형 목사입닌다 지난 4월 5일은 한국의 식목일로 생명을 심고 기르는 날이며 교회의 가장 큰 절기 부활주일이라 주님의 생명 축복이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지난 겨울이 참으로 춥고 길었지만 봄이 오니 만물이 소생하여 나무마다 싹과 잎이 나오고 아름답게 꽃이 피고 있다. 봄이 되어도 싹이나 잎이 피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나무다. 겨울 동안 모든 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있을 때는 모두가 죽은 것 같으나 봄이 되자 죽은 것과 산 것이 구분되고 나타난다. 사람이 잠을 잘 때는 활동을 멈추고 죽은 것 같다.저녁 잠자리에 들 때 내일 아침 일어난다는 보장과 확신이 있나? 내 친구 중에 두 사람은 아침에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산 자와 주은 자가 아침에 구분된다. 잠자는 것은 죽음과 같고 또 죽은 것을 자는 것이라 한다.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께서는 그가 잠들었기에 내가 깨우러 간다고 하시며 가서 죽어 4일이 되어 무덤에서 냄새가 나는 형편인데도 나사로를 불려 내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로마 군인들이 그의 죽음을 확인하고 허락하여 아리마데 요셉은 그를 돌무덤에 장사하였다. 그는 다시 살아 부활하셨다. 죽은 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 나나? 죽으면 그만이다 하는 자가 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하나님처럼 살게 되어 있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죄를 범함으로 생명에서 떠나 죽음에 이르고 흙으로 돌아간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죄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에 죽지 않은 사람이 없다. 죽으면 끝이 아니라 죄의 심판을 받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이요 공의이지만 하나님은 또한 사랑이시라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 주시기를 원한다. 이를 위하여 스스로 몸을 입고 아들 예수로 오셨다. 예수님은 사람이지만 죄가 없는 유일하신 분으로 그가 오신 것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함이다. 구원은 굶주린 자를 먹이고 병든 자를 고치는 일이지만 결국 죄로 인하여 죽기에 그 죄를 대신하여 죄 없으신 예수께서 대신 죽어 사람을 살리는 대속을 하심이다. 대신 죽는 것은 좋으나 그도 죄가 있으면 자기 죄로 죽어야 하는 것이기에 남의 죄를 대신하여 죽는 것은 효력이 없다. 누구나 죽으면서 너를 대신하여 죽는다고 하는 것과 같다. 대신하여 죽으면 상대방은 죽지 않아야 하는 것이다. 내가 참으로 남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려면 죄가 없어야 하고 죄가 없는 것은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증명하게 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오신 목적은 바로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어 죽으시고 죽는 죄인을 살리기 위함이다.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고 3일만에 살아난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을 확인하고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는 말씀하신 대로 3일만에 살아나고 무덤은 비어 있고 살아난 그는 제자들을 만나 함께 음식을 나누기도 하였다. 그러나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의 개신교 주류교단 목사 가운데 예수님의 육체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가 35% 된다는 조사가 있다. 지금이나 옛날이나 죽은 자가 다시 산다는 것을 믿는 것은 참으로 어렵기에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교인들에게 예수께서 부활하신 증거를 여러가지로 말하고 만인 그리스도께서 죽은 후 다시 살아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 예수께서 거짓말하신 분이 된다. 살아난다고 하였는데 살아나지 않으면 거짓말이다. 그는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분으로 천지는 없어지나 내 말은 일점 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리라 하셨는데 그가 죽어 3일만에 부활한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의 말은 진실이 아니다. 그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는 일반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도 자기 죄로 죽은 것이라 우리의 구주가 될 수 없다.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것인데 그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 동시에 바울이나 믿는 사람들이 전도하며 선교하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시간과 정력 낭비요 소용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부활이 없고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끝이 난자면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 가운데 가장 불쌍한 자라고 말한다. 많은 봉사와 헌신을 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요 불쌍한 일다.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는 더 이상 살아있지 않기에 우리는 그를 만날 수 없고 그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게 되지만 그가 부활하여 살아 계시기에 그는 우리를 만나 주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 나의 할머니는 100여년 전 한국의 전통을 따라 많은 신을 섬겼다. 둘째 아들이 병들었으나 당시 의사나 약이 개발되지 못하여 재래적인 방식으로 긋을 하고 그가 섬기는 많은 신에게 빌고 공을 드렸지만 효과가 없었다. 멀리 있는 친척이 예수 믿으면 병이 나을텐데 하는 말을 듣고 멀리 교회를 찾아 예수를 믿고 기도하자 병이 나았다. 예수께서 참신이라고 알고 모든 잡신을 버리고 예수님만 믿고 섬기며 우리 지역 신앙 조상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자 나를 믿음의 사람으로 양육하였고 나도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그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그는 나의 삶을 바꾸어 주셨다. 나는 법대에 가는 준비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말씀하신다. 종형아 너 법대에 간다고 물으신다. 사람이 보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주님인 것을 알았다. 예 그럽니다. 법대에 가면 무엇하는데? 물으신다. 훈련하여 결국 판사가 되겠지요 하다. 판사는 무슨 일을 하는데? 물으신다. 판사는 송사가 있을 때 양쪽 말을 다 듣고 심리하여 바르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것 아닙니까 하였더니 그래. 판단하는 일은 내게 맡기고 너는 나의 사랑을 전하면 어떻겠어? 하신다. 나는 알겠겠습니다 하였다. 그 후 주의 사랑을 전하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복사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그가 죽음으로 끝이 났으면 나를 만나 말씀하지도 않고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그는 살아 계시기에 나를 만나 말씀을 나누며 지금까지 나의 삶을 인도하시며 나의 모든 것을 돌보아 주신다. 그가 죽음으로 끝나고 더 이상 살아 계시지 않다면, 만일 주께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평생 삶을 주께 헌신한 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겠지만 그가 살아서 나와 함께 하고 인도하시기에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복이 많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감사한다. 예수께서 죽음으로 끝이 났다면 그를 따르던 수많은 사람들이 실망과 좌절로 끝났을 것이고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두려움과 실망에 갇혀 있는 제자들을 만나시고 실망하여 시골 고향으로 돌아가는 제자들을 만나 확신과 힘을 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하셨다. 예수와 그의 부활을 전하는 자들을 이단 사회약이라 생각하여 그들을 찾아 고발하고 죽게 하던 사울을 주께서 만나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물으시자 사울은 놀라움으로 변하여 바울로이 되고 복음 전파자로 많은 교회를 설립하고 서신을 기록하여 오늘 우리가 읽으며 또한 살아계신 예수님을 경험하게 하였다. . 예수님을 죄인으로 십자가에 처형하고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던 로마의 한 황제를 주께서 만나심으로 그가 변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고 나중에는 국교가 되고 로마는 캐톨릭 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살아계신 예수께서 하시는 일이다. 해적으로 약탈하며 살던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이 부활하신 주를 만나자 변화가 되어 세상을 섬기는 나라가 되고 가난과 전쟁으로 시달리는 한국을 찾아 을지로 6가에 병원을 지어 무료로 진료하며 그곳에서 수술 받고 살아난 한 처녀가 나의 아내가 될 줄을 어찌 상상이나 하겠나?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산하여 죽으셨으나 부활하여 살아 계심으로 나의 구원을 완성하시고 나를 인도하며 살피고 활동하시니 그를 찬양한다. 이 방송을 들으시는 분 중에서 아직 주를 믿지 않는 분이 계신가요? 어떤 인생의 문제나 아픔이 있는가요? 살아 계신 주님을 찾으시면 그가 만나 주신다. 그를 만나면 내 삶은 바뀌고 새로워진다.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 목사님의 지도를 받아 주님을 구주로 믿고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보장 받고 이 세상에서 주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고 축복의 삶을 살다가 이 세상 삶이 끝날 때 주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기뻐하며 사는 것이 삶의 가장 큰 축복이 아니겠나?. 주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Saturday, April 4, 2026

t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 The Darkest Hour of Life

삶의 가장 어두운 시간 The Darkest Hour of Life 메시아로 인정되던 나사렛 예수께서 많은 사람의 기대와 소망을 외면하듯 수난 주간 금요일 십자가에 처형되고 바위에 판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를 따르던 사람에게 는 삶이 무너지는 좌절과 어둠이지만 종교지도자에게는 도전자를 제거한 쾌거이면서 불안이다. 그가 3일에 살아난다고 하였기에 부활을 믿지 않으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가고 살아났다고 하면 더 큰 혼란이 올 것이라 하며 경비병을 세워 무덤을 굳게 지키게 하였다. 주의 제자들은 그들도 잡힐까 두려워 한 곳에 모여 문을 닫고 숨어 있다. 갈릴리에서 기대를 걸고 따라온 사람들은 실망하여 돌아간다. 사람은 누구나 죽으면 삶은 끝나고 어둠으로 들어간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사람이기에 죽어 어둠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의 생애와 행한 모든 일은 역사에 들어가고 그의 삶은 끝이 났다. 그를 사랑하고 따르던 사람에게는 정말 절망이요 어둠이다. 빛이 끄진 어둠과 혼돈과 공허가 가득하여 사탄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며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킨다. 조선이 한 때 은둔의 나라라 불리며 외부 세계와 담을 쌓고 일반 백성은 까막눈, 정치는 당쟁과 반란의 연속이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어둠에서 빛을 찾는 자가 있다. 선교사들이 찾아 온다. 포교가 금지이기에 학교와 진료소를 설립하고 어린이와 여인들의 눈을 뜨게 하고 병자를 치료하며 개화의 희망을 전하다가 때가 되어 교회를 설립하여 빛과 생명이신 예수를 소개하고 받아들여 나라가 열리고 빛으로 일어나며 어둠을 벗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 무덤에 있는 토요일은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날이지만 빛의 기대가 있다. 예수께서 죽고 3이만에 살아나리 하신 말씀이다. 살아나지 못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요 일반 인간에 불과할 것이다. 그의 말이 이루어지더라도 2일 토요일은 그가 무덤에 있는 날, 세상은 불 끄진 창과 같이 어둠 뿐이다. 교회와 십자가를 제거한 북한 중국 이란이 그러하다. 대동강 양각도 호텔에서 내려다 보는 평양의 밤은 옛 수풍댐의 넘치는 전기는 사라지고 어둠 뿐이며 억압과 찬탈 속에 신음하는 백성의 신음이 물결친다. 공산 사회주의 중공의 획일성, 신정정치 이란 백성의 종노릇은 어둠 자체라 본다. 천지가 어둠에 덮인 때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고 만물과 사람을 만들어 생명을 누리게 하셨다. 어둠은 죽음이지만 빛은 생명이요 예수께서 생명이요 빛이시라 그가 오시면 어둠이 걷힌다. 나에게 가장 어둔 영혼의 밤이 있었다. 뉴욕 올바니에서 예정에 없던 목회를 하며 48년 전 1978냔 사순절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아내는 집에서 나는 교회에서 열흘 금식을 하면서 수난주간 목요일에 교회가 모여 예수님의 세족식을 행하고 성찬식 말씀에서 권정생의 어린이 동화 강아지 똥 이야기를 나누었다. 담장 밑에 버려진 강아지 똥이 풀어지고 녹아지며 옆에 민들레를 자라고 꽃피게 한다는 것으로 예수님이 몸과 피를 주심으로 우리가 살고 믿음이 꽃 피고 열매 맺는것 이 감사하다고 하다. 예배 후 아내를 집으로 데리고 가는 차에서 경건한 예배에서 무슨 추한 예화인가며 나를 핀잔하고 집에 들려 샤워라도 하고 교회로 갈까 하는 나를 문 앞에서 돌려보내며 더 기도하라고 한다. 내 마음은 내려 앉고 어둠이 몰려 왔다. 성금요일 3월24일은 내 생의 가장 어두운 영혼의 밤이었다. 기도가 되지 않고 삶의 힘도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토요일이면 주일 주보를 만들고 준비하는 날이다. 컴퓨터가 없던 때라 내가 타자기로 원지에 찍어 한 장 한 장 밀어서 프린트를 한다. 내가 금식하는 것을 아는 스톤 킹 목사가 아직 금식하는가 묻고는 찾아왔다. 같이 본당에 들어가 앉다. 말을 나누거나 같이 기도하는 것도 아니고 나의 마음은 어둠이다. 내가 강대상 쩍으로 눈을 돌리는데 그곳에 예수께서 인자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계신다. 순간 나를 덮어 누르던 어둠은 사라지고 빛과 기쁨 감사가 솟아오른다. 가장 어두운 시간에 주께서 빛으로 찾아오시고 나의 모든 것이 변하고 가장 큰 축복의 부활주일 아침을 맞았다. 주께서 무덤에 계신 그날 토요일은 역사의 가장 어두운 날이지만 하나님은 부활이라는 새로운 사건의 빛을 준비하신다. 삶이 어떤 어둠에 눌려 있는가? 새벽이 더욱 어둡듯이 어둠이 짙을수록 빛의 새벽은 가까이 있다. 세상의 빛이요 생명이신 주님은 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신다. 어둠에서 눈을 들고 다가오시는 주님을 바라 볼 수 있을까? 오늘 주님은 나를 만나고자 찾아오심을 알고 기대할 수 있을까? 실망하여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사람을 만나신 주님은 오늘 우리를 만나 주신다. The Darkest Hour of Life Jesus of Nazareth, who had been acknowledged as the Messiah, seemed to turn away from the expectations and hopes of many people. On Friday of Holy Week He was crucified and buried in a tomb cut out of rock. For those who had followed Him, it was a collapse of life itself, a time of despair and darkness. But for the religious leaders, it was both a triumph and a source of anxiety: they had removed the challenger. Because Jesus had said that He would rise again in three days, they feared what might happen. They did not believe in the resurrection, but they worried that if His disciples stole the body and claimed He had risen, even greater confusion would follow. Therefore they posted guards and secured the tomb. The disciples of Jesus hid together behind locked doors, afraid that they too might be arrested. Those who had followed Him with great expectation from Galilee returned home disappointed. For every human being, when death comes, life seems to end and darkness takes over. Though Jesus was the Son of God, He was also truly human. He died and was laid in the darkness of the tomb. His life and all that He had done seemed to pass into history. To those who loved Him and followed Him, it was utter despair and darkness. The light had gone out; darkness, confusion, and emptiness filled everything. Satan seemed to sing a song of victory, stealing, killing, and destroying. Korea was once called the “Hermit Kingdom,” cut off from the outside world. Ordinary people were uneducated, and politics was filled with endless factional conflict and rebellion. Yet even in such darkness there were those who searched for light. Missionaries came. Because preaching the gospel was forbidden, they first established schools and clinics. They opened the eyes of children and women, cared for the sick, and brought hope for a new and enlightened future. In time they established churches, introduced Jesus, who is the Light and the Life, and people accepted Him. The nation began to open, to rise into the light, and to come out of darkness. The Saturday when Jesus lay in the tomb was the darkest day in history, yet there was still the expectation of light. Jesus had said that He would rise again after three days. If He did not rise, He would have been a liar and nothing more than an ordinary man. Yet even if His words were true, Saturday—the second day—was still the day He remained in the tomb. The world seemed like a house with all its lights extinguished, filled only with darkness. North Korea, China, and Iran, where churches and crosses have been removed, seem like this. Looking out over Pyongyang at night from the Yanggakdo Hotel on the Taedong River, the abundant electricity once supplied by the Supung Dam is gone, and only darkness remains. The cries of people groaning under oppression and exploitation seem to fill the air. The uniformity of communist China and the theocratic rule that keeps the people of Iran in bondage appear to be darkness itself. When the heavens and the earth were covered with darkness, God created light and then created all things and human beings so that they might enjoy life. Darkness is death, but light is life. Jesus is the Life and the Light, and when He comes, the darkness is driven away. There was also a night of deepest darkness in my own soul. Forty-eight years ago, during Lent in 1978, while unexpectedly serving in ministry in Albany, New York, I wanted to share in the suffering of Christ. My wife fasted at home, and I fasted at church for ten days. On Thursday of Holy Week, the church gathered for the foot-washing service of Jesus and the Lord’s Supper. During the message I shared the children’s story “Puppy Poop” by Kwon Jeong-saeng. In the story, a piece of dog droppings discarded beside a wall dissolves into the ground and helps a dandelion grow and bloom. I said that just as Jesus gave His body and blood so that we might live, our faith also blooms and bears fruit because of Him. After the service, while driving my wife home, she criticized me, saying, “How could you use such an ugly illustration in such a sacred service?” I thought perhaps I should stop at home, take a shower, and return to church, but at the door she sent me back and told me to pray more. My heart sank, and darkness came over me. Good Friday, March 24, became the darkest night of my soul. I could not pray, and I felt the strength of my life draining away. Saturday was the day to prepare the Sunday bulletin. This was before computers, so I typed the master copy on a typewriter and printed each page one by one. Pastor Stone King, who knew I was fasting, asked whether I was still fasting and then came to visit me. We sat together in the sanctuary. We did not speak much or even pray together, and my heart was still full of darkness. Then I turned my eyes toward the pulpit, and there I saw Jesus, looking at me with kindness. In that moment, the darkness that had been crushing me disappeared. Light, joy, and gratitude flooded into my soul. In the darkest hour, the Lord came to me as light. Everything in my life changed, and I welcomed the Easter morning of resurrection as the greatest blessing. The Saturday when the Lord lay in the tomb was the darkest day in history, yet God was preparing the light of a new event—the resurrection. What darkness is weighing upon your life? Just as the hour before dawn is the darkest, the deeper the darkness, the nearer the dawn of light. The Lord, who is the Light of the world and the Life, is preparing to meet us. Can we lift our eyes in the darkness and see the Lord coming toward us? Can we believe and expect that today the Lord is coming to meet us? The Lord who met the two disciples on the road to Emmaus when they were walking away in disappointment still comes to meet us today. est

Tuesday, March 31, 2026

호산나 Hosanna

호산나 Hosanna 예수께서 마지막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 주께서 로마를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세울 것으로 기대하고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그의 좌우에 앉게 하여 달라고 부탁하고 많은 사람이 새로운 날을 기대한다. 그는 정복자의 군마를 타지 않고 짐을 나르며 섬기는 나귀를 타고 가신다. 능력의 주 예수께서 오시기에 군중은 큰 기대감으로 그들의 겉옷을 벗어 나귀 안장으로 하고 길에 펴고 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거나 땅에 펴고 크게 환영하며 호산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친다. 호산나는 우리를 구원하소서 의미다. 시편 118:25여호와여 우리를 구하소서에서 보듯이 예수님을 다윗 같은 왕, 구원자로 인정하고 구원을 요청한다. 군중이 원하는 구원은 무엇일까? 로마의 억압과 찬탈 정치 세력에서 구원하소서. 가난과 질병에서 구원하소서. 그들이 겪는 현실 고통에서 구하여 달라는 외침이고 동시에 그를 그들이 기다리는 다윗 같은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님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무화과 나무에 열매가 없다고 저주하여 마르게 하고 성전에 들어가 환전상의 상을 뒤집어 엎고 비둘기 파는 자들을 쫓아내며 기도하는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등다고 지도자를 책망하며 성전을 청결한다. 군중과 제자들의 기대에 완전히 어긋나고 종교 지도자에게는 질서 파괴자로 나타난다. 위기를 만나면 능력을 보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룟 유다는 종교 지도자를 찾아 스승을 넘겨 주겠다며 돈을 받고 앞장 서서 주를 체포하게 하여도 주님은 아무 힘을 나타내지 않는다. 죽어도 주를 떠나지 않겠다 장담하던 베드로는 어린 여자 앞에서도 예수를 모른다고 공개적으로 거듭 말한다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은 사형에 해당하는 신성모독 죄로 유대 종교재판은 단정하나 사형 언도 권한이 없기에 로마 법정에 고발한다. 총독이 심문하나 그에게 아무런 죄를 찾지 못한다고 하자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은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부르짖는다. 법보다는 민중의 소리에 눌려 총독 빌라도는 십자가 처형을 언도한다. 예수께서 아무런 저항이나 능력 행사가 없다. 기대 속에 주를 배반한 유다는 받은 돈을 돌려주며 취소 청구를 하나 이미 끝난 일이다.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의 실망은 그를 처형하라로 변하고 군중의 힘을 얻은 종교 지도자는 권위 도전자를 제거하는 기회로 삼는다. 호산나 실망은 십자가 처형으로 나아간다. 호산나는 주의 오신 목적을 선포한다. 그에게는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구하소서 외침이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고 그곳에 가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며 떡을 자기 몸이라 잔을 자기 피라며 먹고 마시라 허시고 기도하는 가운데 잡힌다. 유월절 양을 잡는 날 그는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고 피를 흘린다. 그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어린양으로 죽으며 다 이루었다 하신다. 어린양의 피를 문에 바른 집은 죽음이 지나가듯 예수의 피를 마음에 받은 자는 죽음을 벗어나 생명을 얻는다.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죄와 죽음에서 구원을 얻는다. 신분이나 소유에 상관 없이 사람이면 누구나 겪는 죄와 죽음의 억압에서 구하여 달라는 호산나에 응답할 이는 오직 예수님 한분이다. 그는 죽음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고 부활로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신다. 나는 어떤 구원을 바라며 호산나 하는가? 예수님만이 나의 영원한 구주임을 확인하며 영접하고 그를 찬양하며 높인다. Hosanna Jesus set out for Jerusalem in order to complete His final mission. People expected that He would drive out Rome and establish a new kingdom. The brothers James and John even asked that they might sit at His right and left, and many looked forward to a new day. Yet He did not ride the warhorse of a conqueror. Instead, He rode a donkey, an animal that carries burdens and serves. Because the Lord Jesus, the Lord of power, was coming, the crowd was filled with great expectation. They took off their outer garments and placed them on the donkey as a saddle, spread them on the road, waved palm branches, and laid them down before Him. Welcoming Him with loud cries, they shouted, “Hosanna! Hosanna to the Son of David!” Hosanna means, “Save us, we pray.” As seen in Psalm 118:25, “O Lord, save us,” they recognized Jesus as a king like David, a savior, and asked Him for deliverance. What kind of salvation did the crowd desire? “Save us from the oppression of Rome and from those who have seized political power. Save us from poverty and sickness.” Their cry was for deliverance from the suffering of their present reality, while at the same time they praised Him as the great leader they had been waiting for, another David. When Jesus arrived in Jerusalem, however, He did not meet their expectations. Instead, He cursed a fig tree because it had no fruit, and it withered. He entered the temple, overturned the tables of the money changers, drove out those who sold doves, rebuked the leaders for turning a house of prayer into a den of thieves, and cleansed the temple. This was completely contrary to the expectations of both the crowd and the disciples, and to the religious leaders He appeared to be a disturber of order. Thinking that Jesus would surely display His power when He faced danger, Judas Iscariot went to the religious leaders and offered to betray his Master for money. He led them to arrest the Lord, but Jesus showed no power at all. Peter, who had boldly declared that he would never leave the Lord even if he had to die, openly denied Jesus again and again, even before a young servant girl. The Jewish religious court concluded that Jesus’ claim to be the Son of God was blasphemy deserving death. Yet because they did not have the authority to carry out an execution, they brought Him before the Roman court. The governor examined Him and declared that he could find no fault in Him. But the crowd that had cried “Hosanna!” now shouted, “Crucify Him!” Pressured more by the voice of the people than by justice, Governor Pilate sentenced Him to death on a cross. Jesus offered no resistance and displayed no power. Judas, disappointed because the Lord had not fulfilled his expectations, tried to return the money and cancel what he had done, but it was already too late. The disappointment of the crowd that had shouted “Hosanna” turned into the cry, “Crucify Him!” And the religious leaders, empowered by the crowd, used this as an opportunity to remove one who challenged their authority. The disappointment of “Hosanna” led to the crucifixion. Yet “Hosanna” truly proclaims the purpose for which the Lord came. To Him it means, “Save us from sin and death.” Jesus went to Jerusalem, for as the prophet said, no prophet can perish outside Jerusalem. He shared the Last Supper with His disciples, saying that the bread was His body and the cup was His blood, telling them to eat and drink. While He prayed, He was arrested. On the day the Passover lamb was slain, He was put to death on the cross and shed His blood. He died as the Lamb who saves His people and declared, “It is finished.” Just as death passed over the houses whose doors were marked with the blood of the lamb, so those who receive the blood of Jesus into their hearts escape death and receive life. Whoever believes in Him receives salvation from sin and death. Regardless of status or possessions, every person suffers under the oppression of sin and death. The only One who can answer the cry of “Hosanna—save us!” is Jesus alone. Through His death He saves us from sin, and through His resurrection He saves us from death. What kind of salvation am I seeking when I cry, “Hosanna”? I affirm that Jesus alone is my eternal Savior. I receive Him, praise Him, and exalt Him.

Saturday, March 28, 2026

주의 말씀에 이끌리어 Led by the Word of God

주의 말씀에 이끌리어 Led by the Word of God 오늘의 양식에서 시편 119:49-54 말씀을 읽으면서 이는 나의 경험을 그대로 복사하듯 표현하고 있음을 알았다. 49절에 주께서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잊었기에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억한다는 말이라 본다.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내가 1963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고향 부모님 곁으로 갔을 때는 폐결핵 중증으로 당시에 치료 약이 몇 가지 있으나 치료의 확인은 없는 상태였고 그 병이 사람을 아주 피곤하고 힘이 없게 하다가 죽음에로 몰고 갔다. 학교 교사로 발령 받을 수 없고 군에 입대할 수도 없어 병자로 집에 머무는 것이 부모님에게 무거운 짐이었고 믿지 않는 이웃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길은 나를 멀리 마산 바닷가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었다. 3월 어느 날 병원으로 들어가는 길은 검은 석탄재로 덮여 있으나 주변은 벚꽃이 만발하여 대조되는 아름다움이었다. 시간이 늦어 입원 수속을 못하고 하루 저녁 여인숙에 머물러 있었다. 부모님은 희망을 가지고 나를 그곳으로 보냈으나 나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다. 차라리 집을 떠나 멀리서 죽으라는 느낌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는 나에게 주께서 말씀을 주신다. 시편 118:17,18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하신다. 죽으러 온 나에게 죽지 않고 산다 말씀하신다. 믿어지지 않는다. 아무런 희망도 힘도 없이 죽음을 기다리는 나에게 죽지 않고 산다는 것처럼 좋은 소식이 어디 있으라만 믿어지지 않는다. 산다고요? 이 몸으로 살아서 무엇한단 말입니까? 대답하신다.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한다는 것이다.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알리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왜 이런 병에 걸려야 해요? 하나님이 너를 심히 경책하시나 죽음에는 붙이지 않으셨다 대답하신다. 내가 너무나 놀랐으나 이 말씀을 받아들이니 주의 일을 위하여 그가 나를 책임지신다는 생각과 함께 마음에 감사와 기쁨이 올라온다. 다음 날 입원하며 기쁨과 다 나았다는 확신과 함께 소망이 부풀었다. 6명이 한 방에 머물고 다른 이들은 주로 부산지방에서 온 부자들이나 나는 가난한 시골 총각으로 아무런 힘이 없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며 병원에서 주는 밥을 먹고 규정 대로 안정시간을 지키며 간호사의 약배달을 받아 먹는 것이고 자유 시간도 가진다. 언덕위에 있는 교회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새벽이면 홀로 가서 하나님 앞에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다. 어떤 기도를 하였는지 기억이 되지 않지만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주 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말씀을 읽고 묵상하였다. 기도하던 가운데 후에 다른 편에 기도하러 온 여성이 있어 때로는 그에게 다가가 말씀을 읽어달라고 하고 함께 기도하기도 하였는데 그가 후에 나의 아내가 될 줄을 누가 알았겠나! 50절에 그 말씀이 고난 중의 나에게 위로가 되고 나를 살리셨다고 고백한다. 의료와 요양 도움으로 객담과 사진이 음성으로 확인하고 7개월 후 퇴원하고 지금까지 병원에 다시 갈일 없이 건강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하신 일이다. 51,2절에 교만한 자들이 조롱하나 주의 말씀이 위로가 되고 그 말씀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하듯이 사람들이 많은 조롱을 한다. 예수 믿는 자가 대학을 졸업하고 병이 들어 죽어가고 있다고 조롱도 있고 나중 목사가 되어 이민교회 목회할 때도 여러 사람으로부터 아픔과 고난을 있었지만 주께서 위로하고 이길 수 있게 하셨음을 감사한다. 주께서 나의 위로와 힘이 되시고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말씀이 나의 노래가 되었기에 밤이나 낮이나 주께서 나의 모든 것이요 지금도 주의 말씀이 나의 전부라 할 정도로 주님과 그의 말씀이 나의 소유요 중심인 것을 고백한다. 내가 2006년 은퇴와 연결된 안식월을 맞아 이제는 자유롭게 마음껏 여행하며 즐기고 살자고 아내와 말하고 여행하며 한달 후에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일어나 견디지 못하고 의사를 찾았다. 싱글 대상포진으로 약이 없어 아플 만큼 아파야 한다고 한다. 평생 감기 정도를 앓으며 고통을 모르고 지나다가 만난 극심한 고통이라 한 달을 견디다가 하나님께 어떻게 된 것입니까 묻다. 뭐라고 마음대로 자유롭게 놀러 다니겠다고? 40년간 하였으면 되지 않나요? 뭐라고, 나와 약속한 것 기억하지 않나? 잊고 있던 43년전 죽음의 자리에서 주신 말씀을 기억하게 하신다. 주님 잘못했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 대화는 끝이 났다. 다음 날 미네소타에서 임시목사로 오라는 요청이 왔다. 하나님의 시간 계획이다. 미네소타에 처음 도착한 금요일 저녁 장로님 댁에 모인 10여 장로님 가족들과 함께 지나며 평생 웃은 것보다도 더 많은 웃음과 폭소를 가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 속에 그동안 쌓여 있던 모든 아픔 덩어리가 모두 씻겨 나가고 참 자유와 평안 기쁨이 찾아왔다. 가장 행복하고 자유로운 1년의 목회가 되고 그 후 목사가 공석일 때 두 번을 더 섬기고 디트로이트와 해리스버그에서 임시목사,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2년반을 지나며 의과대학 설립을 돕고 의사 후보생을 예수 제자 만드는 일에 헌신한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 이행이라 주께서 힘과 소망을 주시고 기쁨과 자유 평안을 주신 결과다. 나는 일하며 행복하고 팬데믹 직전 루마니아와 근방 여러 나라를 방문하여 즐거움으로 말씀을 전하고 남선은 찬양으로 주께 영광 돌리고 이제는 딸들 옆으로 와서 주의 하시는 일을 글로 써서 나누는 것이 나의 삶이요 사명이다. 주님과 그의 말씀이 나의 소유요 전부임을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한다.

Thursday, March 26, 2026

생명과 소유 Life and Possessions

생명과 소유 Life and Possessions 사람이 살기 위하여 기본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다. 먹고 입고 사는 곳이다. 무엇을 먹는가 어떤 옷을 입고 어디에 사는가 하는 것은 개인에게 필요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나타나는 그의 가치로 본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에 치중하기에 유행에 민감하고 아이들도 아파트의 평수를 말하고 이로서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자 한다. 그것만 아니라 학력이나 직업도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의 가치관이나 생명 자체는 별로 생각하지 않고 나타난 소유가 생명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된다. 생명은 내가 일해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모님을 통하여 허락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인 하나님이 책임지고 돌볼 것이다.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보라 이들을 돌보시는 하나님은 천합보다 귀한 우리의 생명을 돌보지 않겠는가!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내게 이를 알게 하셨다. 아는 이 아무도 없는 미국에200불을 들고 유학하고 교회의 청빙을 받을 때 사례를 묻지 않았다. 교인들이 먹으면 나도 먹을 것이라는 생각이었고 다시 공부를 계속할 때 아무 돈이 없었지만 아내가 직장을 잡기까지 한달 동안 매주 한 번 문 앞에 식품이 놓여 있었다. 은퇴할 때 내 통장에 돈이 없었지만 주어지는 은퇴금을 만져보지도 않고 그것을 둘로 나누어 장학금을 주고자 학교와 교단 담당자를 오게 하여 재정 장로ㅠ가 직접 전달하게 하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걱정하는 딸에게 그동안 책임지고 돌보아 주신 하나님은 신실하다고 하였다. 정말 그는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은퇴 후 20년을 지나며 그 은혜에 감사한다. 유산을 나누도록 형에게 말하여 달라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생명이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않다고 하시며 농사가 잘 되어 창고를 크게 지어 저장하고 스스로에게 이제 편안하게 살고 즐기자 하는 사람에게 오늘 밤 네 생명을 찾아가면 네가 준비한 것이 어떻게 되겠나 누가복음에서 말씀하신다. 내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며 높이고 내게 주어진 것으로 이웃과 사랑을 나누며 주의 나라를 준비하는 것을 삶의 본분으로 본다. Life and Possessions There are basic necessities required for a person to live: food, clothing, and shelter. What one eats, what one wears, and where one lives are necessary for the individual, but at the same time, they are often seen by others as indicators of that person’s worth. Because we tend to focus on what is visible, we are sensitive to trends. Even children talk about the size of their apartments and use it to determine their status. Not only that, but education and occupation also become standards by which people are evaluated. Little thought is given to one’s values or to life itself; instead, visible possessions are often regarded as the entirety of life. Life is not something we have earned through our own efforts; it is granted by God through our parents. If that is so, then God, the owner of life, will take responsibility for it and care for it. Consider the birds of the air and the lilies of the field—if God cares for them, will He not care for our lives, which are far more precious? We are told to seek first the kingdom of God and His righteousness. God made me realize this truth. When I came to the United States to study with only $200, where I knew no one, I did not ask about salary when I received a call from a church. I believed that if the congregation had food, I would also eat. Later, when I continued my studies with no money, food was placed at my door once a week for a month until my wife found a job. At the time of my retirement, I had no money in my bank account, yet without even touching the retirement funds I received, I divided them in two and arranged for them to be given as scholarships through the school and the denomination. When my daughter worried about how to live, I told her that God, who had taken responsibility for us all along, is faithful. Truly, He has led us so that we could live, and even after 20 years of retirement, I remain grateful for His grace. To someone who asked Jesus to tell his brother to divide the inheritance, Jesus said that life does not consist in the abundance of possessions. He spoke of a man whose land produced plentifully, so he built bigger barns to store his crops and said to himself that he would now relax, eat, drink, and be merry. But God said to him, “This very night your life will be demanded from you. Then who will get what you have prepared?” as recorded in the Gospel of Luke. Since my life is not my own, I acknowledge God as the owner, honor Him, and consider it my duty to share what has been given to me with others in love and to prepare for His kingdom.

Wednesday, March 25, 2026

나의 요새 My Fortress

나의 요새 My Fortress 인류 역사는 힘의 대결과 전쟁으로 이어진다. 공격하고 정복하는 것 못지 않게 적의 공격을 받을 때 방어하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은 공중에 날아오는 첨단 무기를 막기 위하여 방공망 아이언 돔을 만들어 방어하고 있다. 유럽의 옛 도시를 찾으면 높은 산 꼭대기를 요새로 만들어 적의 침공을 저지, 방어하고 또 그곳에서 적을 향해 대포나 돌을 날려 공격한다. 요새가 든든하면 백성은 안전하게 살 수 있다. 다윗은 어린 때부터 전쟁을 많이 하였다. 양을 치며 사자나 곰을 자기 힘으로 막아 내었다. 블레셋과 전쟁할 때 형들을 면화하며 적장이 모욕하는 말을 들으며 분개하여 그와 싸우기로 하다. 칼과 창으로 다가오는 적장을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물매 돌로 그를 죽이고 나라를 구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이 그의 요새였다. 시편 59편에서 그는 하나님이 요새요 힘이시기에 그를 찬양한다. 원수는 거짓과 저주로 또 행동으로 그를 위협하지만 그는 요새인 하나님을 향한다. 그들을 죽이지 마소서. 원수가 죽고 없어지면 마음이 해이하고 안일해 진다. 중요한 것은 원수와의 긴장관계에서 하나님이 요새임을 계속 인정하고 나타내기를 원한다. 원수가 보응 받는 것을 보게 하되 그들이 흩어지고 힘이 약화되며 조금씩 소멸되게 하는 것이다. 그들 입의 저주와 거짓은 아무런 효험이 없고 그들 스스로 굶주리나 먹을 것을 얻지 못하는 개들과 같이 밤에도 자지 못하고 유리하게 하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이라는 요새에서 안전하게 지키심을 받는 것을 온 세상이 알고 하나님을 높이게 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송하고 아침마다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였다. 나는 어떠한가? 나이 80이 넘으면 모두가 같은 형편이라 하지만 무엇이 나를 지키고 있나? 음식과 운동, 약을 의지하지만 많은 한계를 느낀다. 능력의 하나님을 요새로 삼는다면 질병과 고난 시련이나 어떤 형편에서도 다윗처럼 안정된 마음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리라. 며칠 전 사업을 하는 아들 같은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전과 달리 얼굴과 삶이 매우 건강하고 활력이 있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든 걱정을 내리고 평안과 기쁨으로 산다고 한다. 하나님을 요새로 삼은 삶이 어떠한가 보여 준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을 높이게 하고 자신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송하고 아침마다 새롭게 하루를 시작하였다. 나는 어떠한가? 나이 80이 넘으면 모두가 같은 형편이라 하지만 무엇이 나를 지키고 있나? 음식과 운동, 약을 의지하지만 많은 한계를 느낀다. 능력의 하나님을 요새로 삼는다면 질병과 고난 시련이나 어떤 형편에서도 다윗처럼 안정된 마음으로 기뻐하며 감사하리라. 며칠 전 사업을 하는 아들 같은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 이전과 달리 얼굴과 삶이 매우 건강하고 활력이 있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모든 걱정을 내리고 평안과 기쁨으로 산다고 한다. 하나님을 요새로 삼은 삶이 어떠한가 보여 준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My Fortress Human history has been marked by struggles for power and by wars. Just as important as attacking and conquering is the need to defend oneself against an enemy’s assault. Today, advanced defense systems like the Iron Dome are used to intercept weapons flying through the air. In old European cities, fortresses were often built on high mountaintops to block and defend against invasions, and from there, cannons or stones were launched toward the enemy. When a fortress is strong, the people can live in safety. David fought many battles from a young age. While tending sheep, he defended them from lions and bears with his own strength. During the war against the Philistines, he visited his brothers and became indignant upon hearing the enemy commander’s mocking words, deciding to fight him. Though the enemy approached with sword and spear, David went against him in the name of God and killed him with a sling stone, saving the nation. The name of God was his fortress. In Psalm 59, he praises God as his fortress and strength. Though enemies threaten him with lies, curses, and actions, he turns to God, his fortress. He prays not that they be killed outright, for if the enemy disappears, the heart may grow lax and complacent. What matters is to continue recognizing and demonstrating that God is his fortress amid the tension with his enemies. He asks that the enemies receive their due, but in a way that they are scattered, weakened, and gradually fade away. Their curses and lies lose all effect, and they become like dogs wandering at night, unable to find food, restless and unsatisfied. David desires that the whole world would know that he is safely protected in God, his fortress, and that God would be exalted. He himself praises God’s lovingkindness and begins each day anew in the morning. What about me? People say that after the age of eighty, everyone is in a similar condition, but what truly protects me? I rely on food, exercise, and medicine, yet I feel their many limitations. If I make the mighty God my fortress, then even in sickness, hardship, or trials, I too can rejoice with a steady heart and give thanks like David. A few days ago, I met a younger friend—like a son—who runs a business. After a long time, I noticed that his face and life were much healthier and full of vitality than before. He said he looks to God, lays down all his worries, and lives with peace and joy. His life shows what it means to make God one’s fortress. “O Lord, my strength, I love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