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23, 2018

죽기를 기다렸다가 Waiting Until He Dies


요한 11:3-14 죽기를 기다렸다가 Waiting Until He Dies (4/21/18 토요)
마리아 마르다가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주께서 그 가족을 사랑하시지만 그들이 또한 주의 사랑을 알고 있다. 사랑하시는 자라고 한다. 5절 예수께서 마르다와 그 동생 그리고 나사로를 사랑하신다고 한다. 요한복음을 기록한 요한도 주께서 사랑하는 제자라고 한다. 주의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고 생각하는 자는 복되다.
사랑하는 자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전하면 바로 응답하여 그에게로 오시든지 아니면 있는 곳에서 말씀하여 그 병을 낫도록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며 응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전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었다. 마리아 마르다가 어떤 마음이었을까? 죽을 병이 아니면 일어나야 할 것 아닌가? 어떻게 사랑하는 자의 기도에 이런 반응을 하시나?
우리의 요구와 기도에 주님은 어떤 반응을 하시나?
1  즉각적인 반응을 하시되 소원대로 들어주시는 경우가 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자 그곳 백부장이 주께 와서 간구한다. 주여 내 하인이 중풍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고 있나이다 한다(8:5,6). 주님의 대답은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8:7). 즉시 응답한다. 백부장은 주님을 모실 처지가 아니라며 말씀만 하시면 나을 것이라 믿음을 보였다. 이런 믿음을 이스라엘에서도 보지 못하였다 하시며 그가 나았다고 하며 그를 돌려 보내다. 백부장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 군인 장교인데도 그의 기도를 바로 듣고 응답하여 그 집에 가겠다 할 정도로 응하며 그 하인을 고쳐 주시다.
예수께서 배로 바다 건너에 가시니 큰 무리가 그에게 모이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께 와서 발 아래 엎드리어 간절히 구한다.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받아 살게 하소서 하자 주께거 그와 함께 가시다 (마가 5:21-23). 가는 동안 혈루증 앓는 여인이 예수의 옷을 만지고 이에 대하여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시간이 지체 되었다. 그 사이 아이가 죽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집에 가서 아이가 죽어 있는 방에 들어가 아이야 일어나라 하며 잠자는 아이를 깨우듯이 일으켜 주셨다. 즉각적으로 기도를 듣고 이루어 주신다. 주님은 그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풀어 주신다. 바로 응답 하신다.
이런 경우가 있었나? 내게는 열살 때 이런 기도 응답이 있었다. 내가 직접 쓴 찬송가집을 찾지 못하여 그것 찾아달라고 기도한 후 책상 설합을 열자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너무나 감사한 것이었다. 때로 이런 경우에는 기도 응답이라기 보다 우연이라 생각할 때도 있다.

2  기도에 안되 No 하시는 경우가 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다. 가서 고난을 당하고 죽을 것이나 3일만에 살아날 것이라 하시다. 제자들은 주께서 예루살렘 가실 것을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고 왕위에 앉을 것이라 기대하다.  제자들은 그때 누가 어느 자리를 차지할까 서로 논의하며 다툰다. 주께서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과 그 형 야고보가 주 앞에 나와 간구한다. 우리 두 형제를 주의 나라에서 주의 왼쪽 오른쪽에 앉게 하여 달라고 한다(10:37). 주께서 바로 응답하신다. 너희는 구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구나 그 자리는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라 (10:40) 야고보 요한을 위한 것이 아니라며 거절하신다. 알지 못하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구하는 그대로 들어주시지 않은다. 그러나 이것도 응답이다.
바울은 주께서 특별히 선택한 귀한 그릇으로 그는 주를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하여 사역 하다. 그러나 그의 몸에 가시가 있어 불편하고 지장이 있다. 이 가시를 사단의 사자라 할 정도로 괴로움이다. 그래서 이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주께 세번이나 간구하였다. 몇 번 기도하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한 번 기도에 주님은 응답하셨다. 그러나 바울은 세번을 기도하다. 주의 대답은 가시를 제거하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후 12:7-9)고 응답하시다. 가시보다 더 큰 은혜로 응답하신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신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다. 하나님이 그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다. 구하옵나니 나로 건너가게 하사 요단 저쪽에 있는 아름다운 땅과 산을 보게 하소서 하나 여호와께서는 듣지 않으시고 그만해도 족하니 이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하 (3:26) 모세가 평생 순종하고 어려움을 겪었으나 결과를 보지 못한다. 그의 일은 거기까지인 것을 말씀한다. 사람마다 자기 분량이 있는 것을 안다.
예수님 자신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외면을 당하였다. 게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고 슬퍼 하며 기도하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아버지께서 십자가의 잔을 옮겨주시지 않으시다. 백성의 죄가 예수의 죽음 외에 달리 용서될 길이 없기에 아들로 십자가를 지게 하시다.
기도 응답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길 더 좋은 방법을 제시하시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생명의 길을 여신다.

3  우리의 기도에 기다려라 하실 때가 있다. 하루 이틀 정도가 아니라 한 달 두 달 일년 2년 평생을 기다릴 때가 있다. 나사로가 병든 때 누이들의 기도에 주님의 응답이 그러하다. 사랑하는 사람인데도 바로 응답하지 않고 이틀을 더 계시다가 제자들과 함께 가신다.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내가 깨우러 간다. 주여 잠 들었으면 낫겠 나이다. 제자들이 알아 듣지 못하자 예수께서 밝히 말씀한다. 나사로가 죽었다(14). 그가 병으로 고생할 때 사람을 보내어 병들었다고 전했는데도 바로 응답하지 않고 그가 죽기를 기다렸다가 그곳으로 가시는 것이다. 보통 사람도 아니고 그가 사랑하시는 가정이요 나사로인데 어떻게 그를 죽게 하시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그가 이 사람을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나?(11:37)
왜 주께서 늦추었나?  왜 나사로가 죽기를 기다렸을까? 주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신다. 병 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 이런 경우라면 병이 든 것이 오히려 좋은 일인지도 모를 일이다. 주께서 이미 병든 자를 많이 고치셨다. 물론 하나님께 영광이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생명의 주로서 더 큰 영광을 나타낸다. 그래서 죽기를 기다린 것이다. 죽지 않으면 살릴 기회가 되지 않는다. 그가 죽어 무덤에 묻힌지 4일이 되고 이미 썩어 냄새가 난다. 인간적으로 완전히 죽은 것이요 소망이 없다. 그러나 주님은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고 무덤으로 행차하는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다. 이들은 죽은지 얼마 안 된 형편이나 나사로는 이미 썩어 냄새가 난다. 다시 산다는 것은 가망이 없는 일이다. 주님은 내가 부활이요 생명 이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산다는 확실한 사실을 보여주신다. 주 안에 있는 자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라 잠자는 것이다. 죽음을 잠으로 보는 것은 큰 혁명이다. 잠든 자를 깨워 일으키듯이 죽은 자를 살려 일어나게 하는 것은 생명의 주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불러 내신다. 잠자는 자를 일으키는 것과 같다.
죽기까지 기다린다. 사람에게 죽음은 끝이다. 더 이상 생명이나 힘이 없다. 어떤 자랑도 없다. 죽은 것이 아니면 자기 자랑 자기 힘을 말하고 자기를 내 세운다. 완전히 죽으면 그 후에 되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된다. 그래서 주께서 기다리신다. 그 사이 우리 믿음이 자라고 또 하나님의 때를 맞추는 것이다. 주의 은혜 크신 축복을 받게 된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할 때도 완전히 죽다 싶이 하여 맥이 다 빠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지 않으면 물에 끌려 들어가 둘 다 죽게 되는 경우가 있다.

우리의 기도에 응답 받은 것이 어떤가? 즉각적 응답 아니면 안된다 또는 기다리라 아직 때가 아니다 또는 믿음이 자라거라 한 것이 있나? 주님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사랑하는 자의 기도를 외면하거나 못들은척 하지 않은다. 주께서 대답하시는 바를 듣고 우리의 기도하는 자세가 어떠한지 점검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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