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0:11-18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아나? How do we know that Jesus was raised?
(4/1/18 부활주일 새벽 미네소타 지역 연합 예배)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부활하셨기에 살아 계신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나? 완전히 죽지 않고 기절 상태에 있다가 시원한 무덤에서 깨어났다고
하는 자가 있다. 법과 권력의 로마에서 장례를 위해 시체를 내어주기 전 죽음을 확인하였기에 기절하였다는 생각은
부질 없는 일이다. 제자들이 훔쳐갔다고 하는 자들이 있다. 로마 황제의
도장을 찍은 딱지로 무덤 문을 봉하고 로마 군인들을 세워 파수하도록 하였는데 누가 훔칠 생각을 할 수 있겠나? 예수께서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였다. 어떻게 그것을 아나?
1 빈무덤이 증명한다. 시체가 없어지다. 역사적 사실로 확실한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인들이 새벽 일찍 무덤을 찾아가다. 향유를 바를 생각이었다. 무덤을 막은 돌이 옮겨지고 무덤은 비어 있었다. 누군가 예수의 시체를 옮긴 줄로 알다.
여인들에게 큰 충격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알리기 위해 달려 가다.
베드로와 요한이 무덤으로 달려 가다. 베드로가 무덤에 들어가 보니 수의로 사용한
세마포가 나비가 빠져나온 고치처럼 그대로 놓여 있고 머리를 싼 수건도 옆에 있으나 시체는 없다. 요한도 들어가
확인하였다.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은 알지만 시체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부활하였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하고 돌아가다. 두 제자도 마리아도 빈 무덤은 보았지만 예수께서
부활하였다는 것은 알지도 믿지도 못하였다.
2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말을 듣고 알 수가 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여 주의 부활을 알고 믿는다. 그러나 듣고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마리아는 천사들의 증언을 듣다. 그는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다고
하나 그 말을 믿을 수가 없다. 여인들이 제자들을 찾아가 천사가 한 말 곧 예수께서 살아났다고 전하니 그들은
여인들이 허탄한 말을 한다고 생각하여 믿지 않았다(눅24:11). 예수의
제자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 주님이 찾아 오시었다. 그 자리에 도마는 없었다. 10제자가 도마에게 부활한 주님을 보았다고 하였지만 그는 믿지 못한다.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
내 눈으로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다
(요20:25)고 하다. 이해가 간다.
들어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부활은 엄청난 사실이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부활의 증인을 거짓말로 민심을 혼란하게 한다고 하여 박해를 하고 감옥에 넣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다. 유대인이
그렇게 하고 사울이라는 청년도 그렇게 하여 스데반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고 하지만 이치에
맞지 않은 것은 들어도 믿어지지 않는다.
3 부활한 주님을 만나면 믿을 수 있다. 내 눈으로 보면 믿겠다고 한다.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보아도 믿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본문의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누가 예수의 시체를 가지고
갔다며 울고 있는데 주님이 앞에 서 계신 것을 보다. 여인이여 어찌하여 울고 있나? 무엇을 찾고 있나? 마라아가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인데도 그를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시체를 옮겨갔으면
알려달라고 한다. 이야기를 주고 받아도 그를 알지 못하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가고 있는데 주께서 그들을 만나다. 그들은 걱정 빛이 많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일을 말한다. 주께서 성경을 통하여 그가 고난을 받고 살아나야 할
것을 설명하여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가 부활한 예수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직접 만나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4 부활사실을 확실하게 아는 때가 있다. 빈무덤을 보아도 믿지 못하던 자가 믿을 때가 온다. 부활 소식을 들어도 믿지 못하던 자가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때가 있다. 무덤 가에서 주님을 동산지기로 알던 마리아가 부활의 주님을 확실히 아는 순간이
오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며 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이다. 순간 마리아는
그가 예수님인 것을 알고 랍오니여 하며 엎드려 그 발을 붙잡고 경배하다. 마리아는 부활한 주님의 첫 목격자가
되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인격적인 친밀 관계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부른다. 친근한 음성이요 인격적인 관계다. 주님과의 관계는 친밀함에서
확인되고 알 수 있다. 엠마오로 가며 주님을 만난 두 제자는 저물 때에 함께 머물기를 제안하자 주께서 받아
드리다. 식사하며 주께서 떡을 떼어 그들에게 주시자 그들의 눈이 열려 주님인 것을 알게 되다.
같이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바로 친밀한 인격 관계를 말한다. 그 때 확실히 알 수가
있다. 마리아도 두 사람도 제자들에게 돌아가 그 사실을 말하다.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에게 오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워 하며 그들이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였다. 왜 두려워하며 의심하는가? 내 손과 발을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지만 나는 있다. 여기 먹을 것이 있나?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그 앞에서 잡수시다. 그 때야 확실하게 알게 되다.
너희가 내 증인이다 하시다. 인격적으로 만남이 확인에 중요하다.
5 변화된 사람들의 삶이 중요한 증거가 된다. 두려워하여 숨고 도망하던 제자들이 변화하여 부활을
전하며 박해를 받아 감옥에 가고 죽기까지 하여도 부활을 전하다. 많은 사람이 주님의 부활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초대 교회가 일어나고 발전한 역사적 사실이 확실하게 주님이 부활하여 살아계심을 말하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삶은 옛날로 돌아가고 교회는 생명체가 되기보다는 하나의 조직체로 변한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한다.
내가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일을 할 때 만나 함께 일을 한 의사가 있다. 카나다 출신 소아 외과의사로서
무신론자가 되어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증오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의 삶이 위선, 교회는 위선자들의 모임이라 보다. 하나님이 계시면 저럴 수가 없는데 버려 두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이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하나님이 없다고 하니 무엇이나 마음대로 하다. 인생을 즐기자고 술과 마약 도박을 하고 여자를 섭렵하며 쾌락을 찾다. 끝이 없는 일이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다. 의미 없는 인생 같아 보여 의미와 보람 있는 일을
위하여 아프리카에 가서 일을 하고픈 마음이 나다. 의사 모집 광고가 나다. 콩고 병원에서 의사를 필요로 한다. 기독교 선교 병원으로 신앙 고백서와 함께 목사의 추천서가
필요하다. 그에게 생소한 것이라 웹사이트에 들어가 신앙 고백서 샘플을 찾아 고르고 추천서 쓸 목사를 아는
사람이 없기에 의과대학 병원 목사를 찾아 추천서를 받다. 콩고에서 오라는 연락이 오다. 기쁜 마음으로 갔지만 도착하자 실망을 하다. 병원이 있는 곳은 교외 지방으로 그곳에는 놀 거리가
없다. 술집도 없고 도박이나 여자를 즐길 것이 없다.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간호사 직원들은 모두 기독교인인데 자기 하나만 무신론자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거기 있는 기독교인들은
카나다의 기독교인과 다른 것이다. 신실하고 친절하며 부지런히 일을 하며 서로 위하고 사랑으로 뭉쳐 있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인들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다. 병원에서 일을 하나 저녁은 자유로운
시간이 많다. 어떤 의사가 그에게 읽어보라며 요한 복음을 표시하여 준다. 할 일이 없으니 저녁 시간에 읽기를 시작한다. 처음부터 황당한 신화 같은 이야기들이다.
지어낸 이야기, 거짓말이라 하며 읽어내려 간다. 예수께서 고발당하고 십자가 처형을 받는다. 당연한 결과라 생각하다. 그런데 그 후에 부활하였다고 한다. 지어낸 이야기지, 제자들이 훔쳐 갔지, 생각을 하다. 지어낸 이야기라면
어떻게 그가 죽임 당한 그 곳에서 그가 살아났다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는데 반박하지 못하나? 시체를 보여
주지 못하나? 거짓말이라고 하면
많은 제자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였다고 말하는 일로 죽임을 당했는데 지어낸 거짓말로 인하여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있을 수 있나? 누가 훔쳐 갔나? 로마 황제의 인봉이 있고 군인들이
지키고 있는데 누가 감히 훔칠까? 두려움으로 도망한 제자들이 훔쳐가고 부활하였다고 거짓말을 할까?
유대인들이 훔쳐 갔나? 로마 사람들이 훔칠 리가 있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자기 뒤에 누군가가 나타나다. 부활하신 예수님이라고 바로 감지하다.
그 순간 가슴이 터지는듯 눈물이 나며 바닥에 꺼꾸러지게 되다. 자기의 지금까지의
모든 행동과 생활이 더러운 죄로 나타난다. 그의 잘못을 인정하며 울며 가슴을 찢는듯한 아픔으로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다. 그러자 그 마음이 이전과 달리 시원해지고 새로운 소망과 함께 기쁨과 믿음이 생긴다.
예수 부활은 거짓이 아니라 정말 일어난 일이다. 예수는 죽고 끝난 것이 아니라 살아서
지금도 일을 하며 사람을 만나고 있다는 믿음이 들어오니 그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다. 무신론자가 하루 저녁에
주의 사람으로 변신이 되었다.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그의 삶은 확실하게 달라지고 주께 헌신하게 되다. 켄냐에 가서 10년 동안 아동병원을 세워 일을 하고 그 일이 안정되자 이티오피아에 와서 병원 아동부를 일으키고 많은 일을 하며 나와 함께 의과대학
학생들을 믿음으로 지도하였다.
믿음의 사도 바울이 처음 예수 믿는 자들을 박해하는 일에 앞장 섰다. 죄인으로 십자가에 죽은
자를 살아났다고 하고 그를 구주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모독이요 부끄러운 일이라 하여 박해하였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하여도 예수의 부활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주께서 그의 이름을 부르며 만나시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순간 주의 손에 붙들리게 되고 주의 사람이
되다. 그가 박해하던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되었다. 인격적인
만남이 결정적이다.
우리 부부에게는 금년 부활주일이 특별하다. 목회는 염두에 없이 교수하려고
공부하던 나를 주께서 불러 목회 길로 넣었다. 40년전 부활주일을 앞두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간을 가지면서
성금요일 가장 어두운 영혼의 밤을 겪고 있었다. 부활주일은 다가오는데 어둠 속에서 어떻게 생명의 아침을 맞을
것인가? 3월 25일 토요일 오전 11시 교회 본당 에서 부활의 주님이 나를 만나 주시다. 사모에게는 12시간 후 부활의 주님이 오시다. 두 사람이 달라지다. 생명과 기쁨, 빛과 사랑으로 채움을 받아 가장 감명 깊은 생명의 부활 주일을 맞고 우리 삶의
방향이 새로워져 오늘에 이르다.
예수의 부활을 어떻게 알 수 있나? 역사적인 사실인 빈무덤을 보고 믿을 수 있다.
보아도 알지 못하던 베드로는 주님을 만나자 그의 부활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하던 도마는 주님을 실제로 만나자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다. 주께서 살아 계시기에
어느 개인을 만나 주심으로 더욱 알고 믿을 수 있다. 더욱 이름 부르거나 함께 식사하는 등 친밀한 인격 관계는
가장 확실하게 부활한 주님을 알고 믿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오늘 부활주일 새벽에 모인 여러분은 예수께서 부활하여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알고 믿나? 빈무덤에 가보지도 않았다.
첫 부활증인을 만나지도 못하였다. 부활하였다고 하는 성경의 말씀이 사실인 것을 받아드린다.
주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더욱 복되다고 하신다. 그래도 확신이 오지 않으면
살아계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바란다. 주님은 사모하는 자를 만나 주신다.
그는 사랑하는 자에게 자기를 나타내신다. 확실하게 주의 부활을 믿고 그의 부활 생명을
누리는 복을 누리기 바란다. 또 나만 아니라 그 부활 복음을 전하여 다른 사람도 부활 생명을 가질 수 있도록
하여 그 생명이 퍼져가는 일에 함께 하여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는 축복을 누리기를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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