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23, 2018

네가 나를 사랑하나? Do You Love Me?

요한 21:12-17 네가 나를 사랑하나Do You Love Me?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사랑하여 돌보시되 그가 자기 형상으로 만든 사람을 더욱 사랑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나자 하나님은 특별히 사랑할 대상을 찾으시다. 아브라함을 찾아 부르시고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큰 약속을 하시다. 그를 축복하여 창대케 하고 그 이름을 뛰어나게 하고 세상에 복을 주게 하리라. 그 후손 통하여 이 일을 하리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한다.
하나님은 그 아들 예수를 사랑하다. 어느 부모가 사랑하지 않은 자녀가 있겠나? 하나님은 아들 예수를 사랑한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여러번 말씀하시다. 예수께서 하나님이라 사랑이지만 동시에 그가 사랑을 많이 받았기에 그에게서 사랑이 넘쳐난다. 부족하고 모자라는 사람도 사랑한다. 주께서 사랑이 어떠한가를 보여주시다. 양을 치는 목자에게 100마리 양이 있는데 한 마리가 없어졌다. 그 양을 찾아나가 결국 찾아 메고 돌아와 기뻐 잔치한다. 자기에게 맡겨진 양을 잊어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한다. 두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아들을 다 사랑한다. 항상 아버지와 함께 하며 효도하는 아들을 사랑한다. 또한 아버지 재산을 가지고 멀리 가서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이라도 품에 안고 큰 사랑으로 맞아준다. 하나님의 사랑은 조건적인 것이 아니다. 부족해도 길을 잃어도 사랑하신다. 주님은 제자들의 더러운 발을 씻어 주시다.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이다. 발을 씻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다. 주께서 친히 하시다. 그 날 밤 주께서 폭탄 선언을 하신다.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팔 것이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릴 것이다. 그들의 약함을 주님이 아신다.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은다고 장담한다. 닭이 울기 전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하리라, 주님은 그의 약함을 아시다.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 게세마네에 가시어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한다. 특히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 나와 함께 기도하자고 하는데 잠을 자고 있다. 한 시간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 하지만 그들의 눈이 피곤함을 이해하시다. 기도를 끝내는 시간 제자 유다가 앞장 서서 폭도를 이끌고 오다. 주께서 잡혀 가시다. 대제사장 가야바에게로 끌려가 종교 재판을 먼저 받는다.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어떻게 되는가 보고자 그곳에 가다. 여자 아이가 베드로를 예수의 제자라고 하자 그는 아니라고 부인하다. 사람들 앞에서 세번이나 같은 부인을 하다. 주께서 그를 바라보고 계신다. 시선을 마주 보자 닭이 운다. 주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였다. 주님을 몰라서 모른다고 했다기 보다는 사람이 두려워 한 줄로 이해한다. 그러나 사람들 앞에서 모른다고 하면 하나님 앞에서 주께서 모른다고 할 것이라고 하다. 주님 앞에 큰 소리를 하였으나 몇 시간 못 되어 주님을 실망시킨 못 난 인간이다. 주님을 대면하기 어려운 형편인데도 주께서 부활하신 후 가서 제자들 베드로에게 전달하라고 하며 그의 이름을 말씀한다. 주께서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관심을 가지신다.
베드로의 실수와 부족함에도 주께서 그를 사랑하심은 말만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난다. 21장에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고 있지만 한 마리 잡지 못하는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주께서 찾아가시다. 그들을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돕고 사랑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그물 가득히 고기가 잡히도록 하였다. 주님인 것을 알았다.
그들이 육지에 나오니 주께서 모닥불을 피우고 불 위에 고기를 굽고 떡도 준비하여 두셨다. 제자들의 필요를 아신다. 밤 바다 고기 잡이에서 나오면 제일 먼저 필요한 것이 몸을 따뜻하게 하는 것이다. 그들은 불이 필요하다.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사랑의 배려다. 가야바 대제사장의 뜰에도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추운 밤에 몸을 덥게 하기 위함이다. 따뜻한 불 옆에 사람이 모이게 된다. 그리고 떡과 고기를 준비하시고는 그들을 조반에 초대하신다. 조반을 먹으라. 밤새껏 바다에 있던 그들은 아침이면 배가 고프다. 그 배고픔을 채워주시는 주님의 배려다. 춥고 배고픔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라 본다. 주께서 직접 준비한 조반을 먹는다. 아무도 어떤 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할 말이 없다. 예수께서 그들을 나무라지 않고 사랑으로 그들을 품어주신다.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그들은 송구하며 주의 사랑을 몸소 느낀다. 
식사가 끝나자 주께서 시몬 베드로를 향하여 말씀하신다. 조금씩 다르지만 같은 내용의 질문을 세번 물으신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께서 베드로를 아신다. 그의 약함을 아신다. 그의 마음을 아신다. 그러나 물으시고 확인하기를 원한다. 더욱이 다른 사람 앞에서 확인한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이 시몬이다. 시몬의 의미는 약하다 가볍다 바람에 날린다. 모래와 같다. 주를 향한 믿음을 고백하자 주께서 그를 베드로 반석이라고 이름을 바꾸어 주셨다.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라 하시다. 시몬과는 대조적인 이름이다. 지금 주님은 그를 시몬이라 부르시다. 그의 본래 자랑하고 성급한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시며 시몬이라 하신다. 그의 약함을 보여주시는 호칭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나? 내가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지! 너도 나를 사랑하지! 확인을 하고 싶다. 처음은 이들 보다? 이것들, 이 사람들보다 또는 이 고기 보다로 할 수도 있다. 비교급으로 물으신다. 모두 주를 버려도 나는 주를 버리지 않은다 누구보다 가장 많이 사랑한다고 하였으니 지금도 그런가?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고 할 때 우리의 우선 순위는 무엇인가? 주님이 먼저인가?  사람이나 물건, 사역을 앞 세울 때가 있지 않나? 주님은 무엇보다 주께 우선을 둘 수 있나 물으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되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 하신다. 무엇보다 더욱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하신다.예수께서 물으시는 사랑은 아가페 사랑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그 사랑이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나?

주님 그러합니다. 내가 주님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주께서 그를 아시는 것을 알고 있다. 그가 주를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알고 계신다는 것은 큰 힘이 된다. 베드로는 사실 주를 만나자 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 아내와 가족도 뒤로 하였다. 주님을 사랑하여 3년간 따랐다. 그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주님이 물으신 네가 나를 사랑하나? 하는 사랑과 다른 말이다. 주께서 물으시는 네가 나를 사랑하나? 하나님의 사랑, 내가 너를 사랑하는 그 사랑, 자기를 버리고 희생하는 그 사랑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나? 베드로의 대답은 그 사랑이 아니라 인간의 사랑, 친구로서의 사랑으로 사랑 필레오한다고 한다. 이전 같으면 그가 얼마든지 주님 사랑으로 사랑한다. 누구보다 더 사랑한다고 할 수 있었으리라. 이제는 그가 시몬인 것을 알다. 여인 앞에서도 주를 모른다고 할 정도의 약한 인간이 주님이 사랑하는 사랑으로 주를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그 마음을 주님이 아신다. 두번 째 질문은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질문은 무엇과 비교하지 않는 사랑 자체를 말한다. 좀더 주님과 가까워진 형편이다. 무엇과 비교하여 사랑한다고 할 수 있다. 데이트 할 때 여러 대상자 중 한 사람을 고른다. 많은 다른 사람보다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한다. 이젠 그 단계를 지나 애인이 되다.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하다가 이제는 단 둘의 관계에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 참 사랑이다. 인격적이다. 베드로의 대답도 같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 여전히 그는 약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주님처럼 사랑한다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사랑을 할 것이다. 주께서 말씀하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친구를 위하여서 목숨을 버릴 수 있다. 베드로는 나는 약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마음, 그러나 마음 다해 사랑한다. 주님이 아신다. 세 번 째 주님의 질문, 우리 말로는 같지만 원어는 다르다. 베드로가 사랑 한다는 그 말을 받아 네가 나를 사랑하나? 사람으로서의 사랑, 내가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않고 친구라 하였다고 하시다. 친구로서 신뢰하여 의리를 지키며 사랑하겠나? 세 번 질문 받자 근심이 되지만 그래도 그의 마음은 같다. 주님이 아신다.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 하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기에 우리도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그 사랑을 삶으로 행함으로 보이라고 하신다. 주께서 사랑한다고 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하신다. 사랑을 매번 확인하고는 그 사랑을 보이라 하신다. 주께서 사랑을 실천하시다. 발을 씻어 주시고 결국 십자가에서 자기 몸을 희생하여 주셨다.
내 어린양을 먹이라. 어린양은 무엇보다 사랑을 필요한다. 엄마 품에서 젖을 먹어야 한다. 그 어린양을 주님이 자기 어린양이라 하신다. 주께서 엄마 심정으로 사랑한다. 어린아이를 품에 안고 안수하고 축복하였다. 주께서 하는 그 사랑, 엄마 심정으로 가슴에 품고 돌보고 먹이라. 어린양이 사랑 받고 양육되어 자라난다. 양이 된다. 그 양도 역시 돌봄이 필요하다. 어린양이나 양이나 모두 주께서 내 양이라 하신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의 양을 사랑해라 하신다. 주께서 이 땅에 남기신 것이 주의 양이다. 주께서 내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 무엇인가? 그는 목수였지만 자기를 위한 집을 지어 내 집이라고 한 것이 없다. 땅을 가지고 내 땅이라 한 것도 없다. 책을 써서 내 책이라 한 것도 없다. 주께서 남긴 것 중에 내 것이라 주장한 것이 둘이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따라 내가 내 교회를 이 반석위에 세운다. 내 어린양 내 양이라 하신다. 교회는 주님의 양무리다. 교회는 주님의 양으로 구성된다. 그가 생명 바쳐 구원하는 복음을 듣고 주께로 오는 자를 양이라 한다. 어린양이 많다. 사랑 받아 자라나도 양은 양이다.  주를 사랑하는 자에게 주의 양을 사랑하고 돌보라 하신다.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않은 곳으로 데려가리라. 베드로는 삶을 다하여 주의 복음을 전하고 주의 양들을 보살폈다. 베드로전서 서문에 그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있는 나그네 곧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을 사랑하여 편지를 보내다. 그가 다닌 곳이라 본다. 그곳 지도자들에게 권면한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벧전1:1-3). 실제로 그가 그렇게 사역했던 것임을 안다. 그는 결국 네로 황제 시에 잡혀 고난을 당하다가 십자가 처형을 하게 되다. 유세비우스의 글에 그는 주를 부인했던 자로서 주님처럼 못박힐 수 없으니 거꾸로 못을 박아 달라고 하여 거꾸러 달렸다 한다.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주를 위하여 자기 생명을 바쳤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식사 한 끼에 초대를 받아도 감사하여 응답을 한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자기 생명을 주셨다. 그 사랑을 받은 우리가 그 사랑을 느끼고 있나?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며 그 사랑을 행동으로 삶으로 표현할 수 있겠나? 사랑하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 가슴 속에 있어서 일을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난다. 주를 사랑하기에 주의 일을 하는 것이 힘이 들어도 감사하고 기쁨이 있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주의 은총과 사랑이 함께 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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