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21, 2022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민수기 16:41-48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Btn the Dead and the Living (12/18새마음
병원에 가면 앞에 영웅들이 여기서 일하고 있다 Heroes Work Here라는 간판을 본다. 코비드 어려운 역병이 덮친 때 환자가 되면 누구도 가까이 하지 않는다. 마스크를 하고 손을 씻지만 접촉하면 전염이 되기에 부부간에도 혼자 앓다가 가는 것이 현실이다. 그는 죽어도 나는 죽을 수가 없다 하는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의사 간호사는 환자를 돌보는 자기 임무도 있지만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환자를 치유하다가 감염되어 죽은 사람도 있다. 만일 의사 간호사가 일을 하지 않았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다. 의사 간호사가 생명을 걸고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일을 하였지만 역병을 중단시키지는 못하였다. 백신을 연구하는과학자도 질병과 생명 중간에 서서 일을 한 사람들이나 1차로 되는 것이 아니라 5차까지 나왔다. 그만큼 생명을 위협하는 죽음의 세력이 강하다. 이런 역병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는 일은 참으로 많지만 누군가가 중간에 서서 도움을 주는 자가 있지만 우리도 죽음과 생명 사이에 서서 자기가 할 일을 하게 된다. 생명을 위하여 마스크 거리두기 손씻기를 하고 접종을 할 것인가 아니면 마음대로 살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오늘 본문에 아론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다고 함은 무슨 의미인가?

죽음과 생명 사이에서: 선택
죽음의 역병이 어떻게 일어나나? 과학적인 여러 설명이 있지만 설명하지 못하는 많은 것이 있다. 성경에서는 인간의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이라 한다.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리라. 역병으로 하는 일이다.  
민수기 16장에 죽음이 여러 형태로 오나 역병은 일종의 마지막 현상이다. 레위 자손 중 고라가 이웃한 르우벤 족의 다단 아비람 온과 다른 지도자 250명과 함께 패를 만들어 모세와 아론을 비방하고 항거한다. 하나님 앞에 꼭 같은 사람인데 왜 너희가 다른 사람 위에 높이는가 함이다. 다단 아비람은 모세에게 왜 왕노릇 하는가 하며 항거한다. 
이런 때 모세는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땅에 엎드린다. 대항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것이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상대에게 생각할 여유를 준다. 모세는 엎드리는 사람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엎드린다. 일어나서 말한다. 레위인으로서 성막에서 봉사한다는 것이 작은 일인가? 어찌하여 제사장의 일을 원하는가? 그러면 제사장의 일을 하여 보라며 고라와 250명이 향로에 불을 담아 내일 하나님의 제단 앞에 나와 주께 불을 드려라 그러면 하나님이 택한 자를 알게 될 것이라 한다. 
고라와 일당은 모세 앞에서 항의하지만 다단과 아비람 오지도 않고 항거한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준다더니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그들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다. 모세는 사람들에게 고라와 다단과 이비람 집 가까이 가지 말고 멀리 하라고 한다. 불평자와 가까이 하면 불평을 닮게 된다. 그들의 죄에 동참하고 함께 죽게 된다. 이들의 죽음이 일반인과 같은 것이면 모세는 하나님이 세운자가 아니지만 그들의 죽음이 독특하면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일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말을 끝내자 땅이 갈라지며 입을 벌려 그들을 삼켜 버린다. 그들 가족 모두가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였다. 또한 제단에서 고라와 250명이 향로에 불을 담아 주 앞에 나가는데 제단에서 불이 나와 그들 모두를 불살라 버렸다.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신다. 하나님이 원하는 불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운 자가 누구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신다. 모세와 아론을 반대하고 항거하던 사람들이 모두 죽음을 당하였다. 백성들이 깨달을 수 있을텐데 그러지 못하다.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모여 와 너희가 백성의 지도자를 죽였다고 원망 불평하고 항거한다. 이는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한 원망 불평이다. 하나님이 분노하여 모세 아론에게 속히 떠나라 내가 이들을 순식간에 진멸하리라 하시면서 염병을 보낸다. 염병으로 죽은 자가 14,700명이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어 사람을 나게 하고 살게 한다. 아담에게 생육하고 번성 하라 아브라함에게도 창대하게 하는 축복을 주셨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양들로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다. 이 생명을 누리려면 생명의 법을 따라야 한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도 지킬 것이 있다. 생명이신 하나님 안에 거하며 그의 길을 걸어야 한다. 하나님을 떠나 생명을 누릴 수가 없다. 
하나님은 생명을 위한 법을 주신다 신30:15-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그러면 생존하고 번성하는 복을 얻으리라 그러나 만일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섬기면 반드시 망하리라 신30:19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는 생명과 죽음 사이에 처하여 있다. 내가 생명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택할 것인가? 여호수아는 생의 마지막 백성에게 너희가 선택하라고 하며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 도전한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 머뭇거리겠나? 하나님이냐 바알이냐 택할 자를 택하라 한다. 그러나 사람은 자기  생각을 따라 죽음의 길을 택한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서: 모세와 아론이 하는 일
   생명에 대한 책임과 사랑: 하나님은 반역하는 백성에게 염병을 보내면서 모세와 아론에게 피하여 떠나라고 한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겸손하게 엎드려 자기를 성찰하고 주께 기도하며 주의 뜻을 찾는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향한 책임과 사랑을 느낀다. 주께서 그 백성을 맡기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게 하였다. 모세를 그들의 목자로 세우셨다. 목자는 양을 사랑하는 것만 아니라 그들을 책임진다. 삯꾼은 어려움이 닥칠 때 양을 버리고 도망하지만 목자는 생명을 걸고 그들을 잘 인도하는 것이다. 야곱이 장인 라반의 양을 칠 때 도둑을 맞거나 죽거나 하면 그가 그 수를 물어내는 책임을 졌다. 목자는 잃은 양 하나를 찾아 온 산을 다닌다. 양의 생명과 건강을 목자에게 물으시는 것을 알면 두려운 심정으로 모세는 영들을 사랑한다. 꼴을 먹이고 물을 마시게 하며 품에 안고 돌보고 사랑한다. 양은 하나님이 그에게 맡긴 하나님의 양이다. 목자는 주인 앞에서 마음대로 가는 양을 책임진다. 모세와 아론은 양과 하나님 사이에 서서 양에 대한 책임을 생각한다. 그들을 살게 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야 한다. 차라리 나를 죽이소서 내 이름을 생명책에서 제하여 주시고 이들을 살려 주셔요. 그들을 책임지는 목자의 마음이다.
   대속의 속죄: 죽음의 길을 택하는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이해하고 모세는 아론에게 향로에 제단 불을 담고 향을 피워 백성에게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고 한다. 향로의 불은 태워서 자기를 드림이요 향은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로 제사장이 책임을 지고 자기 생명으로 그들을 대신하여 사죄하는 일이다. 아론은 즉시 향로를 가지고 백성에게 달려가다. 반항하여 염병으로 죽음을 맞는 회중이라 그는 죽음을 향하여 달려간다. 83세에 일을 시작하였으니 지금은 100세가 넘었을 것이지만 백성을 책임지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달려간다. 자기도 염병으로 죽을지 모르기에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죽음을 피하지 않고 양의 죽음을 향하여 달린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며 죽음과 생명 중간에 선다. 에스더는 자기 백성의 생명을 구하기 위하여 왕에게 탄원하고자 죽으면 죽으리라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그 백성을 구원하는 길을 열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이 바로 이를 위함이다. 세상 모든 사람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주로 죄인 가운데 뛰어 오셨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섰다. 
모세와 아론 같은 뛰어난 지도자라도 백성들의 반역을 막지 못하였다. 하나님도 그들을 막지 않고 자유를 허락하셨다. 사람이 자기가 한 일에 책임을 지게 하신다. 죄를 지은 결과는 염병이요 죽음이다. 하나님이 하신 일은 아들을 보내어 죄인을 대신하여 속죄하게 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죄인을 대신하여 속죄하고자 죽음을 각오하고 오셨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제물이 되었다,
   죽음을 향한 도전: 아론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다. 사이라는 것은 죽음과 삶을 구분하는 경계를 말하고 또 두 사이에서 죽음을 막아내는 것이다. 더 이상 죽음이 산 자를 치지 못하게 막아선다. 자기 죽음을 담은 향로를 가지고 이미 죽었다고 막는다. 
다윗이 인구조사를 한 잘못을 저질러 하나님이 염병을 보냈다. 천사가 칼을 들고 염병으로 백성들을 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다윗이 그를 만나다. 범죄한 것은 나인데 이 백성은 잘못한 것이 없으니 나와 내 집을 치라고 하며 자기가 엎드리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 향로의 불을 드리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칼을 집에 꽂게 하고 역병이 중지 되었다 가운데 서서 자기 생명으로 죽음을 막아낸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은 양을 잡아 그 피를 자기 집 문 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다. 죽음의 천사가 문의 피를 보면 그 집을 지나갔다. 피는 생명, 누군가 이미 죽었기에 지나간다. 피가 죽음을 막아 내다. 예수님의 피가 흐르는 곳, 내 심령에 주의 피가 있으면 죽음의 사자가 침범하지 못하고 물러난다.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선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중재자:  아론은 죽은 자 산 자 사이에 서서 중재한다. 하나님의 진노와 백성의 반역 사이에 서서 향로를 들고 죽음으로 죄의 형벌이 되었기에 하나님의 용납과 화해를 구하는 것이다. 내가 대신 죽으니 이들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는 것이다. 그가 자기 생명을 타는 불로 내어 놓은 것이다. 하나님은 아론을 대신 받아 주시고 그들을 용서하고 염병을 그치게 하셨다. 이는 대제사장 예수께서 하시는 일을 미리 보여주심이다. 예수께서 생명의 하나님과 죄로 죽은 사람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리셨다. 죄의 형벌을 자기 몸으로 대신하여 지시고 인간의 죄를 청산하였기에 죄로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님이 죄인을 용서하고 받아 주시도록 하였다. 십자가에서의 첫 말씀은 저들을 용서하여 달라는 것이다. 중간에 선 것이다. 중보자 화해자의 일이다. 원수와 분노의 관계를 풀고 화목하게 하시고 하나 되게 하신다. 제사장으로 하시는 일이다. 

내가 어떻게 영생을 소유하게 되었나? 죄가 없는 의인이어서 인가? 오직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서신 구주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았다. 주를 믿고 생명 얻은 우리를 성경은 거룩한 제사장이라 한다. 제사장은 죄악으로 죽어가는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서는 사람이다. 오늘 세상은 죄로 만연하다. 누구나 자기 좋은 대로 하고 있다. 사사시대를 방불한다. 국회에서 동성애를 인정하는 법을 통과시키다. 낙태를 한다. 생명을 귀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총기 사건이 일어난다. 게임과 놀이가 하나님 보다 더 중요한 자리에 있어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이다. 죽음을 택한다. 생명을 버리고 죽음을 택하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의 분노가 일어난다. 코비드도 그 결과라 생각된다. 살았다고 하나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 많다. 제사장의 역할이 기대된다.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죽은 자와 산자의 중간에 설 수가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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