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지 않고 덧입고자 Not Unclothed but Further Clothed
단풍이 한창 아름답더니 한 잎 두 잎 뚝뚝 떨어지며 숲은 입고 있던 화려한 옷을 벗고 어느새 벌거벗은 나목으로 가득하다. 차가운 겨울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지나려 하는지! 우리는 조금만 추워도 두터운 옷을 덧입고 더 입는데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우리는 옷을 벗기도 하고 덧입기도 한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에서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저지면 하늘에 있는 새로운 집 곧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이 있다고 한다. 태어나 살던 한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 새로운 환경과 집을 가진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만 이는 우리의 몸과 생명을 말한다. 사람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어디에서나 살기 위한 노력과 수고 고난을 겪는다. 무거운 짐을 지고 탄식하고 신음하기에 이를 벗고 좀 더 편안하게 살고자 직장과 사업 지역을 옮기고 집을 바꾸기도 한다. 어디서 어떻게 살아도 사람에게는 무거운 짐과 고통이 있다. 고린도는 해안의 무역도시로 부와 향락을 추구하는 자들이 모여 들지만 혼란과 소요가 가득하다. 여기 복음이 전파되고 주를 믿는 사람들이 있으나 이들은 일반인의 조소와 놀림을 받고 욕을 먹으며 고난을 당하고 심지어 박해를 받기도 하였다. 땅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영원한 하늘 집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삶의 위로가 되고 그것을 사모하지만 그래도 매일이 어려움이다. 옷을 벗어버리듯 삶을 벗고 세상을 떠나고 싶은 마음을 가지는 자가 그때나 지금이나 있다. 누군가 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며 장기와 조직의 값을 계산하여 51억원짜리 집이라 하였다. 이 땅에 사는 우리 집이 51억인데도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이를 쉽게 상하고 포기하고 파괴할 마음을 가진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우리가 원하는 바는 벗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라 한다. 세상의 추위와 풍파 어려움을 견디고 이기기 위하여 하늘의 옷을 덧입는 것이다. 무거운 인생짐에 시달리며 탄식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옷을 입고 그들과 다른 모습과 본을 보이며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 고난과 슬픔을 겪으시며 하나님의 아들로 승리하신 것을 따라가는 삶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과 사탄에게서 오는 많은 유혹과 시험이 있다. 거짓과 술수, 방탕과 술취함, 음란과 호색, 다툼과 분리, 불신과 증오가 우리를 넘어뜨리려 한다.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있으면 악한 것이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다. 또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 머리에 구원의 투구, 가슴에는 의의 흉배, 허리에는 진리의 띠, 어디에서나 평화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잡고 하나님의 말씀의 검으로 덧입고 든든히 서는 것이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자의 모습이다.
무력과 정복, 자랑과 교만, 방탕과 탐욕으로 가득한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많은 성도를 처형하는 중에 그들에게서 예수의 십자가 사랑과 평화를 보면서 나라 전체가 돌아서고 복음 전파의 중심지로 변한 것은 세상에 살면서도 벗으려 하지 않고 예수의 옷을 덧입고 살아간 성도들의 담대함이라 감사하다. 잎이 떨어지며 자기를 죽이는 것 같으나 봄이 오며 숲은 새로운 옷으로 풍성해진다. 세상을 떠나 주와 함께 즐길 영원을 기대하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탄식하는 세상에서 예수의 옷을 덧입고 살며 일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이요 사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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