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8, 2019

천사의 얼굴 The Face of an Angel


사도행전 6:8-15 천사의 얼굴과 같이 Like the Face of an Angel (4/7/19 주일)
사람을 만날 때 무엇을 제일 먼저 보나? , 가슴, , 얼굴? 얼굴을 보면서 무엇을 느끼나? 미국 사람은 우리 한국 사람을 보면 왜 그리 심각하고 화난 표정인가 하고 묻는다. 보통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얼굴이란 어원이 확실하지 않으나 순수한 우리 말로 얼과 굴, 골이 합쳐진 것으로 얼이 나타난 모양, 얼이 드나드는 굴이라는 것이다. 얼은 얼빠졌다고 할 때 정신, 속 사람을 말한다. 우린 어떤 모습을 하고 있나? 오늘 본문 15절에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다고 한다. 어떤 형편에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나?

1 본문의 배경: 6장 처음에 초대교회에 구제하는 일을 잘 하고자 7집사를 선택하여 이 일을 하게 할 때 스데반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그들은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일에 앞장서고 사도들은 말씀 전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니 하나님의 말씀이 왕성하여 예루살렘 많은 사람이 주를 믿게 되고 허다한 제사장도 복음을 받았다. 이 때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였다. 스데반은 구제를 위하여 선택되어 그 일을 하였다. 음식과 물건, 돈을 필요한대로 나누는 구제에 기본적인 것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은혜다. 사람이 그 사랑을 느끼니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 기적이 나타난다.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반응이 있다. 리버디노 회당에 속한 구레네 알렉산드리아 길리기아 아시아에서 온 사람,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 스데반과 논쟁을 한다. 길리기아 다소에서 온 사울도 여기 있다. 리버디노는 자유를 얻은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들이 당시 노예에서 해방된 것이거나 빚에서 자유가 되었거나 아니면 디아스포라로 살던 곳에서 자유를 얻어 고국에 돌아온 것을 말하는지 이들은 자유로운 자라 한다. 이들이 볼 때 스데반의 사역이 헬라의 지혜나 히브리의 종교 전통에 맞지 않기에 논쟁을 하게 된다. 그동안 성전에서 주로 논쟁이 되었는데 이제 회당이 논쟁 장소가 되다. 스데반은 지혜만 아니라 성령으로 말하니 그들이 당해내지 못하자 그를 공회에 회부하고 장로와 서기관은 그를 체포하여 공회 앞에 세웠다. 그리고 거짓 증인을 매수하여 스데반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모세의 율법을 바꾼다고 고발을 한다. 이런 일은 주 예수에게 일어나고 베드로에게도 일어났다. 위협을 당하다가 감옥에 들어가고 하나님 모독으로 죽임을 당하게 될 급박한 형편에 처하였다. 이런 형편에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중에 다른 얼굴이 있다. 거짓 증인들의 얼굴이 있다. 돈을 받든지 아니면 호의를 받고는 시키는대로 거짓말을 한다. 이들은 자기 주견이 없다. 별로 감각 없이 바람이 부는대로 따라간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호산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던 자들이 며칠 후에는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하는 자들이다. 스데반을 고발하는 지도자 엘리트들의 얼굴이 있다. 자유인 고발자들과 그를 체포한 공회원들은 그들의 지혜와 전통을 지키고 그들이 가진 가치관이 최고라 생각하여 그것을 강요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얼굴은 오만, 증오에 살기(9:1)까지 있다. 그런 얼굴로 스데반을 주목하여 본다. 주목함은 눈과 눈의 기싸움이 된다. 뚫어지게 보면 한 쪽이 수그러들게 된다. 말로 되지 않아 눈으로 싸움을 하는데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다. 밝고 빛나지만 또 누가 어떻게 하지 못할 큰 위엄이 있다. 놀라운 일이다.

2  어떻게 스데반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이 되나?
1) 그의 신앙 인격이 얼굴에 그대로 나타나다. 그는 지혜와 성령이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이다. 그는 집사로 구제하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함을 나타내다. 스데반 이야기가 오직 행6,7 두 장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결점이나 부족한 점이 없다. 그는 주님을 마음 깊이 모시고 살며 사역하기에 그의 얼굴에는 자기 속에 있는 주님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얼굴의 얼은 하나님이라는 의미가 있다. 하나님을 히브리어는 엘, 회교도는 알이라 하는데 우리 말은 얼이 되었다 한다. 속에 있는 하나님이 겉으로 나타난다. 목사가 얼마나 말과 설교를 잘하나? 얼마나 일을 잘하고 행정 능력이 있나도 중요하지만 신앙 인격은 더 중요한 것이다. 스데반은 자기 안에 모시고 있는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그대로 나타난다. 그가 구제할 때 자기를 내 세우거나 교만하지 않고 오직 은혜로 행하여 그들을  사랑하고 품어주는 주님의 마음을 보였다. 7장 마지막에 그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원한 복수심이 없이 무릎을 꿇고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7:60). 주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말씀과 같은 것이다. 이 신앙 인격은 순간에 되어진 것이 아니다. 주님과의 인격관계에서 매일 삶을 통하여 형성되고 나타난다. 향나무는 그를 찍는 도끼에 향을 선사하듯 그의 인격대로 나타난다.
2) 그가 발견한 진리가 너무 크고 귀하기에 기쁨이 얼굴에 나타난다. 어떤 문제가 풀릴 때 새로운 것을 발견한 때 우리가 가지는 기쁨이 크다. Eureka! 발견했다. 주전 3세기 희랍 수학자 알키메데스, 그가 목욕탕에 들어가자 물이 올라오는 것을 보며 물에 잠기는 자기 몸의 부피와 같은 양의 위로 물이 올라오는 것을 알고는 유리카 나는 찾았다고 외치며 벗은 몸으로 길거리를 뛰어 다녔다. 새로운 진리 발견의 기쁨이다.  스데반이 유대인으로 성경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가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고 3일만에 부활한 사실을 새롭게 알고 그 이름 외에는 구원 얻을 이름이 없다는 것을 발견할 때 그는 아르키메데스 이상으로 기쁨을 가슴에 가지니 얼굴이 밝고 빛나게 되었다. 성경을 읽고 내게 해당하는 진리를 발견할 때 가지는 기쁨이 얼마나 큰가! 어떤 사람이 사경을 해매며 남쪽 바닷가 병원에 외롭게 혼자 가서 왜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버렸나 하는 심정을 가지다. 139에서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시나이다. 내가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 계시고.. 내가 새벽 날개를 치고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이 말씀을 받을 때 속에 기쁨과 감격이 일어나고 살 힘이 생겨 고침을 받았다.
3) 사람은 인정을 받고 힘 있는 자와 함께 있으면 얼굴이 밝아진다. 가족이나 동료의 인정을 받으면 얼굴이 자랑스런 모습이 된다. 더욱 왕 앞에서 왕의 인정을 받는다면 얼마나 감격 기쁨이 있겠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 앞에 서니 하나님이 친구처럼 그를 만나 말씀하고 율법을 주시며 백성에게 가르치라 한다. 큰 특권과 사명을 받고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그 얼굴에 광채가 났다. 사람들이 그를 바라 볼 수가 없어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었다. 하나님을 뵙고 그의 인정을 받은 결과다. 동방정교는 성인의 얼굴 둘레에 후광이 빛나게 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고 그의 인정을 받는다는 말이다. 스데반이 사람들의 고발을 받고 정죄를 당할 때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보며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다(7:55)고 외친다. 예수께서 보통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다고 하는데 여기는 서 계신다. 그를 격려하며 응원하는 모습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와 함께 한다 힘을 내어라. 그러니 그의 얼굴이 빛나게 된다. 어떤 아이가 아빠와 같이 저녁 산책을 나간다. 갑자기 사나운 개가 앞에 나타나 입을 벌리고 가까이 다가온다. 너무 놀란다. 바로 아빠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으니 자신감이 생기고 얼굴이 밝아지며 개를 향하여 발질하며 저리 가라 하는 것과 같다.
4) 큰 꿈과 소망, 영광이 보이면 얼굴이 빛난다. 이민은 팔자를 바꾸는 것이다. 하지 않던 힘든 일을 한다. 밤낮 열심히 일하고 고생 한다. 그래도 속에 기쁨을 가진다. 얼마 후에는 자녀 교육, 주택 구입 등 어떤 목표를 달성할 것을 바라본다. 고생이 고생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기쁨이다.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환난 가운데 영광을 보기에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한다 (1:2). 바울은 주를 만나고 난 뒤에 많은 고난을 겪었다. 관제와 같이 부어 쏟아진 형편이 되었으나 그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준비된 것을 알고 있기에 감사하고 기뻐하였다.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 가 기도할 때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서는 감격으로 그럴 수 있지만 눅9:31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에서 종교지도자들이 그를 받아드리지 않고 고발하고 정죄하여 십자가에서 죽게 하는 고통을 내다보는데 주의 용모가 빛나게 변화되었다. 그는 죽지만 그로 인하여 사람의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회복될 뿐 아니라 그가 죽은지 3일만에 부활하여 다시 죽지 않은 생명이 될 것을 내다 보면 얼마나 감격인가! 2세기 로마의 기독교 박해가 심하였다. 로마는 신상이 많은데 기독교는 아무런 신상이 없는 무신자라 로마의 신들이 화를 내린다며 박해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황제를 경배하라 하나 듣지 않은 자들을 원형 경기장에서 짐승에게 찢겨 죽게 하고 화형으로 태워죽였다. 요한의 제자이던 폴리갑이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 된 때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폴리갑이 고문을 당한다. 그 나이에 어찌 불에 타 죽으려 하나? 예수를 모른다고 하고 편히 말년을 살라고 하자 내 86년동안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은 예수님을 지금 내가 모른다고 하랴! 불에 태우는 화형을 하겠다고 하자 잠시 후에는 타 없어질 불을 두려워하며 영원히 타는 심판의 불은 두려워하지 않나, 나를 어서 주님 앞에 가게 하라고 담대하게 말하고 화형을 당하였다.
스데반은 그 뜻이 승리자의 면류관이다. 지금 박해를 당하고 잠시 후 최초의 순교자가 될 것이지만 예수께서 그를 받아주시고 승리자의 면류관을 씌어 주실 것을 생각하면 얼른 주 앞에 가고 싶은 마음이라 그 얼굴이 천사 얼굴 같이 된 것이다. 10년 전 본 교회를 시작할 때 참여한 사람들은 얼굴에 기쁨 감격이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신앙 생활을 잘 할 것이며 전하는 교회로서 사명을 다하여 지역 사회만 아니라 온 세계로 주의 사랑을 전한다는 꿈을 가지기에 웃고 격려하며 기뻐했을 것이다.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급진적인 이슬람 단체가 이라크의 기독교 도시 쿠라 고쉬를 점령하자 기독교 선교사와 기독교인 229명이 사형선고를 받아 죽게 되었으니 기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슬람만 아니다. 미국 사회가 기독교에 기반을 두었지만 기독교인이 소외와 불이익을 당한다. 대학 교수의 증언은 교수나 학생들 사이에서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 그 때부터 소외를 당한다 한다. 교회 안에서도 믿음을 바르게 지키는 것으로 외면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사소한 의견 차이로 논쟁이 되고 심한 대립이 되어 공격하고 공격 받을 때가 있다. 때로는 편을 가르고 어느 편에 가담하기를 요청 받을 때도 있다. 어떤 얼굴 모습이 되나? 회당의 자유인, 공회원처럼 자기만 옳다는 오만하고 살기에 찬 얼굴을 할가? 아니면 형편대로 따라가는 거짓 증인의 무감각한 표정을 지을가? 아니면 스데반처럼 우리 속에 살아계신 주님을 모시고 성령에 이끌리어 신앙 인격을 형성하여 내 속에 있는 주께서 내 얼굴에 나타나게 할 것인가? 내 얼굴에 내 생각이 아니라 주의 영이 외부에 나타날 수 있을까? 예수께서 나의 구주요 그가 나를 사랑한다는 진리를 발견한 기쁨을 계속할 수 있을까? 주께서 역사를 주관하며 매일 나의 손을 붙잡고 나를 인도하시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담대하게 살 수 있을까? 주를 믿는 것으로 오늘은 고난을 겪는다 해도 내 앞에 오는 영광스런 날을 바라보며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 10년을 맞은 우리 교회 모든 성도가 주님을 닮은 신앙 인격 가지고 주님이 가장 귀한 보배임을 알고 주와 함께 매일을 사는 즐거움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며 오늘의 어려움에도 주께서 주시는 승리를 보며 서로 사랑하고 화목하며 하나가 되어 천사의 얼굴이 나타나면 교회로서의 빛나는 사명을 감당할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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