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15, 2019

한 도시의 큰 기쁨 Great Joy in a City


8:4-8 한 도시의 큰 기쁨 Great Joy in a City (4/14/19)
오늘 교회력으로 종려 주일,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모여 있던 군중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또 길에 펴며 호산나 호산나 우리를 구하소서 외치고 찬양하며 온 성이 기뻐하였다. 이런 기쁨이 오늘 사마리아 한 성에서도 있었다. 큰 기쁨이 그 성에 있었다고 한다. 예루살렘에서 예수 믿는 자들에게 박해가 일어나 스데반이 순교하며 기독교인들을 잡으려하자 믿는 사람들은 흩어지게 되고 집사들이 하던 구제의 일도 하지 못하게 되다. 7집사의 하나인 빌립은 사마리아의 한 성으로 가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표적을 행하니 사람들이 믿고 따른다.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다.

. 기쁨이 없는 곳에 큰 기쁨이 있다.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의 유대와 갈릴리 중간에 위치한 이스라엘 땅이나 이 지역은 전체로 소외되어 있다. 오래 전 아수르의 침략 당시 이방인들과 혼인한 것으로 그들의 순수 혈통을 버렸기에 그들은 이방인처럼 취급되었다. 사람들이 유대와 갈릴리로 내왕할 때 사마리아를 부정하게 생각하여 통과하지 않고 다른 길로 간다. 사람을 욕할 때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한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수가 우물가에서 물길러 나온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자 반응은 유대 남자가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나? 였다. 서로 상종하지 않는다. 사마리아 사람도 모세의 법을 따라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그들은 무시되고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항상 관계가 불편하다. 또 사마리아에는 시몬이라는 마술사가 있어 그는 큰 하나님의 능력이라 불리웠다. 마술은 악한 귀신의 역사를 행한다. 결국 사람의 자유를 뺏고 거짓과 어둠으로 사로잡고 죽음에로 나가는 일을 한다. 사람을 두려움에로 몰고 가나 그를 반대하지도 못한다. 기쁨을 가지지 못하는 형편이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수도, 하나님 예배의 중심 성전이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기쁨과 만족이 없다. 로마인이 지배하는 압제가 있고 로마를 위해 세금을 내고 일을 한다. 그들의 다신 숭배나 비성경적 생활방식이 영향을 미친다. 또한 종교 지도자의 횡포와 독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의 눈에 벗어나면 저주를 받는다. 사람들은 기쁨을 잃고 있어 해방과 자유의 기쁨이 올 것을 기다린다. 우린 어떤 형편에 있나? 기쁨이 있나?

.  기쁨을 잃고 있는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큰 기쁨이 왔다. 어떻게 기쁨이 오나?
1빌립이 사마리아에 오자 그리스도가 전파된다. 빌립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를 모시고 온 것이다. 예수는 태어날 때 천사가 노래하고 기뻐하며 그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 하다. 예수께서 가는 곳마다 기쁨이 있다. 그리스도가 복음 곧 기쁜 소식 이다. 당시 세상에 차별 구별이 많다. 빈부, 지위, 남여, 노소, 직업, 지역 출신 등으로 구분 되고 간격이 많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께서는 기뻐하는 잔치자리가 아니라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약한 자를 찾아 다니시다. 자기가 온 것은 잃은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라 하다. 유대인은 사마리아에 가지 않는데 예수께서 가시다. 사마리아 수가 우물가에서 한 여인을 만나 대화하는 것은 당시 관습 전통을 깨뜨리다. 그것은 그 여인의 존재와 인격을 인정하고 존중함이다. 그 여인에게는 어쩌면 처음 경험하는 일이다. 그의 남편, 하나님 예배등에 대해 말씀하며 그에게 자유와 생명을 보여주고 이 우물 물을 마시면 또 목마르지만 그가 주는 물을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고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가진다고 하다. 우물물을 길러 갔던 그 여인은 주께서 주시는 물을 받자 속에서 기쁨이 솟아오름을 본다. 그가 온 것이 알려지자 동리 사람들이 모여 나와 예수를 초청하여 동리에 들어가 이틀을 함께 지나다. 그들 모두에게 기쁨이었다. 빌립이 그리스도를 모시고 옴으로 그곳에 기쁨이 찾아오다. 빌립은 예루살렘에서 피하여 흩어진 사람이다. 예루살렘에는 박해가 있어 견디지 못하다. 고향을 떠나고 가족 친구와 헤어져야 하는 아픔이다. 간 곳이 사마리아, 그곳에서는 주를 환영하고 기뻐하였다.  박해가 있는 곳에 계속 있어야 할 것이 없다. 슬픔 가운데 떠난다 해도 주께서 기쁨을 준비하고 계신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은 집에 누가 찾아오면 부담이 될 수 있지만 기쁨이다. 하나님의 아들 구주가 찾아온다는 것처럼 기쁨과 감격이 어디 있나? 그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은 나를 받아주고 인정함이다. 예수께서는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는 말을 들었다. 버림 받은 자를 친구로 삼아주신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큰 기쁨이요 감격이다. 빌립이 그곳에 온 것은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알리기 위함이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사로 그곳에 왔다. 그리스도가 온 것과 꼭 같은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로 죄 지은 인간을 대신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사랑을 전하다. 세상에 구원 얻을 이름이 예수 외에는 없다. 예수만이 인간을 죄와 죽음에서 건지신다. 예수만이 죄용서와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 구주임을 전한다. 오늘 성찬에서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여 그의 몸과 피를 주신 것을 확인하고 받아 드림은 그를 모셔 드림이다. 감격하고 기쁜 일이다.

2 빌립은 말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또 많은 표적을 행하다. 말에는 그에 해당하는 행동이 따라야 믿을 수 있다. 더러운 귀신들린 자 중풍병자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고 해방이 된다. 이들의 병은 감기라든가 팔을 다친 정도가 아니다. 평생 고생하나 해결이 되지 않은 병이다. 어떤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가진 것을 다 허비하였으나 효험이 없고 병세는 더욱 중하여 갔다. 주께서 그 지역에 오셨다. 그 옷에 손만 대어도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의 옷에 손을 대었더니 그 순간 병의 근본이 치유되었다. 주께서 그의 믿음을 인정하여 주셨다. 중풍병이 걸려 일어날 수 없는 한 사람을 네 친구가 메고 주 앞에 왔다. 주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시어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다. 곧 내가 너의 죄를 대신 짊어진다. 일어나 자리 들고 걸어가라. 그 순간 그가 고침을 받았다. 이들의 기쁨이 상상되나? 본인만 아니라 가족 친구 동리 사람들의 반응이 어떠하겠나? 의약으로 고칠 수 없는 질병에서 치유될 때 기쁨이 얼마나 크겠나? 예수께서 치유하신 것을 알면 얼마나 기쁘겠나? 예수 이름의 능력은 지금도 여전하게 역사한다.
오래 전 간증을 듣다. 어떤 목사 사모가 본인은 원하지 않았으나 남편이 목사가 되었으니 사모가 되었다. 교인이 사모에게 요구하는 것, 이것 저것 흠을 잡아 비난하고 비평하는 것, 자녀들에게 운동화 한켜레 사 줄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매일의 삶, 교인들을 돌본다고 심방 상담 등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아이들을 고아처럼 버려두는 것이 너무 괴롭고 마음이 무거워 더 이상 교인들을 만나고 싶지 않고 오히려 교인이 무서웠다. 어느 주일 교회에는 갔으나 도망하고 싶은 심정이라 고장난 화장실에 들어가 시간을 보내다.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서 창문을 조금 여는데 예배실에서 찬송소리가 들려 온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예수 이름 믿으면 영원토록 변함 없는 기쁜 마음 얻으리주님 나는 어떻게 된건가요? 비참함을 느끼면서도 그 찬송에 이끌려 교회당으로 들어가 뒷자리에 앉아 머리 숙이니 눈물이 비처럼 쏟아진다. 눈 앞에 큰 현수막이 보이는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 순간 자기 어깨에 있는 무거운 짐을 벗어 여기 있어요 하며 드리게 되다. 그러자 그 마음에 안식과 평안이 찾아오고 기쁨이 왔다. 주님을 만나 그의 말씀을 따르면 기쁨이 온다. 이것이 따르는 표적이다. 큰 기쁨이 있다.

3사마리아 사람들은 삶의 소망과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다. 왜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를 모르면 기쁨이 없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고 살기 위해 먹는 것이라면 일을 해도 즐거움이 없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제 존재감을 가지고 삶의 의미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알게 되니 기쁨이 넘친다. 우물 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주님을 발견하고 그 마음에 자유가 들어오니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리에 들어가 말한다. 모세가 말한 그 분 우리가 기다리는 그 분을 내가 만났다. 와 보라 하다. 동리 사람들이 기쁨으로 예수께로 나아갔다. 한 여인의 말로 일어난 일이다. 그의 삶이 새로워진 것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의 기대는 예수가 메시아, 그를 통하여 새로운 질서와 삶이 온다는 희망을 가지니 큰 기쁨이 오고 이로서 그들은 기뻐하고 춤을 추며 주를 환영하였다.
미국 노예 해방이 되기 전 북부의 한 신사가 남부로 여행하다가 노예시장에서 노예 경매를 목도하다. 한 젊은 여인이 경매되는 것을 보며 불쌍한 마음이 들어 제일 비싼 값을 내고 그 노예를 샀다. 돈을 내고 사면 일단 그를 노예시장에서 데리고 나온다. 노예의 주인이 바뀐다. 북에서 온 사람의 노예가 되어 그가 시키는대로 할 것이다. 새 주인은 그를 호텔에 데리고 가서 목욕시키고 음식 먹이고 잘 쉬게 하다. 다음 날 아침 두툼한 봉투를 내 밀며 이것을 가지고 가서 마음 껏 자유롭게 살아라 너는 이제 자유다. 그 여인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를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더니 이제는 내 자유로 당신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평생 섬기도록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새롭게 살 의미를 발견한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일어난 기쁨이다.
선교사가 활동할 때 평양은 악한 도시로 알려지다. 돌싸움을 하고 돌로 사람을 찍어 죽이고 나이든 행려병자의 귀신이 붙는다며 그를 가마니에 얹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끌어다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가 큰 길을 걷던 중 날아오는 돌에 얼굴이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지다. 돌을 던진 사람, 평양 순사 이기풍이 어떤 반응을 기다리는데 선교사가 일어나더니 피를 닦고 돌 던진 사람을 멀리 바라보며 웃음을 주고 떠난다. 이기풍은 너무 놀라고 그 모습에 끌려 그를 찾아가 사과하고 그런 반응의 비결이 바로 예수임을 알고 선교사를 따라 그를 배우기로 하다. 그는 장로교 신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여 최초의 장로교 목사 7명의 하나가 되었다. 그는 조선에서 제일 어려운 곳 제주도에 선교사로 가서 자신이 돌을 맞으며 그곳에 주의 사랑의 복음을 전하며 평생을 보냈다. 예수로 인한 삶이 변화, 기쁨으로 섬긴 삶이다.

기쁨은 우리 삶에 힘을 더하는 활력소다. 엔돌핀 생성, 질병을 이긴다. 그러나 기쁨을 가지지 못하여 불행하고 우울하고 좌절한다. 기쁨을 가지기 위해 음식을 먹고 남여가 만나고 게임과 오락을 하고 약물을 사용한다. 마약 처방이 허락되어 있으나 과용으로 죽는 자가 년 7만명이 넘는다. 참 기쁨 만족을 찾고 있지만 만족한가? 기쁨과 감사가 있나? 마음에 불평 원망은 없나? 어디서 큰 기쁨을 얻을까? 오래 가는 참 기쁨을 찾을까? 참 기쁨은 예수시다. 예수께서 찾아 오신다. 직접 오시고 빌립의 복음 전도를 통해 오신다. 사마리아에 오신다. 예루살렘에 오신다. 시카고, 우리 교회에 오신다. 무엇보다 내 가정, 내게로 오신다. 내가 있는 곳에 오신다. 바울은 주의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주께서 찾아 오시니 바울은 기뻐하면서 교인들에게 기뻐하고 기뻐하라 한다. 주님은 나를 만나 나에게 큰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생명을 주신다. 마음을 열고 그를 환영하고 모신다면 큰 기쁨이 우리 마음에 일어나고 우리 삶은 새로운 소망과 활력이 넘치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모시고 그의 복음을 가진 자로서 세상 어디서나 기쁨과 소망을 잃고 사는 사람을 찾아갈 수 있다. 예수께서 하신대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여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예수를 전하고 사랑을 나누되 그의 고통스런 짐을 대신 짊어질 수 있다면 사마리아의 큰 기쁨이 넘치지 않겠나? 우리에게는 더욱 기쁨과 감격이 풍성하지 않겠나? 우리 교회가 정말 아름답고 사랑스런 화합의 공동체로 든든하게 서게 될 것이다.

동영상은 www.diasporachurc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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