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pril 9, 2020

사랑 이야기 Stories of Love

사랑 이야기 Stories of Love (4/9/20)
이상한 바이러스가 가져온 거리두기 행정명령으로 자가격리가 시작되는 3월 중순부터 생활형태가 달라졌다. 사람이 모이는 학교 교회만 아니라 박물관 극장 식당도 문을 닫기에 집에 있는 사람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학교는 영상강의를 하고 교회가 실시간 진행하는 영상예배에 교인들은 집에서 참석한다. 식품과 음식을 집으로 배달하고 또 베르린 교향악,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도 프로그램을 무료제공하여 누구나 즐기게 한다.

나는 뉴욕 메트로 오페라를 처음 7일간 매일 저녁 보았다. 평생 상상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카르멘, 일트로바토레, 라보엠, 라트라비아타, 연대의 딸, 트리스탄과 이졸데, 예브게니 오네긴 등이다. 음악으로 대화하고 진행하는 연극이라 내용을 잘 알기 위하여 미리 공부도 하였다. 나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이런 오페라를 이전이나 이번 기회에 보았을 것이다.

전체 오페라는 사랑 이야기다. 이 사랑은 카르멘이 부른 하바네라 곧 길들여지지 않은 새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귀족 평민, 부자 가난, 도시 시골, 전쟁 평화, 공녀 군인, 주인 시종, 예술인 유흥가 사이의 모든 격리 담장을 넘어선다. 마음에 들면 남의 애인 약혼자 유부녀라도 유혹하고 탈취하며 질투와 증오로 복수하고 친구와도 대결하고 죽인다. 깊은 사랑을 약속하여도 쉽사리 싫증을 느끼고 배반하며 다른 대상을 찾는다. 순간적인 쾌락을 즐기다가 순진한 사랑을 만나 안정된 삶을 찾으나 위선과 체면으로 차단당하거나 질병이나 칼의 죽음으로 끝나는 아픔이 현장현실이다. 자기 중심적인 욕구를 채우려는 사랑이다. C S Lewis는 사랑을 Need Love (욕구 사랑)Gift Love (주는 사랑)으로 구분하는데 인간사랑은 대개가 받고자 하는 욕구충족의 사랑에서 시기 질투 배신과 죽음으로 끝나게 된다.

그런가 하면 주는 사랑이 있다. 뉴욕의 의료진이 환자와 죽는 자를 미쳐 돌보지 못하는 긴급상황에 아틀란타 의사 간호사 100여명이 찾아가 자원봉사하는 것은 베푸는 사랑이다. 내가 목회하던 뉴욕교회에 2 1녀를 가진 신실한 부부가 있었다. 잘 자라던 첫 아들에게 희귀한 근육 위축 (Muscular Dystrophy) 증세가 나타났다. 휠체어를 타고 오직 손가락으로 조절하나 두뇌는 이상이 없어 버어클리 대학에 다닐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으나 얼마 안가 세상을 떠났다. 남동생에게도 다섯 살에 같은 병이 왔다. 너무나 충격이나 대학을 졸업하고 세스나 비행기 회사에 입사하자 부모는 모든 것을 접고 아들 곁으로 가서 24시간 도우미로 10년 이상 삶을 온전히 바치고 있다. 큰 사랑이다.

더 큰 것은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다. 성자 하나님이 많은 고난과 죽음으로 신음하는 사람을 찾아와 함께 살며 가난과 질병을 치유하고 도운 것은 부모 사랑과 같지만 인간의 마지막 원수 죽음과 그 원인 죄의 문제는 그대로 있다. 죄가 죽음에 선행하기에 죽음을 해결하기 위하여는 죄문제를 먼저 다루어야 한다. 죄는 그 형벌을 받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고 또 죽음을 불러오기에 죄가 없는 예수께서 인간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음으로 "다 이루었다"며 죄의 요구에 응하였다. 그리고는 죽음을 정복하고 부활하였다. 자신을 내어주어 우리 대신 죽음으로 우리 죄를 말소하고 우리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사랑을 실행하셨다. 죄에서 해방되고 영생을 누리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 사랑의 선물을 받아드려야 하지않겠는가!!

             하바네라를 부르는 카르멘                                   길들여 지지 않은 새

              




              
        뉴욕으로 향하는 아틀란타 의료인                                           "다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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