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똥 Doggie Poo
길을 걷다가 간혹 강아지 똥을 만나면 이를 피하고자 한다. 이 강아지 똥을 권정생은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다. 아무런 가치와 쓸모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 씨를 만나 자기를 주며 그것이 자라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자 그는 자기의 가치와 목적을 알게 된다. 이 이야기를 내가1978년 수난주간 목요일 예배에서 사용하였다. 은혜를 받고자 사순절 금식을 하며 절정이 되는 주간 주께서 마지막만찬을 하신 목요일 저녁 성도들의 발을 씻어주고 성찬식을 행하고 설교에서 강아지 똥 이야기를 하며 주의 희생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난다는 말씀으로 나 스스로 은혜가 되었다.
예배 후 아내를 집에 데려다 주면서 목회초년생 답게 예배가 어떠하였는가 물으며 은혜로웠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아내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금식하고 나는 교회에서 금식하며 준비한 예배였으니 당연히 은혜가 되었을 것이다. 사모의 응답은 그걸 설교라고 하는가? 거룩한 예배에서 강아지 똥을 말하다니 말이 되는가? 나를 충격과 미궁으로 빠뜨렸다. 집에서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목욕은 무슨 목욕! 돌아가 기도하라고 내 몰아친다. 이런 잔혹한 일이 또 있을까? 자고 있는 아이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쫓겨나듯 교회로 돌아갈 때 금식의 은혜는 사라지고 마음에 어둠이 내리 덮친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도도 나오지 않고 아무런 의욕이 없어진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구나! 밤이 지나 성금요일 태양은 올라 왔으나 내 영혼은 가장 어두운 칠흑 같은 밤이다. 주께서 십자가에 못박힌 날 대낮에 임한 캄캄함이 이정도였을까?
토요일이 다가온다. 어떻게 부활주일을 맞이하나? 그래도 부활주일은 오고 있어 컴퓨터가 없던 시기 원지를 긁어 주보를 만들고 있는데 한 미국목사가 전화로 아직도 교회에서 금식하나 하면서 찾아오겠다고 한다.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아 오고 싶으면 오라 하였더니 그가 11시 경에 왔다. 본당으로 들어가 나란히 앉아 무슨 말을 하였는지 기억이 되지 않으나 서로 대화하던 중 내가 강대상 쪽을 보니 그곳에는 인자하신 주님이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순간 내 속에서 기쁨과 평안이 올라오며 어둠은 사라지고 밝은 빛이 찾아왔다. 옆의 목사에게 너는 내 친구다 너를 사랑한다고 하며 크게 포옹을 하였다.
아내에게 전화하니 그는 고민에 빠져 있다. 내게 일어난 일을 말하며 저녁 아이들이 잠든 후에 교회로 데리고 왔다. 그가 기도하는데 11시 누군가 옷자락 펄럭이며 앞문으로 들어와 강단으로 가서 서는데 너무 눈이 부시어 처다 볼 수 없었지만 순간 주님임을 알고 주님 사랑합니다 크게 고백하며 기뻐 춤을 추듯이 변화가 왔다. 그날 아침 그는 부활하신 주님과 베드로의 대화 말씀을 읽는데 백낙희의 딸 남선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큰 글자로 나타나는데 주님 저는 주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대답함으로 덮친 마음의 어둠과 무거움이 벗어지고 주를 사랑하게 되었다.
3월 26일 흰 눈이 내린 올바니 한인교회의 부활주일 새벽, 보도의 눈을 쓸고 새벽예배에 나아오는 성도들을 맞이하여 부활하신 주님을 찬양하고 증거하는 감격이 내 삶의 방향을 전환한 계기였다.
강아지 똥으로 덮친 무덤 같은 어둠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남으로 주어진 새로운 삶의 가치와 목적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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