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February 22, 2021

사순절 Lent

 

사 순 절 (Lent) (2-18-21) 
며칠 전 우리의 큰 명절 설을 지났지만 우리에게는 전통적으로 다달이 명절이 있고 근래에 와서 3.1절, 8.15 등이 첨가되었다. 이런 명절은 내려오는 문화를 지키고 함께 모여 잔치하고 그러면서 기억과 다짐을 한다. 추석은 수확을 기뻐하고 또한 새해의 풍년을 기원한다.  3.1절은 나라와 자아를 빼앗긴 식민지로부터 회복을 염원하는 민족운동을 기억하고 소중한 자유를 지키고자 한다. 
어느 민족에나 명절이 있지만 유대인의 유월절은 그들이 에집트의 종살이로 고생 신음하면서도 해방의 길이 없을 때 하나님의 개입으로 자유를 얻고 새로운 민족으로 탄생된 것을 기억하면서 능력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들은 어떤 역경도 이기는 힘을 얻는다. 유월절을 지나고 나면 그들은 더욱 강한 민족이 되고 강화된 생존 근육은 그들의 역사를 이끄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명절은 지난 날의 기억을 넘어 민족 집단을 강하게 결속하여 오늘과 내일로 뻗어가게 한다.  
기독교의 큰 명절인 성탄절과 부활절은 대림절 사순절이라는 준비 기간이 있다. 금년은 4월4일이 부활절이라 그 이전40일을 준비기간으로 가진다. 40이 사순이라 사순절이 되고 숫자 40은 노아 홍수, 모세와 엘리야의 금식, 예수의 광야 시험과 금식이 모두 40일로 고난과 관련된다. 예수님의 영광스런 부활은 십자가 고난 후에 오는 것이기에 니케아 교회회의(325)는 부활주일 전 주일을 제외한 40일을 그의 고난을 기억하는 기회로 삼고자 사순절을 정하고 시작의 첫날을 ‘재의 수요일’이라 하였다. 재는 참회와 슬픔의 표시로 이마에 재를 바르고 지난 죄를 참회하며 사순절을 시작한다. 
사순절에는 교회에서 출교되거나 성찬참여를 금지 당한 사람이 회복되는 훈련을 하고 새 신자가 세례 받을 준비를 하고 일반교인은 겸손하게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동참하게 된다. 교회는 기도와 금식, 자선 세 가지를 시행하였다.  
죄는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키기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기도로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로 용서하시는 분임을 믿으며 감사한다. 집을 나간 탕자가 돌아올 때 사랑으로 받아주는 아버지와 같다.  금식은 육체의 소욕을 제어하며 물 이외의 모든 음식을 금하거나 또는 오후 3시 이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으며 육류를 금하다가 근대에는 금요일만 육류를 제외하기도 한다. 또는 오락이나 기호품을 금하고 절제하며 부족함을 체험한다.  자선과 구제는 주님의 사랑과 희생의 삶을 본받아 내 가진 것으로 구제하고 국내외 많은 자선 봉사활동에 참여한다.  
사순절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나? 개인이 주님의 고난을 조금이라도 경험하면서 주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내 영혼과 삶이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새로워지는 기회가 된다. 나 이외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과 형편을 깊이 이해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나로서는 처음 목회하던 1978년 기도와 금식 중에 영혼의 깊은 어둠에 빠졌지만 토요일에 부활하신 주님을 놀랍게 경험하고 영광의 부활주일을 만나다. 이것이 나를 목회자가 되게 하는 힘과 바탕이 되었다. 가장 큰 유익은 나의 금식이나 구제를 통해서가 아니라 은혜와 사랑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의 인격과 가슴을 확인함으로 내 믿음과 삶이 확고하게 되어 어떤 물결이나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이 큰 축복이요 힘이다.  
사순절은 나를 위한 것이라 이 기간에 믿음과 삶이 새로워지는 축복이 임하기를 기원한다. 










Saturday, February 13, 2021

흰소, 붉은 소 The White Cow, The Red Calf

 

흰소, 붉은 소 The White Cow, The Red Calf 
금년은 신축년, 60년에 한번 오는 흰소의 해다. 소는 우리 민족과 특별히 친밀하다. 농사 짓는 인류와 함께해 온 소라 농사가 삶의 근본이던 우리에게 소는 삶과 직결되어 있다. 소의 성격이 우리와 닮은 점이 있어 더욱 그러하다. 소는 꾸준하다. 시간을 나누는 간지에 넣을 동물의 순서를 정하고자 경주를 시켰더니 소는 느리기에 일찍 출발하여 결승점에 먼저 도착하였는데 그 뿔에 매달려 온 쥐가 뛰어 내리며 “내가 1등”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소는 논과 밭의 일, 짐을 나르는 일을 하기에 가족의 하나로 생각되어 생구라 부르고 꿈의 살찐 소는 풍년, 파린 소는 흉년을 말하기에 사람이 음식을 먹듯이 소에게도 여물을 잘 먹인다. 
소는 유순하여 어린이의 말도 잘 듣기에 여름철 소를 먹이고자 풀이 있는 산에 가서 놓아두고 친구들과 놀다가 오후에 배불리 풀을 먹은 소를 찾아 집으로 돌아온다. 때로 소를 찾지 못하면 동민들이 등불을 들고 찾아나서기도 했다. 소는 재산 목록 1호가 될 정도로 귀하고 값진 것이라 땅을 사거나 학비로 목돈이 필요할 때 사용되기에 한 때 상아탑 대학을 우골탑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이중섭 화가의 흰 소 (1954)는 미술평론가 모임에서 21세기에 남을 한국의 그림이 되었다. 깨끗함, 기백, 역동감과 진취성, 범접하지 못할 위엄 등이 백의민족의 삶과 기상을 닮은 것이다. 소는 하품 외에는 버릴 것이 없다고 하듯이 모든 것을 내어준다.  
성경은 공백이 아니라 인간상황에 주어지기에 그때나 오늘이나 같은 사람이라 성경에 소가 많이 나온다.  농사와 운반으로 열심히 일하는 소는 하나님의 한 모습이다.  하나님을 둘러싼 그룹천사의 사면 얼굴의 하나가 소로 나타나고 예수님의 삶과 사역을 말하는  4복음의 마가복음은 쉴틈 없이 일을 하는 소의 모습이다. 
소는 재산이고 정결한 동물이라 고기와 젖은 양식이 된다.  소는 사람을 정결하게 하는 제물로 사용된다. 사람은 허물과 죄로 부정하여 거룩한 하나님을 대할 수가 없기에 하나님 앞에 서려면 정결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신에게 기도하기 전 정화수로 몸을 씻는 관습이 있다. 죄의 결과는 죽음이라 누군가 대신 죽음으로만 죽음을 면하기에 소나 양 염소 등을 사용한다. 생명이 피에 있기에 피를 대신 흘림으로 죽을 자를 살게 하고 피 이외의 나머지 부분은 불에 태우든지 또는 음식으로 나누고 잔치를 한다. 집을 나간 아들이 돌아온 때 소를 잡아 잔치한 것은 죽었던 생명이 살아온 것을 기뻐함이다. 사체와 접촉하여 부정하게 된 자가 정결하게 되려면 멍에 메지 않고 새끼를 낳지 않은 붉은 암송아지를 성밖에서 잡아 전체를 불태우고 그 재를 섞은 물을 부정한 자에게 뿌린다. 하나의 의식이지만 이는 예수께서 성밖 십자가에서 죄인 대신 죽어 흘린 그의 피를 믿고 받아드리면 누구나 용서와 정결함을 입고 하나님과 친밀하게 됨을 보여준다.  
2021년 정결한 흰소의 해에 붉은 소 예수의 피로 씻음 받고 굽힐 줄 모르는 기백으로 풍성한 나날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February 12 is the new years day of the year of the white cow in Korean traditional lunar calendar. The cow is like Koreans in many ways, faithful hard labor, gentleness and boldness with energy, and giving all things away for others. It is regarded as a family member. The White cow shows pure cleanness, a symbol of Koreans, the race of white clothes. The cow was offered as sacrifice for unclean sinners to make them clean and ransomed, which shows in advance the person and work of Jesus Christ, who is portrayed as a cow in Gospel of Mark as well as one face of Cherubs, character of God himself. In Jesus anyone is clean and ransomed.










Monday, February 8, 2021

“교회가 3파입니다” The church in three factions

 

“교회가 3파입니다” The church in three factions 
미국은 처음부터 이민의 나라로 자기가 살던 나라를 떠나 새로운 꿈을 찾아 온 사람들 또한 여러 분야의 필요를 채우고자 초청된 전문직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어떤 배경이든지 일단 미국에 와서 살면 멜팅 팟 (찌개 그릇)으로 모두가 녹아 하나로 융합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세월이 지나 뚜껑을 열고 보니 기대와는 달리 샐라드 볼처럼 각 인종 종족 언어가 자기 모습 그대로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자 이제는 각각이 자기 위치와 능력을 발휘하며 서로 연결하고 조화를 이루는 큰 모자익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국가정책이 변화하였다. 사람마다 생각과 방침이 다르기에 차이와 대립은 조직체에도 나타난다. 
공산주의는 다른 것이 용납되지 않지만 민주사회에서는 표현과 모임의 자유가 주어지기에 서로가 다른 것을 인정하고 받아준다. 미국 정치에서 민주 공화가 대표적이나 10여 정당이 있고 이스라엘은 49 정당이 있으나 나라의 평화와 일치를 위하여 협력하며 모자익을 형성한다. 미국이 드물게 힘든 대통령 선거를 지나며 국논이 완전히 분열 대립 상태였기에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며 나라의 일치와 평화를 우선으로 강조하였다. 그러나 정책이 다르다고 상대를 배제한다면 과연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교회도 생각과 기대가 서로 다른 사람의 조직체이기에 예외가 아니다. 어느 교회는 목사가 떠나며 3파로 되어 있다고 하였다. 목사가 떠나기를 원하는 사람, 있기를 원하는 사람,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겠지만 다른 면으로 나누어지기도 한다. 교회는 크기가 어떠하든지 목사가 없이는 교회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없기에 목사는 필요한 존재이지만 어떤 이유로든 목사가 떠나는 일이 생기고 그 때마다 교회에는 상처와 긴장이 있고 도전과 기회가 된다. 이런 교회에 담임목사가 바로 부임하면 자기 목회 방침을 제대로 펼 수가 없고 다시 문제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기에 전환기 목사 제도가 있다. 
전환기 목사는 일정 임기가 정해지고 담임목사 승계가 불가능하며 그의 주된 일은 교회의 상처치유와 일치를 이루어 담임목사 부임을 위한 길을 준비하며 교회의 역사를 존중하고 교회의 정체성 곧 사명을 확인하고 교회 지도력을 양성하고 교회가 속한 교단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교회 안정을 위해서는 먼저 장로들이 바르게 방향을 잡아야 한다. 
바다에 항해하는 배들은 레이다가 없을 때 북극성의 위치를 확인하고 방향을 정하듯이 교회의 방향설정 나침반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장로 수양회를 통하여 이들로 말씀에 서서 기도하게 하고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게 한다. 이들이 교회에서 교인을 위하여 교인과 함께 기도하게 하여 전체적으로 주의 은혜와 역사를 경험하게 되니 교회생활에 동기가 부여되어 직분자 교육, 제자 훈련과 주중 성경공부에 서로 격려하며 참여하게 된다. 기쁨과 감격으로 찬양하고 예배하며 교회의 각종 사역에 헌신한다. 당회 모임도 감사와 웃음이다. 이런 변화가 전체적으로 일어나 교회는 하나의 모자익을 형성한다. 
몸이 하나요 지체는 많으나 한 몸을 이루어 머리가 원하는 일을 수행한다는 말 그대로다. 그러지 못하면 병이라 말씀과 기도, 성령의 역사가 약이나 수술의 일을 한다. 담임목사의 길은 준비되고 전환기 목사는 떠날 때가 되어 교회는 안정 속에서 새로운 목사와 감격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다. 








Monday, February 1, 2021

이런 교회? A Church like This?

 

이런 교회? A Church like Thins?
오래전 어느 목사가 찾아와 문제 없는 교회를 하나 소개하여 달라고 한다. 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나는 그에게 그런 교회가 하나 있다고 하니 크게 관심을 보인다. 그것은 천국에 있지! 하였더니 실망을 하는 것 같다. 사실 문제 투성이 사람이기에 이런 사람을 위하여 교회와 목회자가 있다. 주께서 바로 문제의 인간 가운데 오시고 그들을 위하여 교회를 세워셨다. 
이런 교회에서 40년간 사역을 하고 마지막 8개월 안식년을 가진 후 은퇴식을 하기로 했으나 사실상 은퇴를 한 것이다. 40년! 충분히 일했으니 이제는 쉬고 편히 지나자! 원하던 여행을 하며 친구를 만나며 여기 저기를 찾으니 참으로 자유롭고 편한 시간이다. 한 달이 되던 밤 옆구리가 아파 온다. 의사와 통화한 후 12시간을 운전하고 돌아와 의사를 만나니 슁글(대상포진)이라 한다. 약이 없기에 아플만큼 아파야 한단다. 이런 병도 있나? 하지만 도리가 없다. 한 달 동안 앉으나 누우나 계속 통증에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도 잠을 잘 수도 없다. 그렇게 아픈 것은 처음이다. 
 주님, 어떻게 된겁니까? 물으니 대답이 들려온다. 40년 사역했으니 이제 편안하게 지나자고? 나와 한 약속을 기억하나? 잊고 있던 43년 전의 일을 생각나게 하신다. 대학을 졸업하며 당시 죽을 병에 걸렸다. 멀리 바닷가의 요양 병원을 찾아가니 저녁이라 하루밤을 여인숙에서 지나게 되다. 희망이나 내일이 없고 삶의 의욕이나 죽을 힘도 없다. 하나님 앞에 앉아 예배하는데 주께서 말씀을 주신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로다 그가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붙이지 않으셨도다(시118:17,18). 믿어지지 않으나 그것은 주의 말씀이다. 죽으려고 왔는데 죽지 않는다고! 그렇다면 왜 이런? 또 살아서 어떻게? 여호와의 훈련이니 그의 행사를 선포하라 하신다. 믿음의 눈이 열리며 희망과 기쁨 감사가 속에서 올라온다. 삶의 이유와 사명이 확실해진다. 
 슁글의 통증 가운데 이말씀을 기억하자 주께서 일을 하라면 순종하겠습니다! 주께 응답할 수 밖에 없다. 바로 노회에서 전화가 오고 주일 설교 요청을 받은 곳이 미네소타 교회다. 금요일 저녁 어느 장로 댁에서 10여명이 모여 정말 배꼽을 잡고 웃는다는 말 그대로였다. 목사 장로가 모여 그렇게 웃을 수도 있는가! 농학(조오크)대학 학장이라는 장로가 있어 모두가 입만 열면 웃음이다. 몸의 통증이 사라지고 있었다. 주일 강단에서 보니 앉아 있는 400명 회중이 목자 없는 양이라는 것을 실감하자 가슴이 아프다. 예배 후 당회원과 노회대표 모임에서의 6개월 전환기 목회 초청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겠나? 
 석 달 동안 년말과 새해를 준비하자 당회가 나에게 몸이 불편한데도 수고하였으니 휴가를 다녀오라 한다. 정해진 사역기간에 무슨 휴가는요? 사양하니 1월 당회에서 비행기표를 건네주며 플로리다에서 쉬고 오라고 한다. 
 교회에서 얻어준 아파트는 골프장 바로 옆이다. 아내가 뉴욕에서 걸어보고 싶어하던 골프장을 아침 저녁 걷는다. 아파트 전망은 좋지만 북향이라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음산한 것을 장로들이 보고 갔다. 브라질 상파울로 교회집회를 위해 부부가 1주일을 다녀오니 그 사이 정남향 아파트로 모든 것을 옮겨두었다. 두 번 더 이 교회의 전환기 목회로 모두 5년정도 사랑을 나누었으니 나야말로 얼마나 복받은 목사인가!









Tuesday, January 26, 2021

새로운 시작 A New Start

창12:1 새로운 시작 A New Start (21-1-26 은목교회 방송설교) 

청취자 여러분 새해에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다. 금년 새해는 아주 암울하게 시작되었다. 국회가 대통령 당선자를 마지막 결정하려고 모인 1월6일 의사당은 소위 폭도들의 포위와 공격을 받아 의원들은 대피해야하는 미국 역사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대통령은 결정이 되고 20일 취임식이 있는 의사당 주변은 철망으로 봉쇄되고 3만 군인이 지키고 있었으나 그 군인들도 믿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참으로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가운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하였다. 새 정부가 어떻게 분리된 민심을 하나 되게 하고 국민을 안정시킬 것인가 큰 과제를 안고 새로운 시작을 하였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도 새롭게 출발하였다. 주변 환경은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하여도 우리는 새해의 결심으로 새롭게 시작하여 어언 한 달이 지나간다. 새해 결심이 무엇이었나? 그것이 잘 지켜지고 있나?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고 있나? 지난 날과 어떻게 달라지고 있나?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개가 새로운 시작을 한 사람들이다. 그 중의 몇 사람을 살펴 보려고 한다.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이민하여 살고 있었다. 이민자는 보다 나은 삶을 향한 꿈을 가진 자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아브라함은 꿈을 가지고 이민을 하였지만 자기 대를 이어갈 자식이 없다.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망이다. 그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났다. 너는 살던 곳과 부모를 떠나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내가 네게 복을 주어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고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고 너를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이 복을 받게 하리라 하신다. 그 때 그의 나이 75세, 안정할 나이에 또 다시 떠나야 하나? 이전에는 부모의 꿈, 자신의 생각으로 이민하였지만 이젠 하나님의 뜻을 따른 새로운 출발이다. 목적지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는 말씀을 따라 출발하였다. 가라면 가고 머물라면 머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믿을만한 것인지 시험하고 확인도 하는데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셨지만 그는 자식이 없다. 누가 후계자가 될 것인가? 종을 후계자로 삼나? 아내의 종을 통하여 자식을 얻나? 여러가지 생각을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달랐다. 이민 25년만에 생산 가능성이 없다고 하던 부인 사라를 통하여 아들 이삭을 주셨다. 자기 뜻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고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른다. 이삭이 잘 자라고 있는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3일길 모리아 산에서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 청천벽력이다. 우리라면 어떻게 할까? 아브라함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아이와 함께 그 산으로 향한다. 제단을 만들고 아이를 묶어 제단에 올리고 칼을 들어 그를 바치려 한다. 하나님은 급하게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네 아들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이제 내가 네 믿음을 확인한다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믿게 되었다. 신임하면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다. 하나님이 약속한대로 그는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창대하고 땅의 모든 사람이 복을 받는 조상이 되었다. 그의 새로운 시작은 자기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입에 두고 마음에 묵상하며 그대로 지켜행하라 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믿으실 정도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는가? 

예수께서 갈릴리 어부 베드로의 배를 빌려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더니 베드로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하신다. 베드로는 내가 밤새 애를 썼으나 잡지 못했지만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겠나이다 하며 그물을 내리니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베드로는 주 앞에 엎드리고 주를 따르며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새해 출발은 어떠한가? 주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로 하나? 

 다음으로 야곱은 태에서부터 쌍둥이로 다투다가 동생으로 태어난 후에는 계속하여 형의 자리를 얻고자 다투고 씨름하는 삶이었다. 배고픈 형에게 팥죽 한그릇을 주고 장자의 이름을 빼앗고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받았으나 그는 형의 위협 속에 외갓집으로 도망하였다. 외삼촌의 둘째딸과 결혼하고자 7년을 수일같이 양을 쳤지만 첫날밤을 지나고 보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은 다른 딸이다. 계속하여 속임을 당한다. 속이고 속임당하는 가운데 그도 양이 많고 자녀가 많이 나자 위험을 느끼고 야간 도주를 한다. 자기 가족과 재산을 이끌고 외가를 떠나 금의환향의 길을 출발하는데 외삼촌이 사람들을 모아 추격하는 것을 하나님이 막아주셨지만 이젠 형 에서가 400명 군사를 이끌고 온다. 산넘어 산이다. 많은 선물과 함께 가족을 먼저 보내고 자기는 강가에 남았는데 누군가 나타나 씨름을 하게 된다. 그는 지금까지 씨름하여 지지 않았는데 지금 상대방이 만만치 않다. 새벽이 되자 상대는 야곱의 허벅지를 치면서 놓으라고 하나 축복해야만 놓아주겠다고 한다. 이름을 야곱에서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었다. 발꿈치를 잡는 사람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고 함은 씨름 상대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축복이지만 야곱은 허벅지 뼈가 위골되어 절룩거린다. 그간 자기 힘과 꾀를 의지하고 씨름하고 다투었으나 이젠 그럴 수가 없다. 지팡이를 의지하며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의지하게 되었다. 더 이상 경쟁하고 씨름할 수가 없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한다. 나를 의지하던 삶에서 온전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새로운 시작을 하였더니 그 이름이 한 나라 이름이 되었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나? 

 마지막으로 가문과 학벌 신분이 좋아 촉망되던 젊은 사울이 있다. 그는 하나님께 열성이 있어 예수의 복음 전하는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 서고 유대교 지도자의 신임을 받았다. 이단으로 인정되던 예수교인들을 척결하도록 공문을 받아 외국으로 가고 있다. 그는 당당하고 야망이 가득하다. 목적지에 가까이 가는데 갑자기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비치자 그는 엎드러졌다. 음성이 들린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는가?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사울은 눈이 어두워지고 볼 수가 없다. 주의 손에 붙잡히고 주의 영이 임하니 눈이 열려 생명의 주를 보게 되고 이름을 바울로 바꾸었다. 그가 박해하던 예수를 전하며 아시아 구라파 각지에 교회를 세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기가 산 것이 아니라 자기 속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하며 성령에 이끌리다가 마지막 주를 위해 생명을 바치기까지 하였다. 교만하고 당당하던 그가 주님을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이민자로서 좌절과 실망은 아닌가? 모든 일에 씨름하듯이 힘든 투쟁은 아닌가? 자랑과 교만으로 자기를 내세우는 것은 아닌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주의 말씀과 힘에 의지하고 성령에 이끌리어 하나님이 예정하신 새로운 삶으로 출발하지 않겠나?!





자율주행 Self Driving

자율 주행 (Self-Driving)


금년 들어 세계 최고의 부자가 새롭게 탄생하였다. 일론 머스크 테스라 전기 자동차 창업자가 아마존 창업자 베조스를 능가하여 총자산 1850억불로 세계 최고 부자가 되었다. 2020년 초 그는 50위였는데 테스라 주가의 폭등으로 1년에 1500억불 이상 자산이 증가한 것이다. 이는 대중이 전기차를 선호한다는 말이다. 한국을 비롯하여 많은 나라에서 전기차를 생산하지만 미국 테스라의 인기가 대단한 것이다. 개스를 사용하지 않기에 친환경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전기차는 자율 주행이 가능하기에 이전처럼 운전자가 운전대를 잡고 복잡한 길거리를 살피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자율주행차는 장착된 GPS, 지도와 함께 인공지능으로 도로와 주변 상황을 인식하고 판단하여 운행하며 제어 장치가 있어 스스로 교통상황에 대처하게 된다. 

작년말 한 친구는 아들이 사 준 테스라로 아주 편하게 시카고에서 뉴욕에 잘 다녀왔다. 콘도에 돌아와 주차장에 들어가 주차하는데 차가 갑자기 앞으로 나가 기둥을 들이 박더니 또 뒤로 물러가 다른 기둥을 들이 박은 것이다. 운전자가 손을 쓸 사이가 없이 순간적으로 일어난 사건이다. 자동차는 폐차 처분해야 하고 차 안에 있던 부부는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여기 자율 주행의 한계를 본다. 보통은 잘 돌아가다가 언젠가 인식, 판단, 제어 장치 중 하나에 생각지 않은 문제가 발생하면 이런 사고가 나는 것이다. 자율주행이라고 해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내장된 프로그램에 따라 움직이지만 이에서 벗어나거나 문제가 생기면 사고가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신호등이나 차선, 추월하려고 끼어드는 차를 잘못 인식하는 경우에도 이런 일은 일어날 수가 있다.

사람은 처음부터 누군가와 함께 하며 서로 존중하고 따르는 종속성이 있는가 하면 동시에 자기 좋은대로 하는 자율성을 가진다. 아이를 길러보면 아이는 어려도 부모의 생각이 아니라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경향이 있음을 본다. 이는 타고난 것이요 첫 사람에게서부터 내려온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리는 자유를 가지면서 하나님의 계획과 규정 아래 있었다. 모든 것이 주어지고 허락되었으나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한 가지 제한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 한 가지 제한을 벗어나 온전한 자율의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그들에게 주어진 제한을 벗어 났던 것이다. 결과는 자율이 아니라 갈등과 두려움, 고통과 죽음을 맞게 되었다.

지난 20일 자유의 나라 미국 46대 대통령이 취임하고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이기에 국민 다수의 표를 얻음으로 대통령이 되었으니 국민을 위하여 일을 하며 모든 사람의 대통령이라고 단언하지만 개인과 정당 종족 모두가 다른 생각과 욕망을 가지고 있으니 그들을 어떻게 만족시킬 것인가! 그가 대통령으로서의 정책을 실천하며 자기와 맞지 않은 반대자를 어떻게 포용할 것인가! 성조기와 법 아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라 하지만 실제는 살라드볼처럼 저마다 자기 색채를 나타낼 뿐 아니라 때로는 자기와 다른 자를 배척하고 배제하려 한다. 자율을 내세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까? 혼란과 분리, 갈등을 일으킬 뿐이다. 모두가 원하는 조화와 자유는 어디에 있을까? 각자 창조주가 정한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할 때 이루어지지 않겠나! 









Friday, January 15, 2021

크리스마스 선물 A Christmas Gift

크리스마스 선물 A Christmas Gift 

크리스마스가 되면 멀리 있는 사람과도 인사를 나누고 또 가족이나 친지간에는 선물을 주고 받는다. 대개는 어떤 선물을 원하는지 알아내고 그에 맞추어 준비한다. 나도 자녀들의 정성스런 선물을 받으며 감사하고 기뻐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세상의 구주로 오신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매우 큰 절기다. 감격으로 크리스마스 아침을 맞이하는데 내게 일이 생겼다. 일어나니 매우 춥다. 문은 모두 닫혀 있기에 히터가 있는 곳에 갔더니 불은 꺼져 있고 히터에 연결된 가습기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어찌 이런 일이 생기나?  

히터를 설치한 회사에 전화를 했으나 문을 열지 않았다. 크리스마스날 아침에 문을 열 사람이 없겠지만 찾아보니 일을 하는 곳이 있고 한 시간 이내에 사람이 왔다. 너무 감사하다. 물이 새어 기계를 망가뜨렸기에 임시로 히터를 돌아가게는 하지만 부품을 바꾸든지 아니면 히터 전체를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히터가 돌아가다 멈추었다를 반복하지만 온도는 제대로 올라가지 않는다. 휴일이 지난 월요일 설치회사 사람이 나왔다. 기계는 문제가 없지만 정기적인 청소와 가습기의 바른 패드가 필요하다고 하며 교정을 하고 작은 부품 하나에 습기가 차 있는 것을 잘 닦아내더니 히터가 돌아가고 기능이 회복되었다. 

 나는 이번 경험을 크리스마스의 큰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하였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불이 나가 추운 가운데 예수님 탄생을 기억하게 되었다. 방이 없어 마굿간에서 분만하고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어려웠겠나? 구주로 오셨지만 그를 따뜻하게 환영하고 맞아주는 자들이 많지 않고 오히려 그를 냉대하는 차가운 세상이었다. 이런 주님의 탄생과 형편을 실감하니 이 얼마나 큰 선물인가! 

물이 스며 들어 기계가 망가졌다는 진단은 바로 우리 인간의 문제임을 알게 된다. 세상의 물결, 곧 육체와 안목의 정욕, 자기를 내세우는 교만의 물결이 우리 속에 스며 들어 우리를 망가뜨리고 하나님 형상을 닮은 본래의 기능을 잃어버리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인간의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과학과 기술, 의약이 동원되어 돌아가는 것 같으나 참 해결은 되지 못한다. 오직 설치자 곧 우리를 만들고 태어나게 하신 그 분이라야 우리의 근본 문제를 풀어주신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그가 창조주 하나님으로 이 땅에 오시어 우리 죄를 씻어내고 우리로 원래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시니 이 얼마나 크고 귀한 선물인가! 

 매리랜드의 한 형제가 전화를 하여 카나다에 있는 처남이 담석수술을 하고자 병원에 갔더니 폐에 물이 차서 그것부터 먼저 치료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부인은 만삭으로 분만을 기다리는 형편이라 긴급기도를 부탁한다. 삼일 후에 좋은 소식이 왔다. 처남의 담석이나 폐의 물이 사라져 수술할 필요가 없어지고 아이는 잘 태어났다고 한다. 미네소타의 한 집사의 아들이 임파선에 혹이 생겨 매요 클리닉에서 이틀 후 시술하게 되었다고 응급 기도를 부탁한다. 병원에 갔더니 임파선이 깨끗하더라고 한다. 주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하신 일이요 지금도 계속하여 이런 일을 하신다.  

기계를 고치는데는 돈이 들어가고 의약에는 많은 돈을 지불하지만 예수님의 경우에는 내 문제와 필요를 알고 그를 환영하여 받아드리기만 하면 생명과 평안을 얻는 것이니 정말 귀한 선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