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ne 28, 2022

힘을 기르라 Build up your Strength

힘을 기르라 Build up your Strength (6/25/2022)
1975년 뉴욕에서 목회하던 교회에 중학교에 다니는 어느 장로의 딸이 얼굴 예쁘고 공부를 잘하였더니 다른 아이들이 그를 따돌리고 놀리며 몸으로도 그와 싸우고자 하였다. 이를 안 엄마가 그를 태권도장으로 데리고 가서 특별 교습을 부탁하고 학교에 갈 때에 도복을 가지고 가서 보게 하며 매일 도장에 가서 훈련을 받았다. 3개월이 지나 발 차기를 제대로 하게 된 때 학교에서 그를 괴롭히던 아이들 중에서 제일 키가 크고 힘이 센 아이를 골라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한 판 승부를 결정하기로 하였다. 모두 둘러서서 보는 가운데 이 조그만 아이가 뛰며 발차기를 하여 상대방을 쓰러뜨렸다. 모두가 탄성을 지르더니 다시는 그를 놀리거나 괴롭히는 일이 없었다. 이렇게 매일의 인생살이가 힘이라는 것을 배운 사람은 운동과 무술만 아니라 건강 음식, 지식과 기술로 힘을 기른다. 
개인만 아니라 국제정치도 힘의 대결이다. 양순하다고 봐주는 것이 없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을 알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4개월이 넘는 전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세계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성경 구약의 역사도 전쟁으로 채워져 있다. 이스라엘의 아합왕 시대에 아람왕 벤하닷이 많은 나라를 점령하고 32지방왕을 세워 이스라엘을 침략할 구실을 찾으며 모든 은과 금. 왕비들과 딸들을 모두 넘기라 한다. 곧 전쟁을 하자는 것이다. 아합은 선지자의 말을 따라 고관의 청년들을 앞세우고 군대가 적군을 공격하여 죽이니 아람왕은 도망하고 이스라엘왕은 크게 이기고 많은 전리품을 얻었다. 선지자가 다시 아합왕에게 가서 말한다.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할 일을 알아 준비하소서. 아람 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였다. 전쟁에 대비하고 동시에 전쟁에서 패배하지 않으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평화롭던 유럽나라들은 이제 국방비에 투자하고 무기를 준비하고 대비한다. 군인들이 발전된 무기로 훈련을 받고 실전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 큰 힘이다. 미국군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실전 경험이 있기에 그것이 힘을 더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노예 생활하던 자기 백성을 구출하고 주시기로 약속한 가나안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강한 민족들이 살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모세와 여호수아를 통하여 정복 점령 정착하고 평화를 누리게 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전쟁을 알지 못하기에 이들에게 전쟁을 가르치기 위하여 하나님은 여러 민족들을 남겨두어 이스라엘에게 전쟁을 가르치겠다 하셨다. 전쟁이 힘을 기르게 한다. 
한국은 역사에서 많은 침략을 당하고 전쟁을 경험하며 배웠다. 이웃의 위협과 침략에서 나라를 지키려면 힘을 길러야 한다고 정도전도 안창호도 외쳤다. 교육 과학 기술 정보에 많은 것을 투자하고 그만큼 이루어 현재 많은 분야에서 세계 제일의 자리를 차지한 것이 나라의 힘이다. 아프리카와 중동 여러 나라의 개발 기술 시범, 누리호 위성으로 우주 강국 진입, 석탄을 석유로 전환하는 기술, 한국어의 유엔 공용어, 말라위의 한국 편입 소청 등은 한국이 힘을 기른 증거이지만 또한 우주를 창조하고 다스리는 능력의 하나님을 교회가 겸손히 믿고 의지하며 기도하였기에 하나님이 은혜로 사랑을 베푸신 결과로도 본다. 하나님을 기뻐함이 힘이기에 개인, 국가가 그를 기뻐하면 625 같은 전쟁이 다시 일어나지 않는 힘을 기르게 될 것이다.   









Wednesday, June 22, 2022

아버지날 Father’s Day

아버지날 Father’s Day(6/19/2022)
미국이 6월 셋째 주일을 아버지날로 정하여 아버지를 기억하고 존중을 표시하지만 한국은 거의 모든 아버지가 훌륭하게 기억될 것이다. 
경남 산청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이 대구로 중학교에 갔다. 공부에 관심 없이 지나다가 1학년을 끝내며 68명 반에서 68등이었다. 아버지의 실망이 두려워 68을 1로 고쳐서 가지고 갔더니 아버지는 아들의 1등을 축하하고자 재산 1호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하였다. 어설픈 거짓에 속아 재산1호를 처리한 아버지께 그는 너무 죄송하여 그때부터 열심히 공부하여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를 거쳐 대학교총장이 되었다. 그의 아들이 중학교에 간 때 그는 아버지께 사죄하고 싶었다. “아버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인 것은 …” 아버지는 가로 막으며 “그만해라 다 알고 있다. 네 아들이 듣겠다.” 경북대학교 박찬석 총장의 이야기이지만 대개의 아버지가 그러하고 그 정신이 자녀에게 전해진다. 
나의 아버지도 그 중의 한분이다. 그는 일제시대 19세에 결혼하여 오두막집에 신부와 모친을 두고 돈을 벌겠다고 일본으로 건너갔다. 1년간 밤낮 노동을 하였지만 돈이 모아지지 않기에 이런 노동을 내 나라에서 해도 잘 살겠다고 확신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농협에서 융자하여 버려진 땅을 구입하고 부부가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상환과 융자를 반복하며 동리에서 잘 사는 집으로 변하였다. 정직과 성실 근면, 자수성가의 정신으로 일구어 낸 것이다. 해방 후 오래지 않아 장질부사에 걸리고도 조리를 잘하지 못하고 일을 하다가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이른 아침부터 일에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 홍수 후 학교에 가다가 물에 빠져 옷이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갔더니 아버지께서 호되게 야단을 치며 죽지 않으면 가야지 하며 쫓아 보냈다. 경주로 중학교에 보내며 아들을 위하여 집을 사서 어려움 없이 공부하도록 최선을 다 하셨다. 
모친이 예수를 믿자 제사를 하지 않는다고 반대하여 불화가 있기도 했지만 그는 굽히지 않고 손자 나를 데리고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교회에 다녔다. 비가 오거나 추운 겨울에 교회에 가는 것이 염려되어 효심과 사랑으로 아버지는 동리에 예배당을 짓고 예배인도자를 초청하고 그를 접대하였으나 아버지는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몇 년 후 운명 전에 아들의 손을 잡고 “내가 살았을 때는 네가 예수 믿지 않았으나 내가 죽은 후엔 너도 믿고 내가 가는 천국으로 오라”는 말을 남겼다. 아버지는 “내가 불효라 어머니 살아계실 때는 믿지 않았지만 유언을 지키고자 3년간은 믿겠다” 하시더니 담뱃대를 버리고 교회에 출석, 3년이 되기 전 주님을 만나고 평생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주의 종을 잘 섬겼다.
아버지는 내가 법관이 되기를 원하였으나 나는 목사가 되겠다고 하였더니 목사보다는 장로로 교회를 섬기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하면서도 나를 이해하고 받아 주셨다. 그는 관대하고 사랑이 많아 누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절하질 않았다. 그는 시골에 살면서도 신문 라디오 텔레비 등으로 세계 정세를 알고 들려주며 또 내 이름을 위시하여 집안 친척 아이들의 이름을 지어주는 작명가 역할도 하였다. 그는 항상 내게 힘과 용기, 격려가 되고 그의 정신과 태도는 내게 남아있다. 그는 하늘 아버지가 어떤 분인가를 잘 보여주는 모범이라 기억하며 감사한다. 








Tuesday, June 14, 2022

검을 사라 Buy a Sword

검을 사라 Buy a Sword (6/11/22)
검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눅22:36),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리라 (마태26:52). 예수께서 몇 시간 간격을 두고 제자들에게 하신 혼란스러운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인가?  
예루살렘 밖 갈릴리 지역에서 3년간 사역하다가 그가 세상에 온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과 마지막 사랑의 만찬을 나누며 물으신다. 너희가 나와 함께 있을 때에 무슨 부족함이 있었는가? 없었다고 하자 이제는 전대나 배낭을 가지고 칼이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칼을 사라고 하신다. 여기 칼은 일상용품의 하나로 용도가 다양하지만 자신을 보호하는데 또는 원수를 공격하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제자들은 아직 실감하지 못하나 주께서 떠나고 그들이 남는 세상은  그들에게 결코 우호적이 아니다. 주께서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복음은 적대 관계와 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메시아를 기다리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받지 않고 일일이 그를 비난하고 정죄하다가 처형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를 예측하는 제자들은 자기 보호를 위하여 칼을 준비하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몇 시간 후 예수께서 기도하던 곳에 유다가 인도하는 폭도들이 왔다. 베드로가 칼을 뽑아 한 사람의 귀를 잘랐다. 칼로 주님을 보호할 생각이겠지만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들고 온 무리를 칼 몇개로 대항하여 싸울 수 있을까? 더욱이 로마에 대항하며 예수 운동을 펼칠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이것까지 참으라 하시며 떨어진 귀를 만져 낫게 하시고 칼을 가지는 자는 칼로 망하느니라 하신다. 칼을 가지면 사용하게 되고 저항에 저항을 하며 피차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이 역사의 현실이다.
당시의 칼은 오늘의 총이다. 자기 보호와 안전을 위하여 미국에서 개인이 가진 총의 수가 2억이 넘는다고 함은 그만큼 불안하고 믿을 수 없는 사회다. 총을 가지면 과연 안전한가? 스탠포드대학 연구팀이 12년간 캘리포니아 1800만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는 그렇지 않다. 연구 기간 총으로 죽은 사람이 2300명, 총을 가진 집은 같은 지역에 살면서 총이 없는 집보다 2배의 살인이 있었고 총을 있는 집에 사는 자는 그렇지 않는 집보다 7배 이상이 배우자 가족 친구에 의해 살해되고 죽은 자의 84%는 총을 가지지 않은 여자였다. 외부로부터 낯선 자가 침입하여 살해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국제정치에서 무기를 가지는 것은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 위한 것이라지만 가지면 언젠가 사용하게 되고 총은 총을 부르고 죽음을 부른다.
그러면 예수께서 칼을 사라, 둘이면 충분하다고 한 것은 무슨 의미인가? 그가 칼을 가졌기에 불법자의 하나로 여김을 받는다는 예언과 주께서 폭도에게 제자들을 가게 하라고 하여 자기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는다는 말씀을 이룬다고 하신다. 그의 말씀은 칼로서 폭력행사가 아니라 예언을 따라 불법자처럼 잡히어 죽는다는 것이다.
칼은 또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을 때 말씀으로 그를 물리치고 승리하여 성령의 능력을 입고 사역하였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가 온갖 술수와 갈등을 일으키는 세상에서 우리도 성령의 칼로 원수와 당당하게 대결하여 이기고 능력으로 살아야 하지 않겠나?   






Tuesday, June 7, 2022

총 끝 The End of Guns

총 끝 The End of Guns (6/4/20220
지난 5월24일 텍사스 유발디의 로스 초등학교에 총기를 든 18세 소년이 들어가 동생 같은 19명 학생들과 2명의 교사를 살해하고 많은 학생에게 부상을 입혔다. 학교의 총기 사건은 자주 일어난다. 큰 것만 하여도 1999년 콜로라도 콜롬바인 고등학교에서 13명, 2012년 코네티컷 샌디 훅 초등학교에서 26명, 2007넌 버지니아 블랙스버그 공과대학에서 32명이 생명을 잃었다. 이런 때마다 총기 규제에 대한 말이 뜨겁게 나오지만 지금까지 해결이 되지 않고 있고 학생들과 부모는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다. 미국인 10명 중 4명은 집에 총이 있고 3명은 총을 소유하고 있으며 총기 판매와 소유는 갈수록 많아지고 코비드 팬데믹 기간에 총기 판매가 이전보다 더욱 늘어났다. 
왜 사람들은 총기를 소유하나? 사냥, 오락의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것은 개인의 안전과 보호다. 미국을 개척할 때부터 넓은 땅에 흩어져 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자기 안전을 위하여 총기를 가지게 되었다. 지금도 도시보다는 인가가 적은 시골이 총기 소유가 더 많다. 서로를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하여 불안한 사회라는 것을 말한다. 이로서 미국 헌법 추가 2 조는 총기 휴대 권리를 인정하기까지 한다. 
총기 집단살해가 있으면 총기 규제에 대한 논란은 많지만 총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가 범죄 경력이 있는가 정신 질환이 있는가 하는 정도이지 별로 말이 없다. 사실은 총보다는 사용자가 더 심각하다.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은 그 속에 쌓여 있던 분노와 증오, 실패와 좌절, 실망과 우울, 자해 심리가 표출되고 터지는 것이라 본다. 동시에 사람의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부족하다. 아이나 어른이 좋아하는 게임의 많은 것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상대를 죽임으로 내가 살아남는 것으로 쾌감을 느끼게 하며 상대는 생명이 아니라 처리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을까? 창 끝 The End of Spears라는 실화에 근거한 영화가 2005년에 나왔다. 에콰돌의 열대 밀림에서 외부와 접촉이 없는 와다니 부족 선교를 위하여 네이트 세인트 조종사와 다른 4명이 여러 번 물자를 내려주다가 착륙을 하였다. 창을 의지하고 살던 사람들이 몰려와 그들을 침략자로 생각하고 모두 살해하였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수도 키토에서 선교하던 네이트의 누이 라헬과 다른 선교사 부인들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그들에게로 들어갔다. 여인들은 위험인물로 생각되지 않아 해를 받지 않고 여러 면으로 그들을 섬기며 도왔다. 죽은 자들은 생명을 잃은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명을 바친 것이라며 사랑을 베풀자 네이트를 살해한 민카예와 부족원들은 감동을 받아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으며 성령의 역사로 변화가 되어 창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였다. 네이트의 아들 스티브는 민카예를 아버지로 삼았다. 두 사람이 콜롬바인 학교 총기 사고를 듣고 창 끝이라는 영화를 제작하여 총을 끝내는 길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법으로 규제해서가 아니라 개인이 사랑과 평화의 사람이 되어 서로를 신뢰하고 용납하며 섬기는 사회를 만들면 총이 필요 없게 되고 총은 끝나는 것이다. 예수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만 사람이 변화되고 총이 끝나는 시대가 올 것을 말한다.  









Monday, May 30, 2022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메모리얼 데이 Memorial Day 
5월마지막 월요일은 미국의 메모리알 데이다. 남북전쟁에서 희생당한 자들의 묘지에 꽃을 바치며 장식일 Decoration Day라 하던 것을 1차 대전에서 전사한 자들과 그 후 전쟁에서 전사한 이들을  추모하여 Memorial Day로 바꾸었다. 이날에 사람들은 육군 묘지를 찾아 전몰한 자들의 자유와 평화 사랑과 용기를 기억하고 치하하며 동시에 그들이 죽은 비극적 전쟁이 다시는 없어야 하겠다는 염원을 가지기도 한다. 날짜를 정하고 기억하는 것은 사람들로 잊지 않게 하려 함이다. 사람은 지난 날을 잘 잊게 마련이다. 실수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곧 잊어버리고 다시 반복하면서 새로이 깨닫게 된다. 우리도 31절 광복절 등으로 다시는 나라를 잃지 않아야 하고 해방으로 회복한 나라를 잘 지키리라 다짐하게 된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말을 반복하여 하시면서 기억할 것을 기억하라고도 하신다. 하나님이 누구이며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는지 또한 그들은 누구인지를 계속하여 기억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400년 이상 종 생활하며 고통 속에 부르짖고 신음하는 소리를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건져낼 것을 작정하고 모세에게 명하기를 가족이 함께 모여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 안에서 양의 고기를 먹는 동안 천사가 그 나라 사람과 동물의 모든 처음 난 것을 죽이지만 피가 있는 집은 지나가기에 이집트는 더 이상 그들을 종으로 잡아 두지 않고 쫓아 내듯이 내어 보낼 것이라 하였다. 죽음이 이스라엘의 집을 지나갔기에 그 날을 유월절로 영원히 기억하고 지키라 하셨다. 당시 가장 강국이던 이집트는 하나님의 능력 앞에 무릎을 꿇고 이스라엘 사람은 종에서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 그때로부터 3500년이 지났지만 유대인은 지금도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과 그의 하신 큰 일을 기억함으로 그들의 선민 근육이 강화되어 역사의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다. 
우리 삶에 언제 죽음에서 구원받은 날이 있는가? 그 날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나? 내게는 죽음에서 살아난 날이 있다. 2018년 1월초 1주일간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린 시니어 미션 트레이닝 강사로 섬기게 되었다. 1월10일 아침 강의를 하고 휴식시간 후 둘 째 시간 강의를 하는데 코가 막혀 강의를 진행할 수 없다고 말을 한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몰랐다. 아내가 보니 서 있던 내가 그대로 뒤로 바닥에 넘어지기에 참여자와 함께 얼른 앞으로 나가니 내 눈은 휑하게 열려 있고 숨은 끊어진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심폐소생을 시키고 아내는 사관을 딴다는 생각으로 내 발을 깨물었다고 한다. 얼마를 지났는지 모르나 사람들의 기도소리를 들으며 깨어났다. 병원에 실려가 두뇌와 척추는 상하지 않았다는 확인을 받았으나 허리 통증으로 움직이기 어려운 중에도 살아났다. 그 날이 오거나 내 허리가 아프면 일어난 일을 기억하며 주의 은혜와 능력을 찬양하고 감사한다.
그리스도인이 지키는 주일은 주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이다. 예수께서 우리를 죄와 죽음에서 해방시키려고 대신 죽으시고 부활로 죽음을 이김으로 그가 구주로서 영원한 생명을 주신 날이다. 죄로 죽었던 내가 주의 대속과 부활로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을 이 날에 기억하고 감사하며 주님을 찬양한다. 이 날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누구를 기억할까? Whom to Remember?

누가복음22:14-26 누구를 기억할까? Whom to Remember? (5/29/2022 Agape)
내일은 미국의 메모리알 데이다.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어린아이 들에게 메모리알 데이가 무엇인가 물으니 수영장 문 여는 날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했다. 가족이 바비큐하는 날일 수도 있다. 이날은 전쟁에 나가 전사한 미국용사들을 기억하는 날이다. 왜 그들을 기억하나? 나라를 지키고 미국의 정신을 지켜 나가기 위하여 생명을 바친 사람들이다. 미국의 정신은 하나님 아래서의 자유와 평화, 권리와 책임, 자원 자선과 희생, 평등과 기회, 불굴과 용기, 교육과 지도력 등이라 할 수 있다. 모든 시민이 그러하지만 특히 국방을 책임진 군인에게는 투철한 정신이다. 국가와 군인이 서로 하나가 되고 신뢰하며 감사하는 관계가 되어 있다. 나라가 침범을 당하거나 테러가 일어나거나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모두 하나가 되어 대처한다. 세계에 어떤 재난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뛰어가고 후원하는 사람이 미국인이다. 
미국과 미국군인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한국을 상상할 수 있겠나? 2차대전시 독일의 나치즘에 대항하여 아이젠하워 장군이 지휘하는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하고 승리함으로 2차대전이 끝나고 한국이 해방되는 길이 열렸다. 한국이 해방되고 5년이 되어 아직 안정이 되지도 않는 때 소련과 중공의 도움으로 북한은  갑작스럽게 남한은 침략하니 남한은 아무런 대책 없이 밀려 내려가 경주 인근 안강까지 갔다. 나라의 운명이 눈 앞에 이른 것 같다. 맥아더 장군이 지휘한 1950년 9월15일 인천 상륙 작전으로 한국을 위기에서 구하여 오늘의 한국이 되는 길을 열어주었다. 한국이라면 미국과 맥아더 장군과 병사들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참전한 한 젊은 군인에게 왜 군에 지원하였나 물으니 그의 대답은 “내 삶이 앞에 놓여있다. 옳고 그른 것의 차이를 알았다. 잘못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우리가 이들을 기억하고 치하하고 애국심과 함께 미국의 정신을 더욱 강화한다. 우리는 잘 잊어버린다. 그러기에 기억하도록 날을 정한다. 잊어버리면 없던 것이나 같다. 망각 amnesia이라는 것이 있다. 그런데 기억은 망각에 부정어가 앞에 붙어 anamnesis잊지 않는다는 말이다. 잊지 않도록 하고자 날짜를 정하고 기억한다.
좋은 일을 잊지 않고 기억하여 감사하고 그 일을 지속하려 한다. 특히 생명과 관련될 때는 그것이 크다. 
내게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또한 기억하는 의사가 있다. 어머니께서 60대에 척추가 아파 병원에 갔더니 척추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2년간 너무 아프고 고통스럽고 하반신은 완전히 마비가 되었다. 의사의 말은 이제 가망이 없으니 준비를 하라고 하였다. 내가 미국에서 학위공부 하고 있을 때인데 나를 위하여 헌신한 어머니와 마지막을 함께 하며 기도하고 싶어 갔다. 친구를 통하여 서울대 병원 척추 전문의사를 소개받아 엑스레이를 보여주었더니 모시고 오라고 하여 진단하더니 척추암이라 수술을 하여도 낫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통증은 없앨 수 있다고 한다. 수술 날짜를 정하고 기도채널 통하여 기도를 부탁하다. 수술이 잘 되었다고 한다. 정신이 맑게 깨어 났다. 일주일이 지나 발가락 끝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나는 돌아왔다. 결국 2년만에 걷기 시작하였다. 어디 아픈 곳이 없다며 25년을 사시다가 91세에 편안하게 주의 나라에 가셨다. 그 의사를 잊을 수가 없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를 기억하고 감사하게 된다. 동시에 많은 기도 동지의 기도와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주님은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신다. 주께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것을 아시고 제자들과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셨다. 유월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키기 전날 밤에 제정한 것이다. 흠 없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인방과 문설주에 바르고 가족이 집 안에서 양고기와 쓴 나물을 먹었다. 그 시간에 애굽의 처음 난 것은 사람이나 짐승이나 모두 죽임을 당하였다. 문에 피가 있는 이스라엘 사람의 집에는 죽음이 이르지 않았다. 그들은 애굽에서 강제로 쫓겨나듯이 떠나고 해방을 맞았다. 죽음이 그들의 집을 건너갔다고 하여 유월절이라 이름하고 해마다 그날을 지키며 기억하라고 하셨다. 죽음 같은 노예생활 애굽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하나님과 그의 하신 일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배하였다. 그들은 이 날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위대함과 하신 일을 기억하며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는 강한 민족이 되었다. 
유월절 제정 후 1500년이 지났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이 이 절기를 지켰다. 그러면서 주님은 이 해방 절기에 더 큰 의미를 더하셨다. 만찬을 끝낼 무렵 주께서는 떡을 들고 감사기도 하신 후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를 행하며 나를 기억하라 하시고 잔을 들고 감사한 후 이 잔은 너희 죄를 사하려고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신다. 하나님께서 유월절을 기억하고 지키게 하셨듯이 주님은 이 만찬을 행하며 주님을 기억하라 하신다. 주님의 무엇을 기억할까?

주께서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노예인 종으로 살았지만 모든 사람은 죄와 허물의 노예되어 하나님을 떠나 살면서 심판을 받아 영원한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이 허물과 죄로 인한 죽음에서 건짐 받기를 원하나 세상에 그럴 사람이 없기에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보내셨다. 주께서 사역하며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렸다. 그러나 이들은 언젠가 또 죽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영생 누리기를 원하신다.
죄가 없는 주께서는 자기 몸을 찢고 피를 흘려 죽음으로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우리를 대신하고 우리에게 생명 길을 주셨다. 그를 믿는 자는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생 얻게 하셨다. 자기 생명을 주어 우리를 살게 하신 것이다. 떡을 들고 잔을 들고 감사기도를 하신다. 자기 몸이 찢기고 피를 흘리면서 감사한다. 그로 인하여 생명이 살아나고 땅에 오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이 감사하였다. 그 자리에 예수를 파는 가룟 유다가 앉아 있어도 감사한 일이다.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길이 열리니 감사한 것이다. 12군단 되는 천사를 동원하여 원수를 물리칠 수 있지만 자원하여 자기 생명을 대신 주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주를 믿고 영생 얻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도 주를 믿고 생명 얻었으니 주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찬양한다.
주일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이다. 주께서 부활하지 않았으면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사람의 죽음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그가 죽음과 무덤을 깨치고 부활함으로 그는 죄가 없다는 것과 우리의 구주가 된다는 것을 증명하였기에 주의 날 곧 주일이라 한다. 이 날에 부활하신 주님, 우리의 구주임을 기억한다. 부활주일이 일년에 하루 있지만 그날만 아니라 주일마다 주의 부활과 새 생명을 기억하고 주를 찬양하며 기뻐한다. 오늘 모여 예배하며 내가 얻은 새 생명 영생을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 하나님이 기뻐하신다. 우리의 죄를 사면하듯이 잊으시기에amnesia 우리는 anamnesis 잊지 않고 기억하며 감사한다. 

우리가 주님을 기억하며 그에게 감사한다. 누구나 기억한다. 누가 나를 기억하나?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나를 기억하고 반가워하면 얼마나 기쁜가! 누가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나? 목사가 나를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복인가! 대통령이 한 사람의 시민인 나를 기억하고 안다고 하면 얼마나 큰 기쁨이요 영광이겠나! 왕 중의 왕 구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면 그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나? 
그날에  사람들이 주 앞에 나아와 내가 주의 이름으로 말씀전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며 능력을 행하였나이다 하니 주께서 내가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를 떠나라 하신다. 나는 주의 이름으로 주를 위하여 일을 한다고 했는데 주께서 나를 모른다, 기억하지 못한다고 하시면 얼마나 비극인가? 그러나 주께서 잊지 못하고 기억하는 자가 있다. 
사람은 피를 흘리며 고생 중에 나은 자식을 더욱 잊지 못한다. 주께서는 자기 피를 흘려 생명 바쳐 구원한 사람을 잊지 못하신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아들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한다. 우리의 지난 날이 어떤 형편이든지 상관이 없다. 내가 회개하고 주를 믿고 영접하여 주를 나의 주로 모시면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예수님과 바울은 아바 아버지라 불렀다. 아버지를 향하여 자녀가 아빠라 부르면 어찌 그 자녀를 잊을 수가 있겠나? 
어떤 사람이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였다. 유산을 받더니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하고 살 수가 없어 돼지 치는 집에 가서 일을 하며 돼지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자 해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 때 정신이 났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군들도 먹을 것이 많은데! 돌아가기로 작정하고 거지 신세가 되어 돌아간다. 멀리서 아버지가 보고 있다가 뛰어나가 그를 맞는다. 아버지, 내가 아버지와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니 이제는 아들이라 할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군의 하나로 써 주소서. 아버지는 그를 맞아 크게 기뻐하며 잔치를 베풀고 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고 죽었다가 살아났다고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서 때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멀리 떠날 때가 있어도 돌아오기만 하면 기뻐 받아 주신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얼마나 오래 떠나 있었든지 상관이 없다. 아버지!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주께서 내 아들이라 기억하신다.
기억만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비하신 잔치를 즐기게 하신다. 
그뿐 아니라 마25장에서 주인은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하였고 헐벗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 와서 보았느니라 (마25:34,36)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나이까?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다. 내가 나를 나타내고 인정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을 위하여 남몰래 하는 일이라도 주께서는 자기가 대접 받는 것으로 기억하고 복을 주신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많은 지체가 있다. 주님의 몸을 건강하도록 섬기는 것을 주님은 기억하신다. 주일학교에서 섬기는 분들을 알아주는 자 없다고 하여도 주님은 자기를 위하여 한 일이라고 기억하신다. 
메모리알 데이에 내가 누구를 기억한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또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기억하는가 하는 것이다. 주님의 십자가 옆에 있던 한 강도가 주를 향하여 주의 나라에 임할 때 나를 기억하소서 하자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다. 언제 우리의 마지막이 올지 모르나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주께서 나를 기억하고 아버지의 나라를 상속하라고 하는 축복을 누리기를 바란다.



Thursday, May 26, 2022

빌립보서 3:12-17 푯대를 향하여 Toward the Goal

빌립보서 3:12-17 푯대를 향하여 Toward the Goal (5/22/22퍼듀 김택룡목사 은퇴)
퍼듀 한인장로교회에서 27년을 신실하게 사역하고 은퇴하는 김택룡 목사님과 사모님을 축하하며 그간 김목사님을 모시고 교회를 섬기며 충성한 교우들께 치하를 드린다. 은퇴라 하면 이제까지 하던 일을 끝내고 물러난다는 말이다. 공식적인 사역은 끝날지 몰라도 삶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은퇴 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이 달라질 것인가? 교회는 27년간 함께 하던 목사님을 보내고 어떠할 것인가? 
우리가 무엇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왔나? 삶의 목표가 무엇인가? 처음 이민 왔을 때는 어떻게 잘 살 것인가가 중요하지만 한 가지 목표를 이루고 난 뒤에는 어떠한가? 내 자신이 학위 공부를 하였지만 학교가 있는 지역에서 목회를 하며 학생들이 학위를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고 난 뒤에 학위를 받을 때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많은가를 보았다. 목표를 이루고 정상에 오른 것이다. 그런데 한 부인이 하는 말, 딱 하루 좋았다고 하였다. 그 후에는 직장 걱정을 하며 학위의 부담을 크게 느낀다고 했다. 목사에게 목회가 꿈이요 목표일 수 있으리라. 목회가 끝나면 내 삶의 목표가 이루어졌으니 끝난 것인가? 바울은 많은 일을 이룬 후에 오늘 본문에서 이미 다 이루었다고 하지 않고 예수께 잡힌 그것, 푯대를 향하여 아직 달린다고 한다. 
그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설립하고 미움과 박해를 받고 감옥에도 들어가며 많은 일을 하였지만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는 할 일을 이미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아직 할 일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가 예수께 잡힌 바 된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앞으로 달려간다고 한다. 
15세기 스페인이 세계를 지배한 때 그들은 동전에 Ne Plus Ultra nothing further더 이상 없어, 스페인이 전부라고 하였는데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자 동전에서 Ne를 빼고 Plus Ultra More beyond 스페인을 넘어 얼마든지 더 넓은 세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였다. 바울이 그것을 발견하였다. 그는 예수와는 상관 없이 오히려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함으로 예수를 박해하던 사람이나 주께서 그를 만나심으로 그는 주께 잡히었다. 그는 포로처럼 잡혔다. 잡히고 보니 할 일이 많다. 무슨 일? 목표가 있다. 

예수 사람:  더 이상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고 그를 주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그는 예수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선민 유대인임을 자랑하고 유대인 중에도 율법에 특출한 바리새인 됨을 자랑했다. 그는 유대인의 고발을 당할 때 로마 법 앞에서 로마인, 날때부터 로마인임을 내세우고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주께 붙잡히어 주의 사람이 되며 그는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다. 그를 잡은 그리스도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분이요 모든 무릎이 그에게 꿇고 복종하는 분이다. 자기는 그분의 종임을 자랑한다. 종은 주인에게 속한 사람으로 스스로 자유가 없고 주인이 원하고 시키는 대로 한다. 종에게는 은퇴가 없고 마음대로 쉴 수가 없다. 오직 주인의 뜻에만 따르는 것이다. 주께 잡히기 전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기 뜻이 아니라 오직 주인을 위하여 살게 된다. 그는 주의 종으로 많은 일을 하였지만 지금도 주인에게 순종하며 살겠다는 것이다. 그는 주의 사람이라 주님이 다스리는 천국의 시민인 것을 확인한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어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린다고 한다. 주께서 오실 때 또는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주님이 우리를 천국 시민으로 받아 영원히 주와 함께 살 것이라 이 땅에서도 천국 시민으로 살 것이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천국에 속한 자로 살다가 주의 나라로 옮겨갈 것을 바라본다. 이것이 푯대가 된다. 

구원: 주께서 그를 잡은 것은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던 죄에서 그를 구원하기 위함이다. 그는 햇빛보다 더 밝은 빛 속에서 주의 음성을 들으면서 그를 만나고 땅에 엎드러지며 주께 잡히었다. 그의 눈이 어두워지자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의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인정 받고 구원 받았다.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은 구원의 시작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너희 구원을 이루라 한다.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죄용서 받고 의롭다 함을 얻고 주를 닮아 거룩함을 입고 마지막 영화로운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모든 죄를 용서받고 의로움을 얻은 주의 사람은 주를 따르며 주를 본받고 닮아가며 자라나 성숙함에 이르고 거룩함에 이른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신다. 세상에 살지만 세상방식이 아니라 주님 방식으로 주께서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평생토록 주를 따라 그를 닮아가면 우리 삶에 주님의 모습이 나타난다. 주를 닮은 사람,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된다. 인정 받지 못하여도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가진 것이 없어도 있는 것으로 나누고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도 그를 위해 기도하고 용서하며 품어주는 사랑을 나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첫 말씀이 아버지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런 용서와 사랑으로 우리가 주를 닮았다고 할 수 있겠나! 다윗은 자기를 죽이려고 추격하는 사울을 죽일 기회가 두 번 있었지만 그에게 손을 대지 않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옷자락만 베고 또 다음에는 물병과 창을 가져가기만 하였다. 사울은 다윗에게 나는 너를 죽이려고 악을 행하는데 너는 그 악을 선으로 바꾸는구나 하며 다윗 승리를 인정하였다. 다윗은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 우리가 주를 가까이 하며 주를 닮으면 주의 사람, 다윗의 후손이 된다. 우리의 거룩함을 이룸으로 되는 일이다.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은 우리가 주의 나라에서 주께 영광 돌리며 영광스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영광은 우리가 그를 바로 알고 그를 바르게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아나? 읽고 들어 예수를 머리로 알고 우리가 전도 하는 것도 머리로 아는 것에 근거할 수가 있다. 그러나 안다고 하는 것은 머리가 아니라 함께 친밀하게 생활하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김목사께서 27년을 함께 하였으니 여러분이 그를 얼마나 아나? 목사님은 교인들을 얼마나 아나? 결혼 생활을 50년 60년 함으로 부부가 서로를 안다고 하지만 참으로 모든 것을 알 수가 있나? 아직도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주님을 아는 것이 그러하다. 평생 주를 믿었다고 하여도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알지 못하였다. 그러나 이름을 부르고 만찬을 위해 기도할 때 눈이 열리고 주를 알아보았다. 이름을 부르고 만찬을 한다는 것은 친근한 교제를 말한다. 친근하게 가까이 할 때 그를 안다.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주님을 보고 그가 계신 그대로를 볼 때 우리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하고 하늘 나라 영광에 함께 참여한다. 주의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주께서 맞아 주시고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주시며 주와 함께 영원히 거하게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의 상으로 구원의 완성이다. 주의 나라에서 주와 같이 영광스런 모습으로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것이 바울의 푯대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무엇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히 기뻐하는 것이다. 땅에서 주께 영광을 돌리며 살 때 주의 나라로 연결되고 영광스런 존재가 된다. 이것이 위에서 부르심이고 이를 위하여 나아가게 된다. 
우리 삶은 다 이루거나 완성된 것이 아니라 아직도 달려갈 길이 앞에 있다. 주께 잡히기 전에는 자기가 많은 것을 이루고 그 이룬 것을 자랑하였는데 주께 잡히고 보니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이 있다.

복음 증거: 바울이 주께 잡힌 것은 주의 복음을 증거하기 위함이다. 주께서 그를 부르신 것은 그가 보고 들은 것,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능력을 증거하여 사람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죄 용서 받고 거룩함을 입은 자들과 같이 기업을 얻게 함이다. 주님은 복음을 전하도록 그를 잡았다. 주를 만난 후 그는 다메섹 회당에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였다. 그는 안디옥교회에서 선교사로 파송 받고 아시아와 구라파로 3차 선교여행을 하며 복음을 전하여 많은 사람을 주께로 돌이켰다. 그는 박해를 받고 감옥에 들어가 생명의 위협을 받았지만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자기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주님의 지상명령과 바울의 뒤를 따라 교회와 선교사의 헌신으로 역사상 많은 선교가 이루어지고 20세기 말에는 미전도 종족이 많은 지역을 10-40 창이라 하며 선교에 총력을 기울였다. 미국이 제일 많은 선교사를 해외로 보냈지만 동시에 오늘 어느 면에서 미국은 복음이 필요한 선교지가 되어 있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원수로 살고 있고 하나님 없이 살고 있어 이들이 복음을 필요로 한다. 그러기에 은퇴하는 것으로 다 이룬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할 일이 있다. 
내 개인 간증을 하고 싶다. 2006년에 시카고에서 은퇴하며 40년 교회 일을 하였으니 충분하다 생각하며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하여 살도록 하자 하고 바로 여행을 하였다. 한달만에 옆구리가 견딜 수 없이 아파서 시카고로 돌아와 의사를 만났더니 싱글 대상포진이라며 약이 없기에 아플 만큼 아파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아픈 것은 처음이었다. 주님 어떻게 된 것입니까? 물었더니 주께서 말씀한다. 네가 충분히 일을 하였으니 이제는 마음대로 지나자고? 나와 한 약속을 잊었나? 하신다. 대학을 졸업하며 죽을 병에 걸려 집 보다는 병원에서 죽을 생각으로 병원으로 가서 입원하기 전날 밤 주께서 말씀을 주신다. 시118:17,18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의 행사를 선포하리라 그가 나를 경책하셨으나 죽음에는 붙이지 않으셨다고 한다. 죽으러 왔는데 죽지 않는다고? 살아서 무엇? 주의 행사를 선포한다는 말씀을 받았더니 치유되고 건강하게 살아 있음을 기억시키신다. 주님 잘못했어요. 생명 있는 동안에는 주의 일을 하겠습니다. 이틀 후 미네소타 트윈시티 노회에서 목사 없는 전환기 교회에 와서 일하라고 한다. 핑계할 수 없다. 그후 팬데믹이 터지기까지 여러 교회에서 전환기목사로 에티오피아 선교사로 일을 하게 되었다. 주의 복음 증거에는 끝이 없다. 생명 있는 동안에 주님 오시는 날까지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와 부활의 능력, 주의 하신 일을 전해야 할 것이다. Ne Plus Ultra 이만하면 되었다가 아니라 Plus Ultra아직도 많은 일이 있음을 알고 순종한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얼마나 주를 닮고 얼마나 전도를 하고 있나? 여러분으로 인해 주를 믿는 자가 얼마나 되나?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은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으라 한다. 주를 믿고 따르면서 우리는 임기가 끝이 났다 그만하면 많이 하였으니 쉬고 싶다고 할 수 있으나 주님은 내 아버지께서 지금도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주님은 오직 생명 구원과 천국확장을 위하여 일하다가 마지막 십자가에서도 구원을 베풀고 숨을 거두면서 다 이루었다 하셨다. 생명이 끝나는 날 우리가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겠다.
주의 종으로 충성스럽게 섬기면 주께서 인정하신다. 달란트를 잘 활용한 자에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큰 것으로 맡기노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 하신다. 그리고 잃은 자 하나를 얻으면 주의 나라에서 기쁨의 잔치가 일어나고 구원 받은 자로서 주를 닮아 주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날이 기다린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주 앞에 서는 날까지 우리를 불러 맡긴 사명을 수행하고 주께서 준비하신 하늘 나라의 영광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모두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