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24, 2019

예수의 부활 The Resurrection of Jesus


예수의 부활 (4/21/19)
    오늘 예수께서 죽음과 무덤을 정복하고 부활하신 것을 기뻐하며 찬양한다. 성경에 죽은 자가 살아난 사건이 구약과 신약에 여러 번 나온다. 나사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된지 4일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고 있었지만 주께서 그의 무덤에 가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자 그가 일어나 나왔다. 본인과 가족에게 큰 기쁨이었다. 이를 들은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확인하기 위하여 나사로를 보러 오고 그가 다시 살아난 것을 믿게 되었다. 그러나 나사로는 언젠가 다시 죽었다. 구약과 신약에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은 모두 다시 죽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이와는 다르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 죽지 않은 생명, 다시는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은 생명으로 부활하셨다(롬6:9). 그는 다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하여 하나님과 함께 영원이 살아계신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세력을 잡은 마귀를 정복하시며 죽기를 두려워하여 일평생 종노릇 하는 자들을 해방시켜 주신다(히2:14). 더 이상 마귀와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이제 사망을 향하여 외친다.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나 (고전15:55)? 예수께서 마지막 승리를 거두시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예수께서 죄 없으신 것을 확인시킨다. 죄가 있으면 누구나 죽음 아래 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는다고 하셔도 그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그가 우리 죄를 처리하는 구주가 될 수 없고 우리의 죄와 죽음은 그대로 있게 된다. 그의 부활로 그는 죄 없으신 분으로 우리의 모든 죄와 죽음을 대신한 것을 보여준다. 그를 믿는 자는 죄를 용서받고 새 생명을 얻는다. 
  예수의 부활은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다. 그의 부활은 그 안에 있는 자들이 다시 부활할 것을 확인시킨다. 우리가 육체를 가지고 있기에 언젠가 육체 생명이 끝날 때가 있지만 우리는 부활하여 주와 함께 영원히 살며 천국을 즐기며 누리게 된다.
  그가 부활하지 않았으면 우리 믿음도 헛되고 우리가 세상 사람 중에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되지만 그가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믿음이 확실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에 주의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할렐루야 우리 예수 부활하셨다! 찬양하며 기뻐한다.

눈의 비늘이 벗어지다 Scales fell from eyes


사도행전 9:13-22 눈의 비늘이 벗어지다 Scales Fell from the Eye(4/21/19 부활주일)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죄 없으신 그가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어 무덤에 묻히고 3일만에 부활하여 우리 구주로 살아 계신다. 살아 계신 주께서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다. 부활하신 주님이 여기 오시면 여러분이 알아보고 환영하고 경배할 수 있기 바란다. 사실 사람들이 주님의 부활을 믿기가 어렵다. 죽은 자가 살아나나? 영국 BBC 방송에서 2017년 영국성인 대상 조사에서 성경을 그대로 믿는 자는 오직 17%, 활동적인 기독교인 중에서 성경을 그대로 믿는 자는 57% 이들 중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는  그리스도인 중에서 오직 23%다. 부활을 믿기가 쉽지 않다.
주께서 부활하시었기에 무덤이 비어 있었다. 베드로와 요한이 가서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지만 부활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의 시체가 없어 무덤 가에서 울고 있던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만났으나 동산지기인 줄로 생각하였다. 실망을 안고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 주님이 나타나서 동행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그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왜 그럴까? 보기는 보나 실제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 말로는 당달봉사 또는 눈에 백태가 끼었다고 말을 한다. 성경에서는 여기 한 곳에서 눈에 비늘이 덮였다고 한다. 고기 비늘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덮여 있으니 무엇이나 제대로 볼 수 없다.

오늘 본문은 사울 이야기다. 모든 것을 잘 알고 본다고 인정되어 그가 대제사장의 위임을 받고 일행과 같이 다메섹에 가서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오려고 당당하게 가던 중 다메섹 길에 이른 때 정오에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두러비치자 땅에 엎드러지고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다. 눈에 비늘이 덮이었다. 너무 강한 햇빛에 노출되면 각막에 문제가 생기고 시간이 걸려 실명하지만 사울에게는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눈을 떳으나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주께서 그렇게 하시다. 그는 지정한 곳으로 이끌려 가서 3일 주야 음식을 먹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기도하였다. 그러는 사이 그는 육의 눈이 어두운 것만 아니라 속으로 영의 눈에 비늘이 덮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말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자기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지다. 부르짖는 시간이다.

1 어떻게 눈에 비늘이 덮이나?
1)자기와 자기 학문, 자기 의의 교만: 그는 당시 최고의 학자 가말리엘 제자로서 성경을 잘 알고 율법에 정통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 있는 바리새파라고 자랑하였다. 그는 다소의 박사, 히브리 문학과 헬라 철학에 익숙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꼭 알아야 할 것을 모르는 것을 몰랐다. 나사렛 예수와 그의 가르침 그의 삶에 대하여 알려고 하지 않다. 들은 소문과 자기 생각에 근거하여 그들은 갈릴리 어촌 사람들 배운 것이 없는 사람들 상대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다. 자기 교만에 차 있어 예수와 제자들은 율법을 모르고 어기는 이단이라며 체포하고 감옥에 넣는 일을 하였다. 사실 박사는 자기 분야 외에는 잘 모른다. 뉴욕에 있을 때 쥴리어드 음대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 이들은 학교에서 공부하며 하루 8시간 이상 연습에 연습을 하기에 다른 것에는 시간 낼 수 없고 관심을 가지지 못한다. 이들 졸업생 100명이면 인정 받는 연주가는 2명이 될가 말가! 연주가가 되지 못하는 보통 사람은 어떻게 하나? 그것이 과제다.
2)종족과 전통, 관습: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히브리인, 그중에도 율법을 배우고 지키는 바리새인의 전통을 따라 행하며 난지 8일에 할례를 받아 흠이 없다고 자랑한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하여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고치는 것을 시비하지만 자기들의 소나 나귀가 구렁에 빠지면 안식일에도 건져낸다. 손을 씻고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씻으나 속이 더러움으로 가득찬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 전통 관습에 맞지 않으면 받아드리지 않고 비판한다. 자기 편리한대로 법을 해석한다. 주께서는 이들을 눈 먼 인도자라 한다.
3)편견과 불신: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 진리를 무시하고 배울 생각을 하지 않은다. 예수와 그 제자들은 갈릴리 어부들, 시골 사람들이라 무식한 자라고 무시한다.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여도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비웃는다. 복음을 비판하면서도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은다. 이로서 그들은 예수와 그 제자들이 하는 것도 믿지 않는다. 스데반이 감동적 설교를 해도 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가 돌탕에 맞아 죽으면서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은 것을 보고도 그가 전한 복음을 믿지 않고 무엇이 있어 그렇게 되는지 알아 볼 생각을 않는다.
4)세상 명예와 욕심: 사울은 예수의 도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하고 체포하여 감옥에 넣는 것으로 지도자들의 인정을 받고 다메섹에 있는 예수 믿는 자를 수색 체포하는 일에 앞장 서는 것도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며 좋아한다.
사울은 이런 것들로 눈이 가려져 볼 것을 보지 못하고 알아야 할 것을 알지 못하고 있다. 이제 그는 비늘이 덮여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맹인인 것을 깨닫다.

2 눈의 비늘이 벗겨진다
그는 주를 알지 못하기에 주의 제자에 대한 살기와 위협이 등등하여 다메섹 교인들을 체포하러 간다. 다메섹 일대에 당시 1만8천명 유대인이 살고 있는데 많은 이가 유대에서 옮겨간 사람들, 주를 믿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박해를 피하여 간 사람들이다. 사울 일행이 함께 가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송할 길을 모색한다. 이 때 주께서 그를 인격적으로 만나 비늘을 벗기시고 자기를 알리신다.
1)빛으로 만나시다. 정오에 햇빛보다 더 밝은 빛이 그를 둘러 비치다. 그는 땅에 엎드러지다. 그렇게 자랑스럽고 당당하던 사울이 더 이상 걸어갈 수도 항거할 수도 없어 항복한 것이다. 영광의 빛, 의의 빛이 되시는 예수께서 빛으로 그를 만나시다.
2)친근하게 이름불러 만나시다. 사울아 사울아 사울을 잘 알고 있는 분이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것이 네게 괴로운 일이라. 그 앞에 답할 말이 없다. 주여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예수다. 그는 예수를 만난 적이 없고 그는 예수를 핍박하지 않고 그 도를 따르는 자들을 박해한다. 유대 신앙에 어긋나 십자가 처형이 된 예수가 무덤에 장사되었는데 누군가 훔쳐가고는 부활하였다고 전하여 세상을 소란하게 하는 이단이라 척결하려는데 예수께서 나타나 왜 핍박하는가 묻는다. 예수는 자기와 그를 믿는 사람이 하나임을 말씀 하신다. 사울이 부활한 예수를 만난 것을 알게 되다. 그는 고전 15장에서 부활한 주께서 만난 사람들을 나열하면서 맨 나중에는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가 같은 자기에게도 보이셨다 한다 (8). 아무리 반대하고 싫어하여도 초월적인 임재와 능력이 나타나 이름을 부르며 인격적인 만남을 가지면 피할 수가 없다. 막달라 마리아가 부활한 주님을 만나 동산지기로 알았을 때 주께서 마리아야 이름 부르시자 그를 알고 그 앞에 엎드렸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저녁 식탁에 함께 앉아 떡을 떼며 친근한 교제를 통해 알게 된다. 내게도 부활의 주께서 새롭게 만나주신 적이 있다. 1978년 3월 25일 부활주일 전날 내 영적 암흑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 때 주께서 만나 내 비늘을 벗겨 주시자 주를 보게 되고 내 심령이 새로워지며 기쁨이 차다.
3)아나니아를 통하여 만남을 확인하다. 주께서 사울을 만나신 후에 아나니아를 사울에게 보내신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온 것을 알면서도 그는 말씀에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 가다. 사울은 3일동안 보지 못하고 금식하며 기도하고 회개하며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이르실 말씀을 기다리고 있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만나자 손을 얹고 형제 사울아, 아주 친근하게 아는 자의 모습이다. 네가 올 때 만났던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즉시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되다.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지금까지 보지 못하던 것을 본다. 하나님이 그를 택하여 주의 뜻을 알고 그 의인을 보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한 것이다(행22:14). 그는 사울이 길에서 의인 예수를 보고 그의 음성을 들은 것을 확인하고 바로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다. 세례는 주께 붙들린 주의 사람이 됨이다. 또 비침을 받은 자다. 주의 빛을 받아 주를 구주로 알고 믿음으로 주의 사람이 된 것을 증거하는 것이다. 그가 이단으로 박해하던 예수에게 붙잡힌 예수 사람이 된 것이다.
내가 어느 교회에서 사역할 때 종교철학 교수가 있었다.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였기에 내가 교회 수양회를 인도하며 오후에 한 강좌를 맡겼더니 내가 강의한 내용과 상이한 내용을 강의하다. 주일예배에 오면 맨 뒷자리에 앉는다. 그 집에 심방하며 사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다는 말씀을 나누고 왔다. 그는 내가 앉은뱅이인가 왜 일어나라고 하나며 불평을 했다고 한다. 그 후 어느 날 주일 예배에서 주님이 그를 만나 주셨다. 자기가 죄인임을 알게 되고 눈물을 비오듯 흘린다. 나중 간증을 한다. 자기는 개 돼지 보다 못하였다. 아이들이 식사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면 누가 돈을 벌어 음식을 사 왔는데 누구에게 감사하나며 꾸짖었다고 한다. 그가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더니 나중 목사 안수를 받고 뉴욕의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 내가 그를 부흥회 강사로 청하여 온 교회가 은혜를 받기도 하였다. 주를 만나게 되면 변화가 오고 눈이 열린다.

3 비늘이 벗어진 후에
보지 못하던 자가 보게 되면 얼마나 감격인가? 세상의 아름다움, 나이아가라 폭포의 크고 힘찬 웅장함을 보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 큰 기쁨이다.
사울에게 삶의 새로운 시작이 왔다. 큰 감격 기쁨이 오다. 새로운 세계를 본다. 나사렛 예수가 세상의 구주요 죄수로 십자가에 죽은 자가 부활하여 살아계신 주가 된 것을 보다. 이 세상을 넘어 영원한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었다. 삶이 새로워지다. 그가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다. 주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한 주의 그릇이 되었다.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그릇이 되다. 다메섹 제자들과 함께 며칠 지나더니 다메섹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하였다. 그는 아라비아에 가서 3년 동안 주님과 깊은 관계 속에서 환상과 계시를 통해 주를 친밀하게 알게 되고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 바나바를 도와 안디옥교회를 설립하고 성령의 지시로 바나바와 함께 그 교회 파송으로 선교사가 되어 주의 사자로 일을 하였다. 아시아 구라파로 3차 전도 여행을 하고 나중에는 로마에서 복음을 전하였다.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강과 바다에서 여러번 죽을번 하고 강도 동족 이방인의 위험을 당하며 교회를 위하여 애를 쓰다 (고후11:23-28). 그가 부활의 주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주를 모르고 옛날 그대로 훼방자, 핍박자 포행자로 살았을 것이다. 그가 성도를 핍박하던 절정기에 그가 알지 못하고 행한 것이라 주의 은혜로 죄인의 괴수인 그를 부르시고 충성되어 여겨 복음 전하는 직분을 맡겨 주신 것을 감사하며 사역하였다 (딤전1:12). 그가 자랑하고 유익하다 생각 하던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 여기고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알기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난 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며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하다. 고난을 받지만 그가 부끄러워 하지 아니함은 그가 의뢰한 자를 알고 주께서 그를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고(딤후1: 12) 주께서 그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심을 믿고 있었기(4:8) 때문이다. 사도행전은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고 그와 선교 사역에 함께 했던 의사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행전 반 이상이 바울의 생애, 사역 이야기다. 그가 온 세계를 가슴에 안고 주의 인도하심을 따라 어느 나라나 가서 예수를 전하다. 눈의 비늘이 벗어진 후에 일어난 일이다. 베드로도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자기가 만난 예수, 그가 아는 그리스도를 어디에서나 전파하는 사명을 다하였다.
나는 어떤 형편에 있나? 내가 내 자신만 보며 나의 가진 것을 자랑하고 남을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 주를 믿는다고 하나 내 눈에 비늘이 덮여 주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형제를 형제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아픔을 끼치지는 않나? 아나니아처럼 아무 직분도 이름도 나타나지 않으나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며 동족에게 칭찬 받고 주의 말씀에 예민하여 사울같이 눈이 어두워 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주의 말씀으로 세우는 일을 하고 있나? 내 눈에서 비늘이 벗어지고 부활의 주를 만남으로 새로운 감격과 은혜로 내가 만나는 사람에게 부활의 주를 전하는 사람인가? 부활주일은 무덤이 열린 날, 눈의 비늘이 벗어진 날이다. 이 부활주일에 부활의 주님을 새롭게 만남으로 나를 알고 주를 발견, 새롭게 삶을 결단하며 주와 함께 매일을 걸으며 주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를 축원한다.

동영상은 www.diasporachurch.net
                  

Wednesday, April 17, 2019

그를 죽여라 Get Rid of Him


그를 죽여라 Get Rid of Him (4/18/19)
북한의 김정은은 실권을 갖게 되자 지난 9년동안 420명 이상을 숙청, 처형하였다. 고모부 장성택, 이복동생 김정남, 부친의 4째 부인 김옥을 위시하여 측근 고급 간부들을 숙청 또는 처형하여 공포정치를 시행하고 있다.  자기 중심의 권력체제를 만들고 반대나 의문을 제거하고 있다. 김정은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녀를 기르면서 특히 엄마가 말한다. 그를 죽여야 네가 살고 자리를 차지한다. 사업도 경쟁업체를 죽여야 뻗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상대방을 죽이는데 총력을 쓴다.
예루살렘의 주민들과 유월절에 온 유대인들이 며칠 전만 해도 예수를 향하여 우리를 구하소서 외치며 최고의 환영을 하였는데 이제 이들이 그를 죽여라 그를 죽여라 외친다. 예수로 인해 종교 지도자의 위선이 나타나고 그들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을 실감하기에 그를 없애기로 결정한 것이다. 로마 최고 재판부에 고발하고 총독 빌라도는 심문을 하며 조사를 하였으나 아무런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다. 그를 방면하면 로마 황제의 충신이 아니라며 백성을 동원하여 그를 죽이라고 소리지른다.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민중의 소리에 굴복하여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손을 씻고 그를 처형하도록 넘겨준다. 이는 로마의 법과 최고 재판자의 양심을 죽인 것이다.
그 때 살인과 민란에 연루되어 사형 집행을 기다리던 바라바라는 죄수가 있었다. 총독은 명절이면 백성의 요구에 따라 한 죄수를 사면하는 전례를 따라 묻는다.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석방하랴? 군중은 바라바라 외친다. 죽음을 기다리던 바라바는 석방이 되고 예수는 가장 비참한 십자가 처형으로 죽게 된다. 예수가 죽지 않으면 바라바가 죽임을 당하지만 예수의 죽음으로 그는 무죄한 자유의 생명을 갖게 되었다. 이것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바라바의 욕심과 이기심에 불타고 있다. 양심의 재판관 앞에서 누구도 죄 없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나를 대신하여 예수께서 죽으심으로 내가 살아나는 축복을 위해 그를 죽여라 하는 여론이 이긴 것이다. 세상의 시기, 욕심, 권력 집착을 위해 법과 양심을 죽이는 현실이지만 온 세계를 다스리는 주께서는 그것을 받아 드림으로 새로운 생명의 길을 열어주신 것이 우리를 위한 사랑이요 하나님의 공의가 된다.

Monday, April 15, 2019

구 속 Redemption


구 속 (속 량 Redemption)
오래 전 어느 교우 집을 심방하고 대화하는 중 그가 말하기를 예수 믿고 구속 받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고 하기에 물었더니 예수 믿으니 이것 저것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많아 구속을 받고 전혀 없다고 한다. 그는 예수 믿는 것을 사람이 잘못하여 구속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놀라 설명을 하였다. 구속을 새번역은 속량, 대속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한 말이 아니다.
구속은 원래 소나 양, 밭이나 집이 빚으로 남에게 넘어간 때 돈을 내고 도로 돌려 받는 것, 사람이 가난하거나 빚으로 남에게 종이 된 때 몸 값을 지불하고 자유인으로 회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개인의 기본 인권과 자유, 소유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하나님의 계획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애굽에 종이 되어 있을 때 양의 피와 생명, 애굽의 장자들을 희생하여 자기 백성을 구하여 낸 것과 같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기업의 땅을 잃거나 또는 종이 되면 친족이 그를 구속하게 하셨다. 이에 따라 보아스가 친족 나오미의 기업을 무르고자 룻과 결혼한 것이다.
오래 전 미국 북쪽 어떤 사업가가 남쪽을 여행하며 노예시장의 노예 경매를 목격하다. 한 젊은 여인이 경매되고 있을 때 그가 최고의 값을 내고 그녀를 사서 노예 시장에서 데리고 나왔다. 그 여인은 종으로 새로운 주인에게 팔렸다. 호텔에 하룻밤을 재우고 조반을 먹인 후 현찰을 넣은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며 너는 이제 자유다. 이 돈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살도록 하라고 하다. 그는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고 자유로운 사람이 되다. 바로 구속이다.
사람이 죄와 죽음의 종이 된 것은 어떻게 하나? 모든 사람의 형편이 그러하나 돈으로 죄와 죽음에서 구할 길이 없기에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아들 예수를 사람의 형제로 보내시고 그는 죄 없지만 인간 죄의 형벌을 대신 받아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자유 생명의 길을 여셨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받아드리면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어 죄와 죽음의 노예에서 해방되고 영원한 자유와 생명의 복을 누린다.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위의 여인은 신사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하며 이젠 내가 자유인으로 당신을 평생 섬기도록 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것이 구원 받은 우리의 자세다. 우리는 자유인으로 우리를 구속한 예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우리의 특권임을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