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3, 2019

저편으로 건너가자 Let Us Cross Over to the Other Side


마가 4:35-41 저편으로 건너가자 Let us cross over to the other side (7/7/19 한미)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은퇴 13년에 함께 예배하던 여러 사람이 주의 나라에 간 것을 보며 많은 변화가 있은 것을 알지만 다른 많은 교회와 달리 한미교회는 든든하게 서서 사역 하고 있음이 감사한다.
우리는 모두 이민 일세다. 조국 한국에서 태어나 생활하다가 언젠가 미국을 바라보며 저편으로 건너가자는 마음이 생겨 한국의 가족 친구 산천을 뒤로 두고 생소한 곳으로 왔다. 소위 미국의 꿈을 이루고자 밤낮 일을 하며 자녀를 교육하는데 교회가 큰 힘이 되었기에 교회에서 충성스럽게 섬기며 오늘에 이르다.

1   오늘 본문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신다.
1)저편이라 할 때는 이편이 있다. 그들이 있는 이편은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 예수의 사역 본부, 군중이 존중하고 따르며 친한 친구가 있다. 언어도 문화도 인종도 동일하여 아주 편안하게 지나는 안전 지대다. 그런데 저편은 거라사 지역 이방인 땅이다. 언어 문화 정치 사회 풍습이 다르고 이편에서 볼 때 그들은 불결하고 악하여 가까이 접촉할 수 없는 외인의 땅이다. 바다 같은 호수가 중간에 가로 막고 있기에 더욱 가지 않은 곳이다. 우리가 미시간 호수 이편에 살면서 호수를 건너 저편에 간다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2)예수께서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신다.
주님의 뜻이요 명령이다. 함께 가자는 것이다. 주께서 이 바다에서 일하던 베드로 요한 등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하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가다. 지금 까지 같이 한다. 이제 바다 저편 으로 같이 가자 하신다. 친밀한 곳을 떠나 생소한 곳으로 건너가자. 동족에서 이방민족으로 가자. 환영 받는 곳에서 적대적인 곳으로 가자 하신다.
3)주께서 이미 그렇게 하셨다. 그는 본래 하나님이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 세상으로 건너 오시다. 영원한 그가 시간 속에 오시다. 창조주가 피조 세계로 오시다. 왕의 왕이 종의 종으로 섬기러 오시다.  그는 동족에게 멸시받는 갈릴리 지역에 본부를 정하고 가난하고 병든 자를 찾아 다니다. 죄인으로 취급 받는 세리도 제자로 삼고 상종하지 않은 사마리아나 이방 두로에 간다.
4)그들의 요구 필요를 보며 그곳에 할 일이 있기에 그들을 찾아가시다. 제자들 믿음이 성숙할 필요를 보시다. 친숙하고 편안한 곳에서는 성숙하기 어렵다. 다른 환경은 삶과 믿음을 성숙시킨다. 또한 사역에 몰두하며 피곤한 제자들에게 휴식이 필요하여 한적한 저편으로 가기도 한다(6:32, 6:45). 주님은 막4-8장에서 네 번이나 건너가시는 것을 본다.

2  항해와 풍랑: 1)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출발하자 다른 배들도 함께 따른다. 그들은 환호하는 무리와 친구들을 뒤로 한다.
2)예수님을 배에 모신 그대로 떠나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한다. 주님은 말씀이요 능력이요 사랑이다. 배가 떠날 때 바다가 조용하고 순탄하더니
3)갑자기 폭풍이 일어난다. 얼마나 심한 폭풍인지 미친 것 같아 광풍이다. 물이 배에 들어와 가득하게 된다.
4)주님은 이런 형편에도 배 뒷편에서 편안히 주무시고 있다. 제자 중에 많은 사람은 이 바다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나 어떻게 하지 못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며 주님을 깨운다. 5)주께서 바람을 꾸짖고 바다에게 잠잠하라 고요하라 명령하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해지다. 귀신을 꾸짖고 잠잠하라 하며 쫓아내는 것과 같다.
6)주님은 제자들에게 어찌 그렇게 무서워하나? 어찌 믿음이 없나? 하니 제자들이 심히 두려워한다. 제자들의 믿음이 성숙할 필요가 있다. 풍랑에도 주님은 그들과 함께 계신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고 바다와 물결도 다스리는 분이 함께 하신다. 아무리 광풍이라도 피조물 바다가 창조주 하나님, 능력의 말씀을 멸할 수 있겠나? 그들에게 믿음을 깨우친다.
7)바다 저편에서 귀신들린 자가 쇠고랑에 묶이어 무덤 사이에 살며 자기 몸만 아니라 지나가는 자를 해치고 있는 형편이 큰 풍랑과 같으나 주께서 그를 건강하고 평온하게 회복시켜 주시는 것을 미리 보여주신 것이다.

3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신다. 무엇을 말씀하나?
1)선교: 100여년 전 우리 한국은 은둔의 나라, 문을 닫고 밖의 문물에 저항하였다. 그런데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는 주의 말씀을 듣고 따른 자들이 초기 선교사들이었다. 편안한 고향을 떠나 오나 환영하는 이가 없다. 토마스 선교사가 1866년 배를 타고 평양에 도착 하자 배는 불이 타고 그는 목이 잘렸다. 평양 서울 부산이나 어디서나 선교사를 환영하는 자가 없었다. 서양 귀신으로 생각하고 배척하다. 많은 사람이 사고와 질병으로 죽었다. 장로교 언더우드, 감리교 아펜젤러는1885 4 5일 부활절 함께 제물포에 도착하다. 아펜젤러는 정동 교회와 배재학당을 세우고 인재 양성을 하며 1902년 배로 제물포에서 목포로 가다가 다른 배와 충돌 침몰하여 생을 마치고 그의 시신도 찾지 못하였다. 언더우드는 새문안 교회, 연희 전문학교를 세우고 정열을 기울여 일하다가 탈진상태로 쓰러지고 1916 세상을 떠나다. 헤론 선교사는 의사로 1885년 도착하여 고종황제의 주치의 일을 하고 제중원을 설립하였지만 1890년 이질에 걸려 회복이 되던 중 여인이 사경에 있다는 말을 듣고 진료해 그 여인은 살렸으나 자신은 죽음을 맞았다. 클락 선교사는 두 자녀를 홍역과 위장병에 잃고 터너 선교사는 3자녀를 모두 한 살도 넘기기 전에 잃었다. 이들 삶에 큰 풍랑이다. 감당키 어려운 일이나 이들은 모두 주의 말씀을 의지하고 이겨내며 우리 조선에 교회와 학교 병원을 세우고 복음으로 개화하는 일을 하였다. 낯선 저편 조선 으로 건너온 이들은 조선을 이해하고 필요를 채워주며 사랑하여 생명을 바침으로 한국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선교지는 주께서 건너가자고 하는 저편이다. 한미에서 이 일에 참여한다. 김학로 장로 이종하 집사를 멕시코로 건너가게 하고 유카탄 산토 도밍고에 교회를 세우고 지금도 임목사님과 팀이 그곳에 건너가 섬기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일을 할 때 죽을 것 같은 풍랑이 있지만 주님과 함께, 말씀과 함께 할 때 이겨낸다.
2)다른 종족 문화 정치 사회는 바다 저편에 있는 곳이다. 일본은 한국에서 보는 바다 저편, 건너가지 못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서로 대립하며 갈등한다. 여기 우리도 건너가지 못하는 저편이 있다. 같은 동리 같은 블락에 살면서도 건너나지 못하는 집이 많다. 중간에 바다가 놓여 있다. 이민 초창기 살기 위해 흑인 사회에 들어가 사업을 했지만 그들 가운데 들어가 그들을 이해하며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주님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신다. 며칠 전 1.5세 감리교 여자 목사를 만나다. 5년전 목사가 되어 백인 교회에 파송을 받아 3년 사역한 후 위험한 지역 잉글우드의 흑인 교회에 파송을 받다. 주께서 저편으로 건너가라 하시나 두려움과 염려가 몰려왔다. 삼촌 강형길 목사께 자문하니 사람이 안전 하다 하는 노스브룩에 있어도 총을 맞을 수 있지만 하나님이 지켜 주시면 어디에 가 있어도 안전할 것이라 하여 믿음으로 들어갔다. 그들이 맞은 첫 동양 여자 목사라 큰 풍랑 같은 고통이 왔지만 지금은 모두가 너무 행복하여 교인들은 목사가 떠날가 걱정을 한다고 한다. 그들을 이해하고 보니 정서적인 면, 찬양을 즐기는 것, 한이 깊은 것 등 공통적인 것이 많았다. 또 그들의 필요를 알고 채우고자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3)지리적으로 사회적으로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간적으로 과거에서 미래로 건너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있는 경우가 많다. 지난 날에 매여 있기에 오늘이라는 바다에 항해하며 자유가 없어 고난을 겪고 밝은 내일을 맞지 못한다. 특히 지난 날 사람 사이에 상처와 아픔이 있다. 상처 아픔이 없는 사람이 없다. 이를 풀지 못하면 상한 마음, 보복하는 마음이다. 이북 신천 박물관에 들어섰을 때 대대로 원수를 갚아라!! 크게 붉은 글자로 붙여 둔 것을 보며 가슴이 섬짓하였다. 미국에 대한 대대의 보복을 말하는 안내인의 어투는 속에 있는 폭풍 노도의 표현이었다. 마음과 삶에 자유와 편함이 없다. 북한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다. 작은 일에 과거 상처가 살아나고 아픔으로 변한다. 원한이 일어난다. 조그만 일로 마음 바다에 광풍이 일어나고 말에 저주 악독이 가득해진다. 상대방을 해치지만 먼저 자신을 해친다. 내가 살기 위해서 풀어야 한다. 풍랑의 바다를 잔잔케 해야 건너갈 수 있다.  

4  어떻게 풍랑을 잔잔케 하나?
1)저편으로 건너가는데 중요한 것은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 우리 전통적인 생각으로는 불가능하다. 12:2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고 한다.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의 뒤를 따라 주와 함께 가며 주께서 하시는 일을 본다. 원수를 용서하는 것이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라 하신다. 몇 번까지요? 일곱 번까지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신다(18:22). 내가 할 수 없는 일, 성령께서 능력 주셔야 가능하다. 마펫 선교사는 1893년 평양을 걷다가 얼굴에 돌을 맞아 쓰러졌으나 자기를 친 그 사람을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주자 그는 감동하여 마펫이 믿는 예수를 믿고 그가 세운 신학교에 입학하여1회 졸업생이 되고 제주도 처음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용서와 사랑은 생명을 일으킨다. 
2)주께서 함께 배에 계시나 그가 주무신다. 주를 믿고 모셔도 말씀이 깨어있지 않으면 나는 할 수 없다. 말씀이 내 속에서 깨어 일어나면 광풍을 잔잔하게 하고 다시 일어나지 않는다.
3)광풍이 잔잔하여 저편에 건너가니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 군대 귀신들린 사람이 광풍 속에 난동이나 주님 통하여 치유와 회복 자유와 생명을 얻었다. 저편으로 건너간 주께서 하시는 일이다.

5   우리가 태평양을 건너 여기까지 왔다.
1)미국의 꿈을 이루고자 함이다. 미국의 꿈이 무엇인가? 자유와 평화 속에 자녀 교육 잘 시키고 좋은 집 좋은 자동차를 가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2)실제 미국의 꿈은 그것을 넘어선다. 미국은 빛을 비치는 산위의 동리로 시작되고 진행된다. 레이간 대통령은 퇴임사에서 자기 8년간의 정치 꿈이 바로 빛을 비치는 산위의 동리라 하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과 약속이다. 내가 너에게 복을 준다. 너를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미국 안에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많은 아픔이 있다. 그러나 세계에서 재난 고통 당하는 일을 보면 제일 먼저 뛰어가는 사람은 모두 미국인이다. 저편으로 건너가 그들에게 생명과 자유 평안을 나누어 복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3)이제 우리의 미국 꿈은 한 단계 발전하여 빛을 비치는 산위의 동리로서 살아야 할 것이다. 나를 통하여 우리를 통하여 누군가 밝은 빛을 보며 삶의 의지와 힘을 가지게 되는 것이 참 복이 아니겠나?  BTS 한국의 팝송 그룹이 전 세계에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킨다. 그들은 너를 사랑하라 웨친다. 자기를 잃고 희망이 없는 세대에 자신의 귀중함을 알려 주는 것이다. 이들은 노래로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다. 우리의 복음과 사랑의 삶이 BTS 노래와 어찌 비교가 되겠나!
4)우리에게 여기는 종점이 아니다. 건너갈 저편이 있다. 누구나 건너게 되어 있다. 그곳은 생명의 주께서 주의 사람들을 위하여 준비해둔 영원한 생명과 빛 평화와 자유의 나라다. 오늘 세상에 광풍이 일어나도 주를 모시고 말씀을 붙잡으면 건너가게 되어 있다.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 개 술객 행음자 살인자 우상숭배자 거짓말을 좋아하는 자는 문 밖에 있다고 한다 (22:15). 주의 은혜로 주와 함께 오늘을 살며 저편을 향하여 함께 건너 가는 공동체로 모두가 복을 받아 생명과 자유를 누리게 되기를 축원한다.

일어나 함께 가자 Rise and Come with me


아가서 2:8-14 일어나 함께 가자 Rise and Come with Me (7/7/19 은퇴목사 교회)
아가서는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관계를 노래로 표시한 것이라 성경에 들어온 것이 이상하다고 하지만 이는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사랑, 예수님과 교회의 사랑을 말하는 것이라 많은 사랑을 받는다.
유대교 랍비 Akiba는 전세계는 아가서가 이스라엘에 주어진 하루만 못하다. 모든 성경이 성소처럼 거룩하나 아가서는 가장 거룩한 지성소라 하였다. 교부 오리겐은 아가서 설교도 많이 하였지만 아가서로 10권의 주석을 썼다. 12세기 Bernard of Clairvaux 는 아가서 86회 설교를 하였지만 2장을 끝내지 못할 정도로 아가서를 사랑하다.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은 보통은 있을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솔로몬은 권세와 부, 영화에 있어 어느 누구와도 필적하기 어려운 위대한 왕이다.
술람미 여인은 볼모양이 없는 비천한 신분이다. 형제들이 그를 포도원지기로 삼아 일을 하게 함으로 햇빛에 거슬려 그의 얼굴은 검게 되었고 천대를 받고 있으나 그가 솔로몬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오늘 본문에서 술람미 여인은 방에서 문을 닫고 있다. 바위틈 은밀한 곳에 숨어 있는 형편이다. 누구를 만나고 싶지도 않다. 좌절과 고통이 있다. 이런 여인을 솔로몬이 산을 달리고 넘어 찾아온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요 주님이다. 이스라엘은 세상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작은 것이나 하나님이 그들을 찾아주시다. 우리는 세상에 속하여 죄악에 물든 사람이나 주께서 우리를 택하고 사랑하신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 은퇴자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목회할 때는 누구보다 큰 꿈과 역량을 가지고 내 모든 사랑과 정력을 다 쏟아 교인들을 돌보았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사람이 따르는 즐거운 목회였다. 주의 일을 이루는 즐거움이 있다. 목회가 잘 되기도 하였으나 술람미 여인처럼 포도원을 잘 지키지 못한 때도 있다. 그러다가 은퇴를 하다. 은퇴를 하고 발견하는 것은 목사는 교인들과 친구가 되지 않은다는 것이다. 다른 목회자가 오고 교인은 그 목회자가 돌보는 양이 되니 내가 들어갈 자리는 없다. 전화하고 찾아오던 사람이 점점 끊어진다. 누구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경제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니다. 외로움 가진다. 주의 일을 한 결과가 이것인가! 실망스런 질문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전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며 잘 나갈 때 주께서 나와 함께 하셨듯이 지금도 나를 사랑하신다. 그가 나를 찾아오신다. 산을 달리고 작은 산을 넘어 사슴처럼 노루처럼 뛰어 나를 찾아오신다. 그는 내가 있는 곳을 아신다. 길이 멀고 힘들어도 찾아오신다. 그가 달려오나 문은 닫혀 있고 담이 둘러쳐 있다. 담뒤에 서서 문으로 들여다 보며 창틈으로 나를 엿본다. 어떤 형편에 있는지 아신다. 문을 열고 들어오시지 않은다. 문을 열어달라 하시며 그는 말씀한다.
1)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형제들은 그를 인정않고 막 일을 시키고 사람들은 그의 외모를 보고 외면할 수도 있지만 주님은 말씀한다. 네가 날 때 배꼽줄을 자르지도 않고 물로 씻지도 않고 네 몸이 꺼린바 되어 들에 버려진 피투성이, 내가 지나가며 네가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라 하며 물로 씻기고 내 옷을 입히고 패물로 장식하고 사랑하여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 (16:1-13) 하신다.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하신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한다 (43:4)
2)일어나라. 내가 그의 사랑 받는 존재임을 알게 하고 나를 있는 곳에서 일어나게 한다. 실망과 좌절, 외롭고 불안한 곳에서 일어나라. 피곤과 탈진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엘리야, 하나님의 말씀 받아 한 마디 하면 3 6개월 우로가 내리지 않고 갈멜산에서 바알신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 대결하여 여호와 하나님이 살아계신 만주의 주임을 증명하였다. 갈멜에서 이스르엘까지 25마일을 아합의 마차 앞에서 뛰어갔다. 그러나 이세벨이 그를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두려워하여 도망하다. 이스르엘에서 브엘세바까지 100마일길을 단숨에 도망하여 사환을 두고 다시 하룻길을 광야로 들어가다. 탈진하여 로뎀나무 아래 쓰러져 죽여달라 하고는 잠이 들다.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지 않는다.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으라 일어나 먹으라 두 번이나 깨워 일으켜 음식을 먹게한다.
3)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에게 일어나라고 하더니 함께 가자 한다. 방에 갇혀 있지 말고 일어나 함께 가자. 친밀한 관계를 맺자 한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나는 너의 친구다 함께 가자. 사랑하기에 영원히 함께 하는 부부가 되자는 것이다. 예수께서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약속하시다. 솔로몬이 함께 하면 누가 술람미 여인을 해롭게 하겠나? 만왕의 왕 전능하신 주께서 함께 하는데 두려워할 것이 무엇인가! 애굽에서 종으로 시달리는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40년간 광야를 통과하는 것이 쉬운 일이겠나? 모세도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가 친히 함께 간다 My presence will go with you(33:14). 얼마동안 목회하였나? 나는 2006년 은퇴할 때 공부하며 목회한 것 포함 40년 사역, 은퇴후 13년중 12년간 사역 총 52년을 돌아보면 광야 중의 광야였다. 실망 좌절에 빠질 때가 많다. 기도가 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주께서 함께 하셨음을 안다. 목회는 주의 일, 주께서 하신 것을 안다. 나를 통하여 주께서 직접 일하시는 것을 보다. 주님을 찬양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홀로 외롭게 지난다 해도 주께서 일어나 함께 가자 하신다.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다.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가까이 하며 주의 사랑의 음성을 듣는다.
4)주님과 함께 나가니 그곳은 다르다. 겨울이 지나고 비도 그쳤다. 꽃은 피고 새는 노래하고 무화과나무는 열매를 포도나무는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있다. 주와 함께 하는 곳은 완전한 낙원이다. 고통과 염려가 없다. 기쁨과 행복이요 사랑이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가져오는 축복이다. 봄의 생명과 아름다움, 즐거움과 풍성함이 있다. 주께서 채워주시는 은혜다. 주와 교제하며 동행하는 자가 누리는 것이다.

주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신다. 우리가 사랑 받는 자로서 이제 사랑하는 자가 된다. 내가 받은만큼 주를 사랑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
행여 방에 갇히다 싶이 하여 고통과 번민가운데 외로워하며 있는 사람을 안다면 산을 달리고 언덕을 넘어 뛰어가는 심정을 가질 수 있을까? 전화로 카톡으로 할 수 있다. One phone call away, one kakaotalk away. 금방 찾아갈 수 있다. 일어나라 함께 가자. 일어나 나오라 만나자 할 수 있다. 힘을 얻게 한다. 새로운 기쁨을 가진다. 이런 축복을 기원한다.

Thursday, July 11, 2019

읽는 것이 아니라 암송한다 Not Reading But Reciting


읽는 것이 아니라 달달 외우고 있어요not reading but reciting perfectly (7/11/19)

암덩어리처럼 생명과 자유를 위협하며 도미노 현상으로 뻗어가던 소련이 70년만에 붕괴하며 연방이 해체되자 많은 한국선교사들이 독립을 얻은 나라들과 모체인 러시아로 들어갔다. 모스코바와 남쪽 모즈독, 북쪽 센피터스버그, 동쪽 블라디보스독까지 갈 수 있는 모든 곳으로 생명과 사랑으로 뻗어가다. 복음적 교회를 설립하고 지도자 양성을 위해 신학교를 설립하고 또 사회봉사 기관과 병원을 세웠다. 이민교회로서 이 일에 동참할 길을 찾고자 나는 비전 여행팀을 만들어 모즈독 모스코바 센피터스버그를 방문하여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또 핸드벨 팀이 연주여행을 하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핸드벨을 기증하였다.
러시아는 기독교 복음에 생소한 나라가 아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찬란한 문화를 형성하였지만 공산주의가 그 이념과 협력하는 정교회는 남겼지만 그 외의 모든 교회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죄목으로 핍박과 수난으로 제거하고 지도자는 죽음이나 숙청, 감옥을 만나다. 교회가 회복될 시기가 온 것이나 체제는 여전히 공산주의다.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것은 좌절과 허탈이라 꿈이나 의욕이 보이지 않는다. 남자들은 한 손에는 담배, 다른 손에는 술병을 들고 거리를 배회한다. 한 때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배급하고 나누었기에 일할 필요가 없었다. 의사의 봉급이 월 150, 교사도 150, 열심히 일할 의욕이 없다. 의사는 환자를 보거나 보지 않거나 받는 돈은 같다. 병원 병실에 들리니 알콜냄새가 없다. 알콜병이 오면 의사가 반을 가져가고 물을 채워두면 간호사가 반을 가져가고 물을 채우고 직원이 그렇게 하다보니 결국 물만 남는다는 설명이다. 아파트를 방문하니 로비가 텅비고 전구가 없어 깜깜하다. 화장실 변기는 뚜껑이 없다. 가지고 갈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간다. 100명의 선교사들이 자동차를 구입하였으나 그 중 70명이 차를 도난 당하였다. 25년전 일이다,
당시 한국에서 장로교 남선교회가 파송한 이흥래 장로가 모스코바에 장로교 신학교를 세우고 지도자를 양성하며 한국교회의 지원을 받아 학생들에게 생활비 장학금을 지급하고 주말에는 지방에 보내어 교회를 개척하고 교회당을 건축하였다. 이장로는 신학교를 졸업하였으나 목사가 되지 않고 장로로서 사업을 하다가 러시아에 선교문이 열리자 헌신하여 사업의 수익금을 선교비로 사용하였다. 내가 그 학교에서 모세 5경 강의를 하다. 교실은 80명의 학생으로 찼고 고려인 여전도사가 유창하게 통역을 한다. 종교자유 문이 열린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들이 성경을 접할 기회가 있었겠나 하는 마음으로 모세 5경을 다 읽어보았나 질문을 하였다. 통역자가 통역을 하지 않고 나를 처다보며 목사님 그렇게 질문하면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 달달 외우고 있습니다 한다. 내가 놀라 알고 보니 그 학생 중 많은 사람은 이전 목사로서 감옥에 갇혔던 이들로 성경을 통채로 암송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산치하에서 자유롭게 성경을 가질 수가 없기에 그 말씀을 생명처럼 가슴속에 간직한 것이다.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성경이 손 닿는 곳에 항상 있기에 암송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로부터 내 자신 암송카드를 만들어 암송하기 시작하고 교인들에게도 장려하고 주일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일주 한 구절씩 암송하게 하였다. 하나님 말씀은 생명과 삶의 길이요 지혜와 능력이라 그것을 받아드려 실천하면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Thursday, July 4, 2019

한 생명의 가치 The Value of a Soul


한 생명의 가치 The Value of a Soul (7/4/19)
브라질 아마존 정글 지역에 2009년도 신학교 강의 및 의료 선교로 갔다. 상파울로와 마나우스를 거쳐 쌍가브리에우 다 까쇼에이라에 도착하다. 브라질과 콜럼비아 접경지대 밀림에 둘러 싸인 인구 12000명 도시다. 산소 공급지 아마존은 지구의 허파라 불리고 세계에서 가장 긴 아마존 강의 지류 히오 네그로 (검은 강) 상류에 위치한다. 밀림이나 채소가 되지 않고 강물이나 고기가 살지 않는다. 폭염과 섭도, 독충과 벌레, 독사, 말라리아 모기에는 천국이나 사람에게는 녹색 지옥이라 불리는 곳, 여기 김철기 허운석 선교사 부부가 1991년 서울 신촌교회의 파송을 받아 자신의 생명을 돌볼 틈도 없이 건강을 해치면서 사역하고 있다. 처음 6개월간 노방전도로 얻은 교인과 10년간 단간방에서 주일 예배를 모이다가 현대식 교회당 건물을 짓고 신학교를 세워 강을 따라 밀림 22개 마을 중 6마을에서 온 신학생들 50명이 공부하고 있다. 배움의 열정과 깊은 영성에서 나오는 이들의 찬양과 기도가 매우 뜨겁다. 내가 2주간 동안 강의와 설교를 하면 선교사가 통역하는데 그렇게 유창하고 신속하게 통역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선교사가 처음 12년 동안 스피드보트로 강을 따라 주변 마을 의료 사역을 하다가 뉴저지 한 교회의 후원으로 유람선같이 생긴 배를 구입, 의료선으로 개조하여 의사가 올 때마다 운행하고 있었다. 내 강의가 끝나는 때 내가 미리 주선한 두 의사가 도착하여 의료선 사역을 하게 되다. 브라질 정부 보건성에서 강 길을 아는 의료선 조종사, 간호사, 치과의사, 영양사 등 8명과 스피드보트를 제공 후원하였다. 정부가 할 일을 외국 선교사가 하고 있지만 그들이 마땅히 할 일이라는 것이다. 신학교 학생 중에 전도와 봉사 활동할 사람들을 포함하여 총 21명이 승선하여 8일동안 배에서 숙식하며 강을 따라 11개 마을을 방문하고 400명 정도를 진료하다. 배가 정박하면 공무원 간호사가 먼저 내려 마을 대표를 만나 공회당에 사람들을 모으고 팀을 나누어 진료한다. 의사 간호사 통역으로 두 팀, 치과 의사팀, 영양사는 아이들의 체중을 점검하여 기록부를 보며 미달자인 경우 정부가 준비해 간 양식을 나누어준다. 전도팀 기도팀 미용팀도 함께 사역을 한다.
하루는 선교사 의사 간호사와 내가 함께 스피드보트로 어느 마을에 가다. 오직 한 집, 모녀가 살고 있다. 선교사는 처음 가는 곳이나 그들은 선교사를 알고 있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한 집을 위하여 찾아간 것만 아니라 간호사가 그들의 건강 기록부를 가지고 외면 당하기 쉬운 원주민 인디오 한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의 건강을 정부차원에서 돌보고 있다는 것이다.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시며 소외되고 병든 자를 찾아 사역하고 생명을 부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여기 인디오 마을들에서 정부를 통해 실천되고 있는 것을 보다. 내가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평생 일을 한다지만 과연 한 생명을 이렇게 귀하게 다루고 있나 자문하며 부끄러움을 느끼다. 미국은 원주민 인디언들을 집단촌에 모아 살게 하면서 여기만큼 대우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 또한 부끄럽다. 예수의 마음으로 한 생명을 정말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기도하며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