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rch 5, 2018

여리고의 멸망 중에 In the midst of destruction


여호수아 6:22-25 여리고의 멸망 중에in the midst of the destruction of Jericho (3/4/18 주일)

3월 첫 주일 포근한 봄비가 내리며 긴 겨울의 눈과 얼음을 녹이고 생명의 숨결을 가져 오는 것을 느낀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이러다가도 폭풍 폭우가 내리 몰아 큰 재난이 나고 많은 사람이 생명을 잃기도 한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가나안 땡에 많은 백성들이 성을 쌓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 하나님은 그 땅을 에짚트에 종으로 살던 이스라엘 사람에게 주시겠다고 하시며 가나안의 첫 관문 여리고를 무너뜨리고 남녀노유 모든 생명을 완전히 섬멸하게 하신다. 그 중에도 손가락질 받는 추한 기생과 그의 가족을 살려내게 하신다. 이럴 수가 있나? 이런 질문을 오늘 보고자 한다.

1하나님의 주권: 아브라함의 자손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에서 400년간 종생활을 하다가 하나님이 전권적 능력으로 모세를 앞 세우고 해방이 되어 자유를 얻다.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광야를 지나 하나님이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 가나안과의 경계선 가까운 지역에 이르다. 모세가 가나안 땅을 미리 알아보려고 정탐 첩보원 12명을 보내어 40일간 지형과 형편을 살펴보고 오게 하였다. 돌아와 10명이 보고 한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러더라 이 과일을 보라. 두 사람이 한 포도 송이를 메고 왔다. 그런데 그 주민은 강하고 성벽은 요새와 같이 견고하고 가나안 사람은 해변과 요단 가에 살고 있으며 그들 앞에 서니 우리는 메뚜기 같더라고 한다(13: 27). 그 보고를 듣자 백성들이 통곡한다. 우리가 다 죽게 되었다고 하며 모세를 원망한다. 하나님을 불신한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들이 정탐한 40일 하루 하루를 1년으로 하여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게 하다. 눈에 보이는 현실만을 보고 하나님과 그 하시는 일을 믿지 못하는 댓가로 40년간 고생을 하는 중에 그 때 그런 보고를 한 사람들과 원망하던 사람들은 모두 죽고 그들을 인도하던 모세도 가나안이 보이는 경계에서 죽었다.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고 하나님은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세우고 모세에게 말한 것처럼 가나안 모든 땅을 줄 것을 다시 확인시키고 그와 함께 하여 그 일을 이룰 것이라 하다. 그 땅을 얻으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여호수아가 정탐 두 사람을 보내며 그 땅과 여리고를 살피고 오라고 하다.
여리고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는 관문이다. 그 도시 국가는 성벽으로 둘러 싸여 있다.  외벽 내벽 이중의 성으로 되어 있다. 그 위는 연결되고 집이 있다. 여기 있는 집은 어느 면에 파수를 하는 역할도 하고 또 외적이 오면 제일 먼저 방패 노릇을 하기도 하기에 귀족이 살지 않고 가난하고 비천한 자가 산다고 한다. 여기 기생의 집이 있다. 많은 사람이 들린다. 창문으로 내다보다가 사람을 보면 부르기도 한다. 정탐이 그 집에 들어가 유숙하며 알고보니 여리고는 총 비상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가오면 자기들이 망할 것을 알고 이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모두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40년 전 모세가 보낸 정탐이 본 것과 정 반대 현상이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자기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와 능력으로 왔다. 이들은 60만 장정으로 전쟁은 훈련이 되지 않았으나 하나님이 앞서서 싸우는 것을 보았기에 용기를 가지고 나간다. 여리고를 점령하는 것도 특별한 방법이다. 무장한 군인들이 앞장 서고 일곱 제사장은 양의 뿔 나팔을 불고 제사장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행하고 궤 뒤에는 무장한 자들이 따라가고 제사장은 계속하여 나팔을 불다. 이들은 성벽을 하루 한 바퀴씩 6일을 돌고 7일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큰 소리를 외치면 그 성이 무너진다고 한다. 성이 무저지면 성안에 있는 남녀 노유 모든 사람과 소와 양 나귀 모든 것을 칼로 멸하여 하나님께 바치되 금은동철은 여호와의 창고에 넣어라 한다. 어떻게 모든 사람 심지어 어린아이까지 모든 짐승까지 다 죽이게 되나? 하나님이 주시기로 예정한 땅으로 가는 길을 가로 막는 아모리왕 시혼과 바산왕 옥, 그 백성을 이미 멸하였다. 이제 여리고를 멸할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이렇게 하시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2  사랑과 은혜가 많은 하나님이 어떻게 천진한 어린아이까지 모두 멸할 수가 있나?
1)가나안 사람들의 악의 결과다. 여리고를 포함한 가나안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들 좋은대로 행하는 악한 백성들이다. 백성의 죄로 그 땅이 더러워졌고 그 악 때문에 벌하지만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낸다 (18:25). 이들은 성생활이 너무 문란하다. 근친 관계, 동성관계, 짐승과 관계가 이들 생활이다(18:6-18) 자녀를 불 살라 그들의 신 몰렉에게 바친다 (18:21). 집을 새로 지을 때 아이를 바치고 가족의 행운을 위하여 아이의 뼈를 넣어 벽을 쌓는다. 이런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만 고고학을 발굴하는 사람들이 증거를 찾아내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시는 것은 그들이 의롭다거나 정직해서가 아니라 가나안 민족이 악하기에 그들을 멸하고 쫓아낸다 (9:5). 사실 이스라엘 백성도 광야를 지나는 동안 계속하여 하나님을 대항하여 불평하고 떠나는 일을 하여 하나님이 진노하였다. 가나안은 이들보다 더 악하였다. 그 악함이 그 땅을 더럽혔다. 어린아이도 더러움에 함께 하였다. 하나님은 그 땅을 깨끗이 청소하고자 하신다. 그들이 남아 악한 영향을 미치면 하나님의 백성이 또한 죄를 짓기에 이들을 보호하는 면에서도 이들을 제거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쉽게 죄와 유혹에 빠진다. 왜 자기 백성을 지키지 않으시나? 자유를 주신다. 아담과 하와는 이상적인 에덴에 살고 있었으나 매력적인 뱀을 통하여 접근하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범하였다.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운 자는 없다. 유혹을 대한다. 부모가 자녀를 기르면서 아이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멀리 하려고 하는 것처럼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외부 유혹이 제거된 깨끗한 땅에 심고 싶어 하신다.
2)왜 하나님은 다른 이가 살고 있는 가나안을 자기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시나? 결국 땅이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그것을 누릴만한 사람에게 주신다. 하나님은 자기 것을 나누어 주시고 사람들로 살게 하신다. 그 땅을 자기 백성에게 주시기로 한 것이다.
3)여리고는 가나안 처음 도성이다. 여리고는 하나님이 약속의 땅에서 주시는 첫 열매다.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물건이나 사람이나 모두를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라 한다. 어른 어린이 모두를 바친다. 만일 온전히 바치지 않고 취하면 이스라엘 진영이 바쳐지는 것이 된다고 한다. 아간이 물건을 탐하여 숨겨 취함으로 다음 아이에서 실패하고 이로 인해 아간과 온 가족이 죽임을 당하였다. 
4)회개의 기회를 버리다. 400년 전 아브라함 때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한 때에는 이들의 죄가 그렇게 심각한 형편에 이르지 않았으나 이들은 회개하거나 돌이킬 생각이 없이 점점 더 죄악에 깊이 빠진다. 하나님이 기다렸으나 점점 죄가 심해지니 공의의 심판이 임하게 되다. 그러나 이들이 죄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대표적인 예가 니느웨다. 그들도 참 악한 민족이다. 가나안과 비슷한 악을 많이 행하지만 전쟁에서 포로를 잡으면 사람을 산 채로 껍질을 벗길 정도였으니 얼마나 악한 민족인가! 이스라엘은 그들을 두려워 하며 속히 망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자 모든 백성과 왕이 금식하며 회개하고 죄에서 떠나기로 작정하였다. 40일이면 멸망시키려던 공의의 하나님이 사랑 으로 그들을 용서하고 150년을 더 누리게 하였다. 이스라엘도 악을 저지르고 회개하지 않으면 공의의 심판을 받는다. 가나안 땅을 얻은 이스라엘도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악을 행하면서 회개하지 않기에 그들도 결국 그 땅에서 토해 냄을 받았다. 북의 이스라엘은 주전 722, 남의 유다는 주전 587에 망하였다. 하나님이 세워둔 법의 공의로운 심판이다.

3  놀라운 일은 이런 심판과 멸망 속에서도 구원 받아 살아 남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기생 라합과 그 온 가족은 살아 구원을 얻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라합과 그 가정에 임하였다.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다. 라합은 가나안 사람으로 신분이 비천한 기생이다. 성벽위에 집이 있다. 사람을 내다보고 불러드린다.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여호수아가 보낸 두 정탐군이 접근한 때 그가 문을 열고 불러 들였는지 모를 일이다. 정탐군이 라합집에 온 것을 왕이 알고 사람을 보내어 그들을 잡아내라고 한다. 그러나 이미 라합은 그들을 지붕 위 삼대 밑에 숨겼다. 라합은 지붕 위에 삼을 말리고 그것으로 천을 만들고 물감을 드리는 일도 한 것 같다. 라합은 왕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왔지만 정탐인지 몰랐고 어둡기 전에 떠나갔다고 하며 정탐을 보호해 주었다. 나라가 위험한 전쟁을 직면한 때 정탐을 숨겨주는 것은 이적죄로 사형에 해당한다. 정탐이 잡히면 또한 사형이다. 그러나 라합은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릎쓰고 이 정탐을 숨겨 주므로 자기 나라에 대하여는 배신을 하였다. 어떻게? 그는 되어질 일을 알고 있었다. 자기 집에 많은 사람이 오기에 성밖에서 되어지는 많은 소식을 듣는다. 특히 이스라엘에 관한 소식이다. 그들이 에집트에 노예로 살고 있다가 해방되어 나오고 홍해를 마른 땅 같이 건너는데 애굽 군인들이 따라 갔다가 물에 모두 수장된 사실,  광야 40년동안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그들이 생존해 온 것, 가나안으로 접근해 오면서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멸망시킨 것을 모두 듣고 있다. 그들이 지금 요단강 건너편에 있지만 40년 전 홍해를 건넌 것처럼 이 강을 건너오면 여리고는 바로 멸망할 것을 내다 보고 있다. 그 모든 일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하고 있음을 듣고 있다. 그는 숨겨준 정탐군에게 말한다. 2:9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안다. 우리 백성이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이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고 있다. 홍해 사건과 아모리 왕들을 전멸 시킨 일을 듣고 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 하늘의 하나님 아래로 땅의 하나님이라 무슨 일이나 하신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한대로 그가 많은 사람 통하여 듣고 보니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여리고도 무너지고 멸망할 것을 본 것이다. 자기 나라 여리고가 망할 것을 내다 보면서 그도 같이 망할 것인가 아니면 살 길을 찾을 것인가 빨리 결정한 것이다. 그는 살 길을 선택하다.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인정하고 믿으면서 그에 따른 행동으로 정탐을 숨겨 준 것이다. 그리고 정탐에게 약속을 받아낸다. 내가 너희를 선대 하였으니 너희도 나와 내 부모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죽음에서 건지도록 맹세 하라고 하다. 라합이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 그들을 달아내리니 그들이 말한다. 이 붉은 줄을 이 창문에 매어 보이게 하고 모든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그리고 우리 일을 누설하지 않으면 우리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하리라. 이 약속을 지킨다.
여리고가 무너질 때 정탐했던 사람이 라합 집에 들어가 맹세한 대로 그에게 속한 모든 것, 라합과 그 부모와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친족을 다 이끌어 내고 난 뒤에 그 성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불로 사르다. 여리고 전체가 불에 타고 멸망을 당하는 중에 기생 라합과 그 집에 있떤 모든 가족은 생명이 안전하도록 구원을 받았다.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을 보호하고 숨겼기에 이제 그들이 이스라엘과 한 가족으로 같이 살게 되었다. 그만 아니라 라합은 살몬이라는 유다 지파에 속한 사람과 결혼하였는데 이 살몬은 두 정탐 중의 하나라 한다. 1:5라합은 살몬과 결혼하여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고 1천년 후 요셉을 통하여 아브라함과 다윗의 족보에 예수께서 들어가게 되었다. 라합은 믿음과 행함의 사람으로 인정된다. 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 하였다. 여호와 하나님과 그가 하신 일을 듣고 믿음으로 그가 앞으로 하실 일을 또한 믿음으로 정탐군을 편안하게 대우하였다. 2:25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이라 하다.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따른다. 믿었기에 정탐을 안전하게 숨겨주고 또 안전한 길을 가게 안내하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기생 라합이다. 추하고 부끄러운 이름이다. 기생이라도 주를 향한 믿음을 가지고 옛 삶을 청산하고 주께로 향하면 그가 주의 백성이 되고 주의 뜻을 이루는 귀한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그가 기생이지만 믿음의 영웅 반열에 들어간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위대한 일이다. 예수께서 내 조상 중에는 기생이 있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나 같다. 우리의 지난 날을 상관하지 않으시고 오늘의 믿음을 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다.
우리의 지난 날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의 믿음과 행함이 우리를 새롭게 한다. 이것이 주의 사랑이요 은혜다. 하나님은 공의로 죄를 심판하는 중에도 믿음의 사람을 찾아 내어 구원하고 하나님의 크신 일을 이루신다. 기생 라합이 믿음으로 변화하자 여리고의 멸망 중에서 구원되어 살몬의 아내가 되고 죄인을 구원하는 예수님의 조상이 되는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언젠가 온 땅에 불의 심판이 임한다. 예수께서 재림하면 마지막이 온다. 그 때에도 주를 믿는 자들은 안전하게 구원 받는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주의 공의만 아니라 신실한 사랑과 은혜를 바라보며 감사함으로 주와 함께 나아가자.

Monday, February 26, 2018

공의와 사랑 Justice and Love


미가 6:6-8 공의와 사랑 Justice and Love (2-18-18 사순절 1주일)

우리는 보통 다른 사람에게 잘 하고 싶어한다. 특히 가족일 경우 부모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하나 자녀는 그것을 부모의 사랑으로 고맙게 받아드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 부모가 자기 위주로 하는 것이지 자녀가 좋아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부도 서로를 위한다. 음식을 잘 해도 상대방이 그렇게 즐기지 못할 때가 있다. 요리하는 사람이 상대방 생각을 하면서도 자기 좋아하는 식으로 한 것이다. 이런 경우가 하나님 관계에도 일어난다.
오늘 미가서의 배경은 유다가 어려운 형편에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나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고 이웃 나라와 동맹을 하여 안전을 추구한다.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고 있고 백성들은 고통을 당한다. 이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도움을 얻을 수 있겠나?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겠나? 그들은 번제를 드린다. 일천 수양을 드린다. 심지어 자기 맏아들을 드릴 정도로 나간다. 그래서 하나님 호의를 받고 싶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한다. 너희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다. 누가 그것을 요구하더뇨 너희는 내 마당만 밟는다 (1:11,12)고 응답하신다. 하나님이 원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고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한다.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 한다. 하나님은 많은 제물보다 그들의 마음과 생활을 더 기뻐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 마음에 드는 일은 하나님이 원하는 일,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삶을 사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신 것,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주께서 원하신다.

1  공의를 행하라 하신다. 이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라는 것이다. 5:16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정의로우시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일컬음을 받으신다. 9:8,9 여호와는 공의로 세계를 심판하심이여 정직으로 만민에게 판결을내리시리로다 여호와는 압제를 당하는 자의 요새시요 환난 때의 요새라. 성경 많은 곳에서 하나님을 공의로운 분이라 한다. 공의는 무엇인가?
1) 바른 관계를 위한 것이다. 생명과 평안 조화를 위한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바르게 함으로 생명과 안녕을 누리게 된다. 이를 위하여 법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이라 하고 그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하시며 바른 관계를 위하여 그들이 살아갈 길을 보여 주시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다른 이가 없다고 하며 그와 바른 관계를 맺을 때 생명과 평안을 누리는 것을 말씀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것이 생명과 축복의 길이다. 예수께서 이를 가장 큰 계명 모든 율법 중에 가장 핵심이라 하신다. 하나님이 이 법을 주신 것은 생명과 아름다운 관계를 위한 것이다. 그 관계를  깨뜨리면 그 결과로 생명을 잃고 평안을 잃는다. 법을 어긴 결과를 하나님이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법을 어긴 아담을 하나님이 심판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다. 그것이 바로 죽음이다. 이것이 공의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다. 지난 수요일 플로리다 파크랜드의 고등학교에 19살 니콜라스 크루즈라는 괴한이 자기 모교인 그 학교에 총을 가지고 가 17명 학생 교사를 무차별 죽였다. 생명과 평안을 파괴하였다. 가족과 공동체에 큰 고통을 더하다. 이런 경우 그 범인에게 그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공의다. 그를 용서하고 내 버려 두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2) 공의를 실행할 때는 공평함이 있다. 증인이 법정에서 증언할 때 부자라고 두둔할 것 아니고 가난한 자라고 박대할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공평하게 대하라 하신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꼭 같이 창조함을 입은 생명으로 존중을 받게 되어 있다. 이것이 공의다. 하나님 백성이 애굽에서 종으로서 고생하며 인격 대우를 받지 못하다. 하나님이 공의로 그들을 자유인으로 구하여 내었다. 너희들이 종으로 살다가 해방되었은즉 종을 부리지 말라. 공의요 공평이다. 미국의 흑인들이 공평한 대우를 받기 위하여 300년간 투쟁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된 그 때에 누구나 동등한 것이 증명되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대우 받는 것이 공의다. 성경에는 공의와 관련하여 9 종류의 사람 곧 과부 고아 아버지 없는 자, 가난한 자, 주린 자, 나그네, 없는 자, 약한 자, 눌린 자가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공의의 하나님은 이들을 모두 꼭 같이 대한다. 압제 당하는 자의 요새요 환난시의 요새시다. 예수께서 여기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하신다. 야고보는 교회에서 차별 대우를 본다.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또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냐 (2:2,3). 오늘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교회 안에 공의가 없다는 것이다. 주께서 사랑하여 피흘리고 구한 사람을 너희가 멸시하나!
3) 공의는 빚진 것을 갚는 것이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한다. 집을 사기 위하여 돈을 빌린다. 그리고는 다달이 그 돈을 갚는다. 그것이 바른 길이다. 누가 나를 위하여 일을 하면 댓가를 바르게 치르는 것이 공의다. 그래야 관계가 유지되고 사회의 안녕이 지속된다. 세금 낼 것을 낸다. 우리가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않은 것이 있나(고전 4:7)? 우리 생명 재능 모두 우리가 받은 것이다. 빌린 것이다. 언젠가 돌려 드려야 한다. 모든 것을 빌리고 받아서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 사용료를 얼마를 내고 있나? 빚을 갚지 못하면 문제다. 집 값을 내지 못하면 집이 차압된다. 그것이 공의의 실천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다. 하나님이 얼마를 요구하시나? 시간의 경우 7일에 하루 그 날을 하나님 예배에 드리라 한다. 물질의 경우 수입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께 드리라 한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 공의로운 일이다. 예수께서는 우리 생명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주셨다. 나는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공의를 행하나?
공의를 행하면 사랑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공의를 행하는 바탕에는 사랑이 있다. 생명 사랑하고 모든 사람의 평안과 안녕을 위한 것이다. 사랑이 기본이 되어 공의가 실천된다.  

2   인자를 사랑하라. 인자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7:8 여호와 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 조상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되었던 집에서 애굽왕 바로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었다. 요한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요일 4:8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1) 하나님은 삼위일체 간에 서로 사랑한다.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가 만든 세상과 사람을 사랑한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고 돌보시고 사랑하신다. 버려두지 않으신다. 어디서나 항상 같이 한다. 지켜준다. 우리가 그의 것이기에 사랑하고 돌보신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 가운데 아브라함을 선택하여 그와 그 자손을 자기 사람으로 삼고 복을 주신다고 언약을 맺고 사랑한다. 그의 후손이 어디 있든지 언제나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신실하시어 변치 않고 사랑하신다. 아브라함 후손만 아니라 교회를 향한 사랑도 그렇다. 아들 예수의 죽음으로 구원한 주의 백성을 하나님이 사랑하신다. 우리를 성령의 전이라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 하시니 참으로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변치 않고 사랑한다. 우리 삶이 많은 언약 약속으로 된다. 부부가 결혼할 때 평생을 사랑하겠다고 서약을 한다. 그 약속을 지켜 나가는 것이 신실한 사랑이다. 목사 장로 집사가 될 때 서약을 한다. 주께서 약속을 지키듯이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세례 받고 그리스도인이 될 때 또 한 교회의 교인이 될 때 교인 서약이 있고 그 서약을 지키는 것이 사랑이다.
2) 우리가 배반하고 잘못하여 죄를 범할 때에도 사랑하신다. 자식이 잘못하는 것을 버려두지 않고 채찍하고 징계한다. 사랑하기 때문이다. 주의 백성이 잘못하고 하나님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그들을 용서하고 받아드린다.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 먼 나라에 간 둘 째 아들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흉년을 만나 남의 돼지를 치다가 먹을 것이 없던 차에 부모 집을 생각하고 뉘우치며 돌이켜 찾아가다. 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있다가 뛰어나가 반갑게 맞는다. 옷을 갈아 입히고 잔치한다. 잃었던 아들을 찾았다고 기뻐한다. 큰 아들이 들에서 돌아와 되어지는 일을 보고 분개하여 들어가기를 싫어한다. 아버지가 나와 위로한다. 내 가진 모든 것이 너의 것이 아닌가? 네 동생은 잃었다가 다시 얻은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두 아들 모두를 사랑하고 받아준다.
유다의 왕들 가운데 가장 악한 왕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다. 히스기야는 앗수르가 공격해 온 때 대항할 힘이 없어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18 5천 아수르 침략군을 모두 송장이 되게 한 믿음의 왕이다. 죽을 병이 든 때 눈물로 기도하자 15년 생을 연장 받은 왕이다. 이런 왕의 아들이 므낫세다. 므낫세는 잊어버리게 하는 자라는 의미다. 55년 가장 오랜 기간 통치를 하면서 어떤 왕보다도 더 악한 일을 많이 하다. 하나님 성전에 우상을 세우고 심지어 아들을 우상에게 바치기도 할 정도다. 하나님께서 므낫세의 일로 나라를 심판하시다. 아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이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가다. 그 환난을 당하자 그때에 깨닫는다. 그가 겸손하게 조상의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하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시고 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다시 왕위에 앉게 하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인 줄 알고 (대하 33:11-13) 모든 우상을 제거하고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고 이스라엘 하나님만 섬기게 하였다. 겸손하게 기도할 때 하나님은 용서하신다. 사랑이다. 하나님은 이방인도 사랑하신다. 악한 니느웨 사람들을 멸하려 하였지만 그들이 회개하자 하나님은 용서하였다. 요나는 그럴 줄 알고 도망하였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노를 돌이켜 용서하실 것을 알았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예수의 제자들은 온 세상에 나가 생명의 복음을 전하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지옥의 뗄감이라 생각하고 멸시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여 구원하신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지만 하나님이 사랑으로 선택하여 영적인 이스라엘로 생명과 복을 받게 하셨다. 사랑이다.
3) 끝까지 희생할 정도로 사랑한다. 주님의 사랑이 그러하다. 13:1 제자들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한다. 자기 목숨을 버리기까지 사랑한다.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사랑이 죄를 묵과하는 것 아니다. 고치고 새롭게 하시는 일을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은즉 그런 사랑을 하라고 한다. 잘못하는 사람을 받아주고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사랑을 베풀기를 주님은 원하신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한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 기도한다.

공의와 사랑은 같이 가지 못할 것 같다. 공의는 사랑 없는 심판이요 사랑은 모든 잘못을 묵과하여 공의가 없는 것으로 보여 서로 반대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공의의 기초는 생명과 안녕을 사랑하기에 행해진다. 사랑도 온전한 생명과 안녕, 질서를 위해 징계하는 공의를 보인다. 이 둘이 조화를 이루어 주께서 바라는 생명 평안이 이루어진다. 사순절 기간은 이 둘이 예수님 안에서 서로 만나고 조화를 이루어 우리 모두가 참생명과 평강을 누리게 됨을 기억한다. 우리가 관계를 깨뜨리고 심판 받을 존재이지만 주의 사랑으로 우리를 택하고 인도하심을 생각하면 우리는 겸손해진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높이며 예배하게 된다. 우리 이웃에 대해서도 주께서 공의와 사랑으로 대하기에 나도 겸손히 그를 받아 드릴 때 참 생명과 안녕의 삶을 누릴 것이다. 공의와 사랑, 겸손으로 주의 생명과 평안을 최대한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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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과 하와의 가죽 옷 Coats of Skin for Adam and his Wife

창세기 3:14-21 아담과 하와의 가죽 옷 Coats of Skin for Adam and Eve (2/25/18 사순절 2주)




여러분 각자가 특정한 옷을 입고 이 자리에 왔다. 어떤 옷을 어떤 생각으로 입었나? 지난 평창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한 각국 선수단이 각각 다른 옷을 입었다. 추운 겨울이니 가죽 옷을 입은 자도 있고 또 자기 나라 화려한 복장을 한 자들이 있고 남태평양 통가에서 온 대표는 옷을 벗고 입장하다. 물론 그 나라 전통이라 볼 수 있다. 옷을 입지 않고 사는 자가 있고 가죽으로 옷을 입는 자가 있다. 인류의 시조가 살던 낙원 에덴동산에서 옷의 문화가 발전하였다. 벗고 살던 때가 있고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은 때가 있고 가죽옷을 입은 때가 있었다.

1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 벌거 벗고 살았다(2:25). 벌거 벗고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1)이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자들이다. 둘 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그들에게서 비치고 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그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통가에서 온 선수는 근육이 뛰어나고 몸매가 좋아 그대로가 훌륭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여인의 몸이 남자보다 뛰어나게 아름답다. 그대로 나타나는 것이 보기에 좋다. 자랑스런 일이다.
2)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 사이에 가리거나 숨길 것이 없다. 그대로 다 보여도 부끄러운 것이 없다. 어떤 형편에나 자유를 가진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는 환경이 최적이다. 환경이 그들 삶에 맞추어 준다고 본다. 그들은 벌거 벗고 사는 것이 아름다운 일이다.

2벗고 살던 아담과 그 아내가 무화과 나무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입었다(3:7). 어떻게 되었나?
1)이들이 뱀을 통한 사탄의 말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먹었다. 뱀은 선악과 먹으면 죽지 않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며 여자로 하나님이 되라고 부축인다. 여인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된다는 말을 듣고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뱀의 말을 따라 그의 지시를 받게 되었다. 뱀의 사람이 되다. 하나님의 영광이 같이 머물 수 없어 떠나게 되다. 하나님 영광의 광채가 떠나니 그들 자신의 몸이 보잘 것 없는 추한 모습이 되다. 그 모습이 부끄러워 가리게 된다. 추한 것이 나타나지 않게 하고자 함이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다. 옷은 속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도록 한다. 옷을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도록 만든다.
2)뱀의 말을 듣고 그 선악과를 먹으면 죽지 않고 하나님처럼 된다고 하였으나 그들은 하나님이 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분순종하여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깨뜨렸으니 하나님이 두렵고 그 앞에 부끄럽다. 그동안 하나님을 만나 함께 걷고 대화하고 사랑을 나누었으나 이제 만나는 것이 두렵다. 숨고 싶다. 자기를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나무 사이에 숨다. 하나님 만나기가 두렵게 되다. 마지막 심판 때 사람들이 굴과 바위틈에 숨어 우리를 덮어 하나님의 얼굴에서 우리를 가리라 (6:16)하는 것과 같다.  
3)아담과 그 아내는 잘못한 것에 대하여 뉘우칠 생각을 않고 오히려 원망한다. 아담은 여자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을 핑계한다. 그러면서 그 여자가 주기에 먹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아담이 여자를 향하여 내 살중의 살이요 내 뼈중의 뼈라 우린 하나라 고백하며 사랑하더니 이제는 저 여자 때문에 먹었다고 하며 그를 원망하고 자기 책임을 전가한다. 두 사람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다. 자유롭지 못하다. 둘 사이에 담이 생기다. 여자는 아담에게 좋은 배필이 되어야 하는데 뱀의 말을 듣고 속아서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하고 함께 죄를 지어 돕는 배필이 되지 못하였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숨고 싶다. 부끄러운 죄의 모습을 나타내고 싶지 않아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만들어 자기를 가리는 것이다. 부끄러움을 가리고 숨고 싶어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3  이들이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덮었지만 하나님 앞에 숨길 수 있을까? 사람에게는 숨길 수 있어도 하나님에게는 숨길 수가 없다. 겉이 어떻게 되었던 어디에 있던 하나님은 모두를 아신다. 하나님은 아담이 숨어 있지만 그것을 아시고 그가 선악과 먹은 것도 아신다. 우리의 말이나 행동 생각마져도 숨길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벗은 것처럼 나타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잘못하면 그에 대한 당연한 결과가 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이요 공의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한 대로 그들은 죽었다. 죽음은 영과 육의 분리지만 죽음은 하나님과 분리다. 이들이 하나님을 떠났기에 하나님의 영이 떠났다. 흙인 육체만 남았다. 공의로운 심판이다. 선고가 따른다.
1)뱀을 향한 결과 선고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했으니 들의 모든 짐승보다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라. 배를 땅에 붙이고 흙을 먹고 살라고 하다.  흙은 아담이다. 곧 사람이다. 사탄은 사람을 유혹하여 하나님을 떠나게 하여 넘어뜨리고 그것을 양식으로 삼는다. 뱀이 여자와 원수가 되고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이 원수가 되어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뱀은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 (3:15). 서로 원수가 된다.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아 다닌다(벧전5:8). 아름답고 친근미가 나던 뱀은 대적자 마귀 사탄의 대명사가 되고 그 후 사람과 원수가 되다. 인간 세상에 원수관계, 갈등과 아픔이 들어오다. 하나님은 그러나 언젠가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그를 끝낼 것이라 하신다. 하나님이 결국 사탄을 정복하고 멸망시킬 것을 말씀한다. 사탄의 종말은 하나님 백성의 자유로운 평안, 천국이다.
2)여자를 향한 심판 선고다. 임신하는 고통과 해산하는 수고를 가진다. 임신하여 애기를 낳고 양육하는 고통이 오다. 고통이지만 생명 출산의 길을 주신 것이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 축복의 말씀은 이제 고통을 거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린다고 하다. 하나님 창조의 질서가 깨어진 것을 본다. 아담과 그 아내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며 하나님의 사랑과 지배를 받으며 서로 사랑하게 되어 있었으나 이제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말을 듣고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다. 마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은 여자는 그 결과를 알고 멈추어야 하는데 그것을 남편에게 주어 먹게 하다. 자기가 지은 잘못과 죄를 남편도 짓게 하다. 남편에게 주어 먹게 하는 것은 남편을 자기 길로 인도한 것이다. 네가 남편을 사모한다, 원한다는 말은 네가 남편을 갖고 싶다. 마음대로 하고 싶다. 뱀의 말을 듣고 사탄의 지배 아래 들어가면서 온 일이다. 자기 중심, 자기 원하는 길로 남편을 인도하고 싶은 것이다. 범죄 후 여자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내를 다스릴 것이다. 이전에는 사랑으로 인도하였으나 이젠 갈등 관계에서 힘으로 다스리는 자리에 이른다. 이런 형편은 오늘까지 내려오는 가정의 비극이요 아픔이다. 그러나 그 후손이 그를 넘어뜨린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는 복음을 주신다. 그는 수고로워도 그 후손을 기다리며 후손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3)아담을 향한 선고가 있다. 그가 지음 받은 흙,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를 낼 것이라 땀을 흘리고 수고하여 밭을 가꾸어 채소를 먹도록 하다. 결국 흙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나님에게서 온 영은 하나님께로 돌아갔지만 이제 그의 육체가 흙으로 돌아간다. 완전한 죽음을 맛보게 된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사랑과 소망을 본다. 여자의 이름을 하와라 하다. 하와는 생명이란 말로 자기 아내를 모든 산 자의 어머니라 이름 짓다. 하나님의 심판 선고에서 여자를 통한 희망을 보다. 범죄하여 하나님을 떠났지만 그가 자식을 낳을 것이다. 그와 그의 후손이 뱀과 그 후손과 원수가 되어 싸울 것이지만 결국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여 그를 끝내게 할 것이라는 데서 하나님의 계획과 희망을 본다. 믿음을 가진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다. 이 희망을 본 아담이 그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 지었다. 여자 또는 아내는 남자에게서 나온 자, 약하다는 의미나 이제 하와, 생명이요  모든 산자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범죄하여 죽음을 만났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원수를 이기고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으로 일어날 것을 본다. 아담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하와를 통하여 생명이 일어날 것을 본다. 하나님께서 처음 이들을 짓고 축복하신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그 일을 하와를 통하여 이루어 나간다. 아담과 하와가 아들을 낳다. 가인과 아벨을 낳다. 사탄의 역사로 갈등과 대적 관계로 가인이 아벨을 죽였지만 하나님은 셋을 주시고 그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믿음과 생명을 전하여 내려 가다. 에녹 노아를 통하고 아브라함 다윗 예수에게로 내려가는 길을 여시다. 어떻게 그 일을 하시나?

4  가죽 옷은 하나님의 사랑의 조처다.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다. 아담과 그 아내는 무화과 잎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으나 그것은 곧 시들고 말라져 옷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들의 허물 죄는 나타난다. 그러나 가죽 옷은 영구한 의미가 있다. 없어지지 않는다.
1)가죽옷은 짐승이 죽었다는 것을 전제한다. 짐승이 피를 흘리고 죽었다.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어 죽음의 형벌을 받을 자리에서 짐승이 대신 죽어 피를 흘렸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음으로 하나님을 떠나 죽음의 형벌을 받지만 그 형벌을 짐승이 대신 받고 죽은 것이다. 짐승이 대신 죽음으로 아담과 하와가 살게 된 것이다. 이제 이들은 자기들이 입고 있는 가죽 옷을 볼 때마다 그들 대신 짐승이 죽은 것을 깨닫고 주께 감사하며 주의 뜻을 따르기로 마음을 가진다. 짐승이 피를 흘려 죽어 죄의 형벌을 받았기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죄의 가리움을 받은 것이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32:1). 이것이 지성소에서 일어난다. 지성소 안에 언약궤, 그 안에 세 가지가 들어 있다. 십계명 돌판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삯난 지팡이다. 언약궤 뚜껑이 있고 그 위에 하나님 그룹 천사 둘이 서서 내려다 본다. 하나님이 언약궤 속을 들여다 보면 분노가 일어난다. 십계명 돌판은 처음 것은 깨뜨리고 다시 만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반하고 계속 우상을 섬긴다. 만나를 먹으면서도 계속 원망하고 불평한다. 하나님이 아론을 세웠지만 그들이 아론을 거절하고 스스로 지도자가 되겠다고 한다. 하나님이 분노하신다. 그 때 대제사장이 일년 일차 양의 피를 가지고 와서 언약궤 뚜껑에 뿌린다. 백성의 반역과 죄를 대신해 양이 피를 흘리고 죽었다는 것이다. 천사가 내려다 보는데 누군가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죽은 것을 알게 된다. 백성의 죄는 생명의 피로 덮어지고 하나님의 분노가 가라 앉는다. 그래서 언약궤 뚜껑을 속죄소 또는 시은좌라 한다. 아담과 하와가 가죽 옷을 입고 있으면 그 짐승의 피가 그들 죄를 덮어 주는 것을 본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보지 않고 짐승이 피를 흘려 죽은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의 조치다. 가죽 옷을 입으면서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죄를 보지 않고 짐승이 대신 죽은 것을 봄으로 죄의 결과 심판은 행해진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함께 만난 것이다. 아벨이 양으로 제사를 드린 것은 바로 이 대속 은혜를 표현한 것이다.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고자 할 때 하나님이 숫양을 주시어 그를 대신하여 드리게 하다. 애굽에 살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해방되어 나올 때 애굽 모든 초태생은 죽는 밤에 어린양을 잡고 그 피를 문설주 문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의 사자가 그 집에 들어갈 필요가 없어 그 집안에 있는 자는 아무도 죽지 않게 되고 해방의 자유를 갖게 되었다. 유월절이 되다. 어린양이 대신 죽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요 또한 사랑과 은혜의 조치다.
2)가죽 옷은 여자의 후손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죄가 없으시면서도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를 믿는 자 그의 피를 의지하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길이다. 사람을 대신하여 짐승이 죽는 것은 그림으로서 참 사람 예수께서 하실 일을 내다 보고 준비하게 하였다. 예수께서 하나님 어린양으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주신 가죽 옷은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말한다. 그 옷을 입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의를 따라 의로움을 입는다. 놀라운 하나님 사랑이다. 61:10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개 더하심이라. 누가 15장 탕자가 회개하고 돌아오자 아버지는 그에게 새로운 옷을 입혀 주었다. 잔치에 초대 받아 갈 때 그 집에서 주는 예복을 받아 입는다. 하나님 앞에서의 예복은 그리스도의 옷이다. 13:14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는 말씀으로 어그스틴이 변화를 받고 새 사람이 되었다.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나에게 삶의 길을 열어주신 것을 믿음으로 주를 영접하면 예수로 옷 입게 된다.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주께서 허락하시는 생명의 축복이다.

어떤 옷을 입고 있나? 벌거 벗고 사는 자는 자리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자랑한다. 무화과 잎의 옷을 입은 자는 자기의 더러움 두려움을 숨기고 옷을 자랑한다. 가죽 옷을 입는 자는 나를 구원하여 생명 주신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한다. 내게는 옷에 대한 어떤 자랑이 있나? 세상의 어떤 옷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워주지 못한다.  오직 어린양 예수의 피로 죄를 씻는 그 의가 우리를 덮어 줄 때만 우리를 구원과 영생으로 가게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처리하고 우리를 구원하는 사랑이다. 이 사랑을 가슴에 안고 주님을 바라보며 감사와 찬양으로 사는 사순절 매일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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