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ne 19, 2021

어둠 속의 희미한 불빛

 사사기 19:16-30 어둠 속의 희미한 불빛

사사기 시대는 왕이 없어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좋은 대로 행하여 어둠과 혼돈, 공허한 시대였다. 오늘 본문에는 어둠이지만 그래도 빛이 나타나 보이는 장면이 있다.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레위 인이 첩을 두었다는 것 그 첩이 행음하고는 베들레헴 친가로 돌아갔다는 것은 어둠의 일이다. 레위인이 본처 이외에 첩을 둔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 뜻을 따라 행하는 일이다. 그 첩이 행음하였다는 것은 창기의 일을 한 것이라 스스로 집을 나간 것인지 아니면 남편이 그를 보내었는지 모르나 그 첩이 베들레헴 자기 부모 집으로 돌아갔다. 행음하고 살 수 없어 친정으로 돌아온 딸을 쫓아 내지 않고 받아주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 뿐 아니라 넉 달을 지나자 그의 남편이 그를 찾아가다. 본처가 있기에 첩이 행음하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간 것이면 그를 버릴 수도 있고 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남편이 하인을 데리고 그를 찾아가 그에게 다정하게 말하고 데려오려고 하였다. 배신한 여자이지만 남편이 그를 용납하여 데리러 간 것은 어두운 밤에 보는 빛이라 할 수 있다. 그 여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환영하고 최대한 접대한다. 그가 어떻게 하였기에 딸이 행음하게 되고 결국 친정으로 돌아오게 되었나로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을텐데 그러지 않고 사위를 오래동안 접대하고 접대한다. 아름다운 관계라 본다.

5일째 되는 날에는 늦은 시간이나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첩과 사환과 같이 출발한다. 해가 넘어갈 시간이 다가오니 어느 곳에서 하루 밤 유숙을 하여야 한다. 하인은 나중에 예루살렘이 되는 여부스를 제안하였으나 레위인은 이방인 지역보다는 동족의 땅을 택하자며 벤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로 들어가 성안 광장에 도착하다. 당시 여인숙이나 여관이 없는 것으로 보아 풍습은 황혼이 다가오는데 광장에 사람이 있다면 이는 길 가는 나그네라 숙소가 필요하기에 먼저 보는 사람이 숙소를 제안하게 되는데 기브아 사람은 아무도 그의 일행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들이 거리에서 노숙해야 할지 모를 형편이다. 어두운 밤이요 인심이다. 그런데 한 노인이 밭에서 일을 하다가 돌아가는 길에 이 나그네를 만나다. 그대는 어디로 가며 어디 사람인가? 에브라임 사람으로 유다 베들레헴에 갔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돌아가는 중인데 아무도 자기 집으로 영접하는 자가 없다. 그 말을 듣자 노인은 그를 초청한다. 모든 것을 책임지고 나귀와 사람을 접대하겠다고 한다. 이 나그네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겠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는 기브아인지 모르나 거기 한 사람이 있는 것으로 이 나그네에게는 만족이다. 그것도 기브아 본토인이 아니라 에브라임에서 이주해 온 사람이다. 이주해 온 사람이 나그네의 형편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나그네를 접대하라 너희도 애굽에서 나그네로 살았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나 음식을 대접하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 그것도 잠깐이다. 밖에서 소란한 소리가 들린다. 

불량배들이 그 집을 포위하고 문을 두들긴다.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을 끌어내라 우리가 관계하리라 한다. 성관계를 맺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상적인 관계가 아니라 나그네로 지나가는 그 남자와 관계를 가지겠다고 한다. 소돔의 모습을 여기서도 본다. 집주인 노인이 그들에게 말한다. 내 형제들아 내가 청하노니 이런 악행을 저지르지 말라. 이 사람은 내 집에 들어온 손님이니 이런 망령된 일을 행하지 말라. 그들의 하는 일을 가하다 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자기 집에 유하러 온 사람을 보호하려는 마음이다. 주변 사정보다 주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모습을 본다.

노인이 불량배를 당할 힘이 없다. 손님을 보호하면서 자기 딸을 대신 희생하고자 한다. 그만 아니라 나그네가 함께 온 첩도 함께 제공한다. 사실 이 여인은 많은 남자를 상대한 사람이라 그런 일에 익숙한지 모른다. 그러자 레위인은 자기의 첩을 붙잡아 그들에게 내어 주었다. 어두운 밤, 자기 좋은대로 행하는 때에 비록 소수라 하여도 진리를 따라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그도 이주해 온 사람이다. 그의 주변은 모두 타락하고 범죄를 저지르며 망령된 일을 행하고 있지만 그는 정당한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우리의 사명이 여기 있다. 레위인은 자기를 보호해 주기 위하여 그 집 주인이 자기 처녀 딸을 희생하려는 것을 알고 자기 첩을 내어 놓는다.

기브아의 불량배들이 레위인의 첩을 밤새껏 능욕하였다. 이 여인은 주인이 묵는 집 앞에 왔으나 문을 열 힘이 없을 정도로 문 앞에서 기진하여 죽게 되었다. 한 여인의 운명이 이렇게 끝이 났다. 귀한 딸로 태어났으나 레위인의 첩이 되고 행음을 하다가 친정에 가서 살게 될 형편이었으나 다시 남편의 사랑을 받고 돌아가는 길에 이런 집단적인 치욕을 받은 후에 생명을 마쳤다. 참으로 애처로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레위인이 죽은 첩을 나귀에 싣고 가 그 시체를 열 두 토막에 내어 각 지파에게로 보낸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후 지금까지 없던 일이다. 없던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항할 힘이 없으니 당할 만큼 당하고는 그 시체를 조각내어 보내며 형편을 알린 것이다. 지파 사람들은 보지 못하던 일을 보자 이 일을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였다. 결국 사연을 모두 들은 후 그 행악자에게 책임을 추궁하고 처벌하기로 결정하였다. 기브아 사람이나 기브온 사람이 잘못을 인정하거나 행악자를 내어주면 좋았겠지만 그들을 옹호하며 함께 일어나 대항하는 것이다. 악을 추궁하고 책임을 물으며 형벌하는 정당한 길을 걷는 자가 있다는 것이 희망이요 빛이다. 

벤냐민 지파가 대항하여 싸우다가 모두 죽임을 당하고 도망한 600명만 남았다. 한 지파가 없어지는 지경에 빠졌다. 그러나 동맹하여 형벌한 자들이 뉘우치고 이들을 위하여 여자를 얻을 길을 제시하여 지파가 없어지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있다.

다수는 타락하고 어둠의 길을 달린다 하여도 진리와 정의를 지키는 소수가 남아 있어 이들로 역사를 이어가는 힘과 방향이 된다. 

이민으로서의 소수자, 소외와 혐오를 많이 받고 있지만 그래도 믿음과 함께 진리와 정의를 지켜 나감으로 아름다운 날을 기다린다. 사사기 다음에 나오는 룻기에서 보는 룻은 이방인이요 소수에 속한 자이지만 그를 통하여 앞으로 다윗이 나오고 예수께서 출생하는 길을 여는 조상이 일어난다. 오늘 진리를 지키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고 내다보며 믿음의 길 진리의 길 하나님께서 뜻하신 그 길을 걸어가기를 바란다.  


다양과 조화 Diversity and Unity

 다양과 조화 Diversity and Unity

각급 학교의 졸업시즌이다. 졸업(Commencement)은 끝남과 함께 시작이란 의미가 있어 한 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학교에 입학을 하거나 사회에 나가 직장을 가진다. 학교 과목에서 초등학교는 간단하지만 대학 대학원으로 가면 그 수가 점점 많아져 각자가 개성과 원하는 바를 따라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면 수 많은 종류의 많은 직장과 일 중에서 하나를 택한다. 

과목만 아니라 학생들도 다양하다. 미국 대학원에 왔더니 미국인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있다. 대만 독일 등만 아니라 트리니다드 피지 등 생소한 나라 사람도 있다. 딸이 다니던 뉴욕 고등학교의 졸업반은 102개 나라 이민자의 자녀로 되었다. 다양한 인종을 만나며 처음은 어색하고 접근이 쉽지 않았지만 함께 지나면서 점점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 입장에서 생각하고 받아주며 조화를 이루게 되니 나의 세계가 넓어지고 커지고 있었다.

학업의 졸업장은 그 학교나 미국이라는 한 제품 증서가 아니라 각자가 자기의 색깔 재능 개성을 가진 채로 전공과 기술을 발전시키고 능력을 발휘하여 각 방면에서 기여함으로 보다 좋은 세상이 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이1782년 독립의회에서 미국 상징 인장(Seal)에 E Pluribus Unum (다수에서 하나, 다양과 조화란 라틴어)을 넣기로 결정하고 1786년 처음 주화에 그 말을 넣어 지금도 사용하며 대통령 부통령 인장과 여권에도 들어가게 한 것이 이 나라의 정체성이다. 

여러 종류의 나무나 꽃들이 전체적인 아름다움을 이루는 조화는 획일이 아니다. 공산주의 전체주의는 획일지향이다. 일본이 한국을 점령한 때 첫 단계 교육기관을 국민학교라 한 것은 그들이 원하는 한 종류의 신민으로 찍어 내겠다는 것이다. 유감스럽게 미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박연미가 북한에서 13살 때 엄마와 함께 사선을 넘어 한국에 도착하여 공부하다가 큰 꿈을 가지고 미국 명문 콜럼비아 대학으로 유학하였다. 그가 폭스 뉴스와 인터뷰한 내용이 며칠 전 나왔다. 오리엔테이션에서 그가 교수에게 소설가 제인 오스틴 (대표작 오만과 편견)의 책들을 좋아한다고 하자 교수가 반응함에 놀랐다. “저자는 식민지 정신, 인종주의, 편견으로 세뇌시키는 것을 아는가?” 하며 저자를 배척하고 그 학교는 반미, 반서방선전으로 물들어 있었다. 교수들은 남녀 성별을 말하는 ‘그’, ‘그녀’를 ‘그들’로 사용하게 하여 창의적인 비평정신을 박탈하며 자기의 북한 경험을 기억시키는 것을 느꼈다. 이렇다면 미국도 북한의 운명으로 나가게 된다고 경고를 하였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인종혐오 범죄, 자기와 다른 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정서는 사회와 관계를 분열 파괴하고 있다. 어느 두 사람도 생각이나 취향이 같을 수가 없다. 서로 달라도 개성을 존중하며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건강한 조직과 사회를 만들고 적응력과 창의성으로 온 세계를 연결하게 한다. 

하나님은 남녀를 다르게 만들었으나 하나로 조화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각자가 다른 사람을 선택하여 제자로 삼고 그들이 성령과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며 인종 성별 직업 계급의 구분을 넘어 모든 사람을 만나 품고 사역하는 것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세계 모든 족속 사람에게로 보내시며 생명과 구원의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베드로를 로마 장교 고넬료 집에 보내고 안디옥의 처음 교회는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오늘 교회의 모형이 된다. 다양의 수용과 조화로 함께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 것은 바로 우리의 몫이 아니겠나!!













 


Saturday, June 12, 2021

Pride Month 자랑의 달

Pride Month 자랑의 달 (6/11/21)

바이든 대통령은 금년 6월을 동성애자 (LGBTQ+) 자랑의 달로 선포하고 그들도 미국인이 가지는 “동등 자유 정의”에 따라 살도록 그들을 인정하며 보이는 공동체로 함께 즐기고 개인은 자기의 가치와 존엄성을 축하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공포한 배경에는 동성애자들이 오래 동안 사회적으로 많은 차별과 소외, 지탄을 받고 법적으로 고용과 주택 정책 등에 평등한 대우를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반동성애법으로 탄압을 받고 있으면서도 이들이 견디며 용감하게 항거한 것을 인정한 것이라 본다. 
동성애자 스스로는 죄의식과 부끄러움이라는 사회의 낙인을 받으며 ‘숨어 사는’ 형편에서 뉴욕 맨하탄 스톤월 여관은 이들이 모이는 클럽이었다. 1968년 6월28일 뉴욕경찰이 이 여관을 급습한 것이 도화선이 되어 6일동안 동성애자들과 경찰이 대치하여 ‘스톤월 폭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다음해 이날에는 수 천명이 참가하여 스톤월에서 센트럴파크까지 행진하고 그 후 매년 이 날을 전후하여 행진하며 그들이 사회 권리를 보호받지 못한 것을 기억하는 날이라 하다가 Gay is good에서 발전하여 Gay Pride란 말을 미네소타의 Thom Higgins가 만들고 무지개 깃발은 동성애자 Harvey Milk가 최초로 샌프란시스코시 감독관으로 선출되며 제작되었다. 해마다 참가하는 나라와 숫자가 많아지고 지금은 수 백만명이 ‘벽장에서 나와’ ‘죄의식과 부끄러움’을 벗어버리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표현하며 미디어만 아니라 회사와 군대, 학교에서도 정당한 것이라 가르치고 있다. 

동성애에 대한 견해는 양분된다. 인간을 앞세우는 헬라 로마 문화의 가부장 제도에서 남자는 힘이 있고 능동적인 정복정신으로 노예 청소년 남창 등과 동성애 관계를 가지는 것이 남다른 일로 보였고 철학자 정치가 중에 동성애자가 다수 있었다. 오늘 인본적인 민주주의의 사회 정의 이름으로 자유와 권리를 주장하며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할 수 있고 존중 받아야 한다며 자기 생각이나 욕정 대로 생활하는 자의 숫자가 많아지며 오바마 대통령은 이들의 처음 뉴욕 행진 거리를 National Monument로 정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Pride Month’를 선포하였다. 
다른 면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유대 기독교 전통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둘이 합하여 한 몸을 이루도록 하여 최초의 공동체 가정을 만드셨기에 동성애를 정당한 것으로 받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증하고 심각한 죄로 말한다. 

오늘 동성애자가 어디에나 있고 크리스천의 가정도 예외가 아닌 형편에서 그리스도인은 이에 대하여 어떻게 할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묻게 된다. 
동성애의 생활 형태는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확실히 떠난 것이 분명하지만 나 자신도 여러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떠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를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나를 받아주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이 그도 용서하고 받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도 나와 같은 사람이기에 나도 그를 받아주고 사랑할 것이다. 동성애의 생활 형태를 사람이나 교훈으로 변화시킬 수 없다 하여도 예수의 복음과 성령의 능력이 새롭게 회복할 수 있음을 믿고 기도하며 그로 주와 만나는 기회를 만들도록 할 것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건강한 삶을 위하여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오염 방지 운동을 일으키고 있듯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 가정에서 먼저 이루어지도록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의 가정 형태 회복 운동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Saturday, June 5, 2021

소원의 항구 Your Desired Haven

소원의 항구 Your Desired Haven 

메모리얼데이를 맞아 초등학생에게 그 날이 무엇인가 물으니 수영장을 개장하는 날이라 한다고 힐러리 클린턴이 말하더니 금년 해리스 부통령은 긴 휴일을 즐기라는 트위터를 올리고 비평을 받았다. 메모리얼데이는 남북전쟁이 끝나자 자유를 얻은 흑인들이 1865년 5월1일 사우스 캐롤라이나 챨스턴에 모여 종전을 기념하고 노예해방을 위해 싸우다가 전사한 북군을 애도한 데서 시작되었다고 짐 다운스 교수는 말하지만 공식은 북군의 죤 로건 장군이 자유 방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묘지에 1868년 5월30일에 헌화하라고 공포하고 그 날 알링턴 묘지에 모인 5천명 앞에서 제임즈 가필드 장군이 그곳에 묻힌 2만명 전몰자를 추모하며 연설하고 헌화함으로 시작되어 매년 그날을 ‘장식일 Decoration Day’로 지키다가1971년에 5월 마지막 월요일을 국경일로 정하여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전몰한 군인들을 기억하고 있다. 미국 국시인 모든 사람의 평등과 자유는 남북전쟁을 통해 이루어지고 2009년 오바마가 흑인으로 대통령에 당선됨으로 증명되었다. ‘성조기는 자유인의 땅 용감한 자의 집 위에 펄럭이고 있다’고 미국 국가를 애창하며 많은 대가와 희생을 용감하게 치르고서야 ‘평등과 자유’라는 소원의 항구에 이르게 됨을 다짐한다. 

뉴욕 항구에 세워진 자유의 여인상 받침대에 새겨진 엠마 라자루스의 시구는 “너희 피곤하고 가난한 자들, 자유를 갈망하여 해매는 무리들, 풍성한 해안에서 버려진 쓰레기들, 집 없고 폭풍에 길 잃은 자들을 내게로 보내라. 내가 황금문 옆에서 등불을 들어 주리라”한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이 항구에 오기 위하여 거친 풍랑을 해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소원의 항구’가 되어 수많은 타국인이 찾아와 살고 있다. 자랑스런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을 바이든 대통령이 초청하여 정상회담을 하기 전 5월21일 한국전쟁에 참전 청천강 전투에서 1950년 11월205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인해전술 중공군과 사투하다가 수류탄 파편 부상을 받았지만 부대를 지휘하던 랠프 퍼킷(94) 중위 (퇴역 대령)의 용맹을 기리며 최고의 명예훈장을 수여하는 자리에 문 대통령을 외국 정상으로 처음 초대하였다. 무엇을 말하나? 친중반미하는 그에게 한미혈맹, 중국이 공동의 적이었던 것 그리고 오늘의 한국은 미국의 헌신과 희생에서 온 것을 기억시키는 것이 아니겠나?

풍랑 없이 소원의 항구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소원하던 그 항구의 고마움을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고통 없이는 얻는 것이 없다 (No pain no gain).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말이 진실임을 알게 된다. 

예수께서 한곳에서 사역하신 후 저녁이 되자 제자들에게 바다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신다. 건너 편은 휴식과 또 다른 사역이 있는 소원의 항구다. 주님은 피곤하여 깊은 잠에 빠진다. 갑자기 풍랑이 일어난다. 제자 중 여럿이 어부 출신이라 그곳 항해에는 익숙하지만 바람은 거세고 물결은 배에 가득하여 배를 삼킬 것 같다. “우리가 죽게 되었나이다”하며 주님을 깨운다. 주께서 깨어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며 “잠잠하고 고요하라” 하시니 즉시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지고 그들은 가려던 항구에 안전하게 도착하다(막4:39 시107:30). 그들은 주님이 자연도 다스리시는 창조주임을 알고 놀라며 경배하게 된다. 

우리 소원의 항구는 어디인가? 그곳에 도착하였는가? 도착했다면 어떤 경로를 겪었는가? 아직도 항해 중이라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가? 영원한 안식의 항구는 팔을 벌리고 우리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는가? 











Saturday, May 29, 2021

녹음방초 승화시 Better than the Best

녹음방초 승화시 Better than the Best 5/27/2021

5월 하순이 되자 신록이 녹음방초로 변하였다. 얼마 전 나는 봄의 꽃에 감탄을 했다. 긴 겨울이 지난 후 봄철이 오자 새싹이 돋아나고 꽃들이 피고 세상이 새로워지며 꽃처럼 아름다운 것이 있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다칠 새라 꺾일 새라 조심하였으나 꽃의 아름다움은 잠시 후에 시들어 사라지고 나무마다 잎이 피어 자라나고 무성하게 되니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 라는 옛 시인의 시구가 생각이 난다. 우거진 푸른 숲 향기로운 풀이 꽃피는 시절보다 낫다는 말이다. 이 시는 송나라의 정치가며 문인이던 왕안석이 지은 시의 한 구절이나 우리 나라에서 많이 공감하고 즐기는 구절이 되었다. 고려말기 유학자 이색이 이 구절에서 시작하여 ‘꽃을 보며’라는 시를 쓴 것에서 연유되었다고 본다. 
綠陰芳草勝花時(녹음방초승화시) 一段淸閑付與誰(일단청한부여수)
坐想病翁丸藥處(좌상병옹환약처) 滿庭微雨囀黃鸝(만정미우전황리)
푸른 잎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좋구나, 한 자락 상큼한 한가로움 누구에게 주겠는가 
병든 노인에게 줄 약을 처방한다면, 뜰에 가득한 보슬비 속 꾀꼬리 노래이리라.

녹음방초승화시가 우리 귀와 입에 익숙하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이 꽃의 화려함보다 무성한 나무와 그 그늘, 향기로운 풀을 더 높이 인정하는 데서 온 것이라 본다. 춘향전을 위시한 많은 민요에도 나오고 최근에는 한혜진의 가야금 앨범에도 이 이름이 붙었다. 나도 짙은 녹음 우거진 숲, 향긋한 내음의 풀과 더욱 친근감을 느끼고 가까이 나아가 즐기며 걷고 그 아래에 앉기도 눕기도 하며 몸과 마음에 한가로움과 휴식을 더하고 스트레스와 삶의 짐을 내린다. 봄철의 꽃이 최고라 생각하였으나 여름의 녹음은 그 보다 뛰어남을 실감한다. 

이팔청춘 젊은이는 피어나는 꽃과 같이 화사하고 향기롭다. 이 땅에 자기보다 더 아름다움이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천하에서 자기가 최고라 생각한다. 그러나 잠깐 후에 그 화려함이 지나간다. 십대가 꽃피는 시절이라면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가지는 때는 녹음방초라 할까? 부부가 사랑으로 화합하여 열심히 일을 하고 자녀들이 행복하게 자라나며 싱싱하게 뻗어가고 건강한 안정과 안식을 누린다면 바로 녹음방초승화시가 아닐까? 5월에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이 있으니 십대가 가지던 자기행복감과는 달리 가정의 풍성함을 더욱 느끼며 알게 된다. 자녀와 함께 가정에서 가지는 즐거움은 십대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떠한가? 어떤 사업가가 성공하여 원하는 집에 살고 제일 좋다는 자동차를 굴리며 그리스도인을 보니 세상에서 제일 재미 없는 사람 같았다. 술도 담배도 오락도 없이 무슨 재미로 사는가 싶었다. 그러던 그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던 새로운 차원의 세계에로 눈이 열리고  상상하지 못하던 삶의 기쁨과 행복,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였다. 그는 예수 믿기 전의 삶을 흑백이라면 그 후의 삶을 총천연색이라고 고백하였다. 
신앙의 많은 선배들은 믿음때문에 가난에 시달리고 박해를 받고 감옥에 갇히고 죽임을 당하면서도 믿음을 지키며 기뻐하고 감사하며 사랑을 나누게 되니 세상이 그들을 감당하지 못하고 오히려 변화를 받았다. 개인만 아니라 민족과 국가에도 일어난다. 세계를 제패하던 로마가 기독교를 박해하며 없애려더니 도리어 기독교 중심국가로 바뀌었고 제일이라 자랑하던 바이킹 해적 스칸디나비아 민족들이 복음을 받고 변화하여 겸손하게 사랑으로 자선하는 민족이 되었다. 이들의 화려하게 자랑하던 이전보다 변화된 이후의 짙은 아름다움에서 녹음방초승화시를 보지 않는가!     
















Thursday, May 27, 2021

생명의 길, 사망의 길 The Way of Life, The Way of Death

생명의 길, 사망의 길 The Way of Life, The Way of Death  5/27/2021

 코비드 팬데믹이 1년 이상 세계를 뒤덮고 수 백만의 생명을 앗아갔다. 가까운 사람이 신음하며 죽어가고 있는데도 가까이 갈 수가 없다. 감염되어 고생하다가 혼자 외롭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마스크를 하고 거리 두기를 지키고 손을 씻는다. 백신이 나오자 대개는 속히 접종을 하겠다고 신청하고 줄을 선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보며 누구나 생명의 길을 선택하고자 한다. 나는 죽지 않는다고 장담하거나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하며 방역 규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명의 원천인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렘21:8)을 두었다고 하며 생명의 길이 무엇인지 규정을 제시하신다. 바벨론이 그 나라를 침공하여 포위하고 있는 때 그들에게 나아가 항복하는 사람은 살 것이고 자기 성읍에 그대로 머무는 사람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리라 하신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들 대대에 주신다고 약속한 땅에 살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 땅을 지켜 주신다고 하였는데 바벨론 나라가 침공해 왔다. 그 땅을 지키며 살려는 사람은 전쟁과 기근 질병으로 죽임을 당하고 침략자에게 나아가 항복하는 사람은 생명을 얻는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인가? 

유다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길을 따라야 하는데도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좋은 대로 살고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내버려 두시니 그들은 정당한 보응 곧 생명의 길을 떠난 고난과 죽음을 당하며 원수 나라 바벨론의 침공을 받는다. 그들이 배역하여도 하나님 백성이라 사랑과 은총으로 생명의 길을 제시한다. 잘못에 대한 채찍에 순응하여 그것을 받아드리면 생명이지만 자기를 고집하여 자기 자리를 지키려고 하면 죽음 뿐이라는 것이다. 그 말씀대로 되었다. 

 세상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창조를 받은 사랑스런 존재이지만 모두가 자신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역한다. 그 결과는 심판이요 죽음이다. 하나님께서 아들 예수를 보내셨다. 하나님의 인간 세계 침공이요 포위라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셨다고 한다. 우리를 정죄하고 멸망시키려 함이 아니라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다. 나아가 그 앞에 항복하면 생명을 얻지만 자기 자리를 지킨다고 고집하면 그 때는 죽음이다. 우리의 재산 지위 명예 건강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불타서 없어지고 죽음을 당한다. 그러나 그 앞에 나아가 순응하며 그를 받아드리면 생명을 얻는다. 누구든지 저를 믿고 받아드리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가진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되고 구주 예수와 함께 영원토록 함께하며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는 영화와 축복을 누리게 된다.

Saturday, May 22, 2021

새끼 둘 보금자리 A Nest to Lay the Young

새끼 둘 보금자리 A Nest to Lay the Young 

 이사하는 계절이다. 나이 든 사람은 살던 집을 정리하고 살림을 줄이며 자녀 가까이, 편리하고 의료시설이 좋고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자녀가 있는 젊은이는 학군과 환경이 좋고 이웃 교류와 교통이 편리한 곳에서 양육과 교육에 힘을 기울인다. 부담, 고생이 되어도 자녀들이 잘 자라 뻗어 가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지만 이는 때가 있다. 새나 동물에게는 봄철이 생육하기에 좋은 계절이라 짝짓기를 하고 안전한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알을 낳아 품고 인내하며 부화한다. 

 금년 처음으로 비둘기 두 마리가 찾아와 애무하더니 집 뒷문 옆 전나무에 작은 나무가지를 물어 온다. 다람쥐가 접근 못할 안전한 곳이다. 둥지에 앉아 있는 비둘기는 사람이 드려다 보아도 날아가지 않는다. 주인이 그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는 것 같다. 알을 둘 낳고 암놈은 알을 품고 식음을 전폐하듯 성실하게 앉아 있는데 숫놈은 보이지 않는다. 알이 부화하고 날개가 뻗어 난다. 그러던 때 우박에 상한 지붕을 모두 뜯어내고 바꾸는 작업을 하는데 그 소리가 요란하고 뜯은 지붕을 아래로 던져내리나 비둘기 집은 처마 아래 있기에 안전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지붕 일이 끝나고 비둘기 집에 갔더니 지붕에서 떨어진 조각이 둥지에 떨어져 있고 두 애기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럴 수가 있나? 가슴이 철렁한다. 부모가 얼마나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울었을까? 처음으로 찾아와 안전하다 생각하고 보금자리를 만들었는데 생각하지 못한 비극과 불행이 온 것이다. 내 마음이 큰 아픔으로 책임을 통감하며 두 애기를 치우고 정리하였다. 

 일 주일이 지났을까 놀랍게도 두 마리 그 비둘기가 나타나 옛 집을 찾는다. 어느새 암놈이 앉아 있더니 지난 번처럼 두 애기를 부화하였다. 먹이를 먹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데 며칠 사이에 날개와 몸이 자란다. 애기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처다보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날개 훈련도 없이 어느 아침 한 마리가 날아가고 다음 날 남은 것이 집을 떠났다. 기뻐하고 축하하다. 같은 나무 다른 쪽에 라빈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알을 낳았다. 라빈은 경계심이 매우 많아 사람이 가까이 가면 날아가며 소리를 지르고 위협할 정도다. 먹이를 물고 와서 새끼를 먹이고 양육한다. 문 옆의 나무 위에 올려둔 작은 새집에 이름 모를 아주 작은 새가 신혼살림을 차린다. 주인 문 앞이라 다람쥐나 고양이가 침범하지 못하는 안전한 곳이다. 

금년 처음으로 토끼가 정원 나무 아래 굴을 만들어 새끼를 낳았다. 자기 털을 뽑아 새끼를 덮고 보호하였다. 어느 날 아침에 나가보니 고양이가 집을 파 해치고 모두를 물어가 버렸다. 안전한 곳이라 생각하였는데 침입자가 밤사이에 일을 저지른 것이다. 어디가 참으로 안전한 곳인가?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의 집이 새끼 둘 보금자리라 한다. 전능한 하나님 옆에 있으면 안전함을 가진다. 하나님을 대항할 자 누구인가? 어떤 위험 환난이라도 하나님 집은 자녀를 기를 보금자리다. 하나님 모신 가정, 부모와 형제가 사랑으로 화락하고 평화로울 때 자녀들은 행복하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랑과 기쁨, 화목과 자유를 누리며 믿음과 삶이 자라나 세상에 나가 활동하도록 마련한 하나님의 집이다. 교회는 새끼 둘 안전한 보금자리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