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pril 6, 2020

하나님의 슬픔과 고난 The Sorrow and Suffering of God

이사야 53:3 하나님의 슬픔과 고난 (4/7/20 KCBN은목교회 시간 방송)
인류 역사에 유례없는 일로 모두가 자가 격리 대피 상태라 이웃과 만나지도 못하고 직장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일을 하고 사업의 문을 열어도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황량한 세상이다. 어떤 청년은 바이러스 증세가 있어 홀로 자기 집에서 격리하며 앓다가 아무도 모르게 홀로 죽었다. 이 병은 병원이나 양노원에서 의료인들이 잘 보살피지지만 가족이 찾아가지도 못하다가 혼자 죽는다. 이런 형편에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의 도움이시라는 하나님은 어디 계신가? 하나님이 우리가 겪는 고난과 아픔을 아시기나 하나?

기독교에서 이번 주간을 수난주간이라 한다. 이 주간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고난 당하신 것을 기억한다. 영이라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이 고난 당하신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희랍철학에서는 사람을 육과 영으로 분리시키고 영은 움직이거나 변하지 않고 인간 형편에 따라 좌우되지 않는다고 하며 하나님은 감각이 없고 냉담하게 자신을 인간과 분리시킨다고 하며 고난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희랍철학이론이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을 그대로 경험하신다. 무슨 말인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것은 외형이 아니라 속사람이다. 생각하고 알고 느끼고 결단하고 사랑하고 슬퍼하고 고난겪는 모든 것이 하나님을 닮은 것이다. 인간은 산다는 것 자체가 고난이요 고통이다. 육체만 아니라 속속드리 우리 지정의 모든 부분으로 아픔을 느끼고 경험한다. 하나님이 느끼시고 경험하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으로 지은 것은 특별한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함이나 사람을 물건으로 만들지 않고 그가 스스로 사랑에 응하고 사랑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사랑에 사랑으로 응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 사랑의 품을 떠나게 되다. 하나님 마음이 어떠할까? 희랍철학이라면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여 인격자가 아닌 신으로 만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성경의 하나님은 인격이시라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고 마음에 근심하였다(6:6). 우리가 배반당할 때 가지는 아픔을 하나님이 가진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에집트에서 종으로 살며 많은 고역과 학대를 당하며 부르짖을 때 그것을 듣고 보고 알고 내려와 그들을 건져내어 자유로운 땅에 인도하고자 자기를 대신할 모세를 세워 그 일을 하게 하였다(3:7,8). 내가 집을 떠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동안 첫 딸이 돐도 되기 전에 폐염에 걸렸다. 시부모와 함께 지나면서 딸을 기르던 엄마가 그 아이의 아픔이 자기 아픔이라 그 아이를 업고 지역 돌팔이 의사를 찾았으나 더 악화되어 아이를 업고 뛰어 버스를 타고 경주에까지 가서 병원에 입원시키다. 병원 중환자실에서도 아이를 안고 돌본다. 엄마의 마음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다. 고난 속의 자기 백성을 보고 아파하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자기 대리자로 모세 같은 선지자를 보내고 아론 같은 제사장을 보내고 다윗 같은 왕을 세워 자기 백성을 잘 돌보아 풍성한 생명을 누리게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다.

그래도 그 백성은 하나님을 받아드리지 않고 배반하며 눈에 보이는 다른 세상 신을 따른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여 그와 후손을 자기 백성 삼은 것은 그들을 통하여 온 세상 사람이 복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와 살게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자기 백성이나 일반 사람이나 구별없이 모두가 죄라는 병으로 신음하며 고통속에 죽어간다. 하나님은 마지막 수단으로 스스로 사람이 되어 인간 세상에 오기로 작정하고 아들 예수로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와 꼭 같은 사람이지만 동시에 그는 하나님이시다. 그가 하나님이시나 그 자리를 잠시 비우고 우리 몸을 입고 우리 모양으로 오신 것이다. 왕이 왕의 자리를 비우고 평민 옷을 입고 백성 속에 뛰어든 것과 같다. 예수께서는 가난한 시골 처녀에게서 우리처럼 태어나고 자라나고 성인이 되었지만 그는 인간의 모든 고난을 다 겪었다. 배고픔 목마름 피곤하고 율법을 어긴다고 하나님 모독이란 비방받고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여 눈물 흘리고 잠못자는 일이 많았다. 그는 바다의 풍랑을 잔잔하게 하고 떡 다섯으로 5천명을 먹이는 놀라운 일을 하고 병자 맹인 귀신 들린 자 등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치유와 생명을 주었지만 그들은 결국은 죽고 만다. 인간을 영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 마음이라 근본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에 그는 매도 맞고 모든 고통을 겪다가 결국 죄인으로서 십자가란 가장 무서운 사형대에서 처형이 되었다. 하나님이 정말 이런 고난을 겪어야 하나? 그가 슬픔을 알고 우리 고통을 친히 경험한 것은 우리의 슬픔과 고통을 대신한 것이다. 그가 찔리고 상하고 징계를 받고 채찍에 맞은 것은 우리 허물과 죄를 대신한 것이요 우리의 치유와 평화를 위한 것이었다. 그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형벌을 받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병에서 우리를 완전히 치유하고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고난에 함께 하시되 우리를 대신하여 고난을 받고 우리에게 자유와 생명을 주신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까? 약을 알고 먹으면 효과를 본다. 예수님과 그가 한 일을 알고 받아드려 내것으로 삼으면 그 효과로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생명 곧 영생을 얻어 주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된다. 우리는 이런 복을 받은 사람으로서 세상에 사는 동안 고난 당하는 많은 사람, 영원한 죽음에 처한 사람들을 생명에로 인도하여야 할 것이다. 병든 사람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의료인에게 감사하지만 그들이 사람을 영생하게 하지는 못한다. 영생의 길은 오직 하나, 우리의 죄와 고통을 대신 처리하신 예수 그리스도 뿐이라 그를 인정하고 높이며 그를 전하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요 사명임을 알고 살도록 하자.

Thursday, April 2, 2020

자가 대피를 하며 In the Home Stay

자가 대피를 하며 In the Home Stay (4/2/20)

눈에 보이지도 않은 바이러스에 밀려 세계 인구 1/3, 미국인구 절반이 거리두기와 자가대피를 지속하지만 희생자는 점점 많아져 미국에서 죽는 자가 10만에서 24만에 이를 수 있다고 추산한다. 가공할 이 전쟁이 언제나 끝이 날까? 페이스북 322일자 Kasi to Kasi jokes는 지난 24시간의 경찰보고는 강도 0 범죄 0 사고 0 부부싸움 84,635라 하였다. 집이란 동굴 속에 갇혀 있어 일어나는 일이겠다. 이런 형편에 나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

성경에는 다윗이 동굴 속에 숨어 있는 때가 있었다. 그는 목동에서 일약 이스라엘 왕의 후보가 되고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전한 형들을 면회갔다가 목동의 도구 물맷돌로 적장 골리앗을 처서 넘어뜨려 죽임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여인들이 노래하자 왕은 분노와 질투로 다윗을 죽이겠다고 그를 추격하였다. 다윗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도망하고 도망하다가 굴에 숨었다.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면서 빛도 없이 답답한 동굴에서 다윗은 시편 57편을 썼다. 내용은 원수가 사자와 불꽃처럼 그를 삼키려고 그물을 치고 웅덩이를 파며 창과 칼 같은 혀와 입으로 다윗을 죽이려 한다. 다윗은 왜 이런 위기를 겪는지 하나님께 묻거나 불평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며 동굴보다 주께로 피하고 주의 날개 아래 피하며 하나님이 인자와 진리로 그를 구원할 것을 바란다. 하나님이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고 그의 영광 곧 그의 하나님 되심이 온 세계에 인정되는 것을 소원한다. 그는 마음을 확정하고 새벽부터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고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 찬송한다. 마침 그를 추격하던 사울이 용변을 보려고 그 굴에 들어오자 동료들은 원수를 제거하자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하나님이 세운 왕이라며 인위적 수단을 쓰지 않고 떨리는 마음으로 그의 옷자락 한 부분을 잘라내어 다윗이 그를 살려준 증거로만 삼았다. 다윗은 결국 이스라엘 최고의 왕이 되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에서 복음 전도하다가 잡혀 매를 맞고 사슬에 묶이어 토굴 감옥에 갇혔다. 왜 그런 고난을 받는지 묻지 않고 두 사람은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어떻게 찬양할 수 있을까? 찬양과 감사는 말씀에 근거한 순종이요, 자신의 믿음을 굳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세워주며 평화와 기쁨을 맛보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하나님인 것을 인정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옥문이 열리고 매인 것이 풀리다. 간수가 바울 앞에 엎드리고 그와 그 가족이 세례받고 주를 믿게 되었다.  

-독 두진영간의 일차세계대전(1914-18)900만 이상 병사가 전사한 참혹한 것이나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한편 참호에서 캐롤을 부르자 다른 편에서 화답되고 그날 하루 휴전하던 것이 매년 그날로 이어지다가 결국 휴전으로 끝이났다는 일화도 있다. 성경의 여호사밧왕은 3국 연합군의 침략을 받아 어찌할 줄 모르고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모든 백성을 권하여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레위인은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찬양대를 만들어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자비하심이 영원하다고 찬송하게 하였다. 찬양이 시작하자 적군들이 서로 싸워 죽임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다.
집에 갇혀 있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자유와 평안, 생명을 얻는 길을 선택하는 결단을 해야하지 않을까!

             
 다윗이 숨어 있던 아둘람 동굴                                 다윗이 잘라낸 사울의 옷자락을 보여준다

      
                참호전쟁의 일차대전                           캐롤 찬송으로 크리스마스 휴전 원수와 성탄인사

Saturday, March 28, 2020

국가적 재난과 위기에서 In the Midst of Global Disaster and Crisis

국가적 재난과 위기에서 In the Midst of Global Disaster and Crisis (3/28/20)

이스라엘 다윗의 왕정 말기에 국가적인 큰 재난이 닥쳐왔다. 3년간 기근이 계속되는 일과 역병으로 7만명이 죽는 참사였다. 기근은 큰 재난이다. 에티오피아가 하늘의 비로 농사를 짓는데 5년간 기근으로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폐위를 당하고 공산주의가 시작되었지만 3년간 기근으로 멩기스투 정권은 17년만에 무너졌다. 히스기야왕 당시 앗수르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왔지만 하룻밤 역병으로 앗수르 군대 십팔만 오천명 모두가 송장이 되었다. 기근과 경제 문제는 정권이 바뀌는 큰 문제요 역병으로 국민들이 죽어나가는 것도 국가의 패망위기다. 오늘 온 세계가 함께 직면하는 문제를 어떻게 감당할까?

재난이 어떻게 생겼나를 묻는다. 기근 가운데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자 여호와께서는 사울과 그 집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피를 흘린 것으로 인함이라 하신다. 기브온 사람은 아모리 족속으로 여호수아 앞에 항복해오자 이스라엘이 그들과 맹세하여 그들을 살리고 함께 살게하였는데 사울이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위한 열심으로 그들을 죽인 것이다(삼하21:12).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를 저버린 것과 인종주의였다.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는 대대로 지키게 되는데 사울은 자기 족속을 위한다며 그들을 죽인 것이다.
전국적인 역병은 다윗의 인구조사가 이유였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전쟁에 이기게 하고 나라를 확장하고 안정시킨 것을 알면서도 이제 자기의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가를 확인할 의도였다. 이로 인해 하나님이 제시한 세 가지 재난 중에 다윗이 군사력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택일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다윗은 가장 가벼울 것으로 알고 역병을 택하였지만 역병천사가 7만명을 죽이고 왕도 예루살렘을 향한다. 국가의 위기다.

위기와 재난에 다윗은 어떻게 응하나?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 묻는다.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 다윗은 그들의 소원대로 사울의 자손 중에서 일곱명을 그들에게 내어 주어 응당한 벌을 받게 하였더니 비가 내린다. 다윗은 죽은 자들과 사울 요나단 부자를 함께 조상 묘지에 안장하여 사울, 요나단과 맺은 약속을 지켰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어주셨다.
역병으로 사람들이 죽어나가자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거니와 이 백성은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 집을 치소서 (삼하24:17) 회개하는 기도를 하다. 다윗은 선지자 갓의 말을 따라 아라우나의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그곳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고 재앙이 그쳤다.

이런 일은 역사에 반복된다. 오늘 세계와 미국이 겪고 있는 재난 앞에 주의 종들과 국가 지도자는 깊이 생각하고 기도할 때라고 본다. 미국은 이민자로 된 나라, 이민자가 들어오는 뉴욕 항구 엘리스 섬에 항로를 밝히는 횃불을 들고 서 있는 여인은 가난하고 삶에 지쳐 해안의 쓰레기로 버려진 이들은 내게로 오라 황금문 옆에서 불을 비쳐주리라 한다. 이것이 건국자의 이념이요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사는 합중국 정신이다. 이민을 봉쇄하고 소수자를 차별하는 백인우월 주의는 건국정신도 하나님의 마음도 아니다. 한국의 현존과 발전을 스스로 이룬 것처럼 생각하고 미국은 돈과 과학 기술 무기가 미국을 위대하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나! 다윗의 대처방안을 보며 우리가 당면한 재난 앞에 모두 겸손하게 엎드릴 때가 아니겠나!


Friday, March 27, 2020

The Crown to Whom? (English)

The Crown to Whom? (3/26/20)

As in the Bible we name people with specific meanings. Calling Chun Soo or Man Bok, we expect the named to live thousand years or to be blessed with ten thousand blessings, but the name given by God fulfills its intended meaning. Abraham named by God as father of all nations has become the ancestor of Jews, Christians and Moslems in the world, Peter the Rock being the foundation faith of the church.

God, sending his son into the world, named him Jesus, Savior from sin and death. Three wise men from afar came to Jerusalem and asked for the newborn King of the Jews. Jesus, launching his ministry in Capernaum (village of comfort), visited the synagogue there to worship God. A demon-possessed man there saw him and cried, “He is the son of God” and the demon left his host. Jesus gives comfort, peace, healing and life any place and any time.
The centurion of Rome the world power in charge of executing Jesus saw him die and confessed and proclaimed, “He is the son of God indeed”. Completing his ministry and returning to God, Jesus sat on the throne, with all living creatures and elders around laying their crowns before him and praising him. His church sings praises, ‘Crown Him with Many Crowns’, ‘Crown Him, Crown Him, King of Kings’, proclaiming him as Savior King.

Now the whole world has almost stopped its function in unprecedented horror due to a novel virus. World Health Organization named it coronavirus for it looks like a ball with spikes. Corona means crown in Latin. Coronavirus can be interpreted as ‘crown to virus’. The same virus ended up as 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and MERS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 before but now it acts like a king.

The virus seems to me like a spiked mace used in medieval torture and flogging. It invades a host without any symptom and spreads to neighbors secretly, attacking the breathing organ and finally choking it to death. It spreads rapidly in secret to all continents of the world except Antarctic and to all 50 states of USA, disabling all finance, science, technology and military forces, disassembling company, factory, school, church, and public and private organizations, and distancing each other in distrust. Crying ‘coronavirus (crown to virus)’, all surrender and see it proceed.

The virus adjusts properly as a living organ. It invades in disguise and deceit, grows and kills the host. Individuals, organizations, and nations almost stop their regular activities, surrender and lay their crowns before it without resistance, opening the way for it to expand its power like king. It is what Satan does. Satan disguises itself from the beginning, deceives with lies, and separates God and man, killing and destroying man. Satan even appeared to Jesus saying “I will give you the whole world of splendor if you bow down and worship me” but Jesus commanded, “Satan, be gone! Worship and serve the Lord your God only.” Satan left him right away. Then Satan and its tool demons run away in fear and trembling even at a sight of Jesus and then are thrown in fire of hell finally. Satan dare not stand along with Lord Jesus, author of breath, vitality and abundant life.

Most of the church and Christians have crowned self and world as king. Now you see they lay their glorious crowns before the virus preceding Satan, don’t you? We will rather shout “Spiked mace to virus!” won’t we? Isn’t it time for us Christians and churches to watch and repent our self-imposed kingship contrary to our saying that Jesus is our King? Where Lord Jesus reigns as King, there comes the heaven full of life, love, freedom and peace. Won’t we start our faith reformation for life as we sing praise loudly in spirit and truth ‘Crown Jesus’?

Wednesday, March 25, 2020

왕관을 누구에게? The Crown to Whom?

왕관을 누구에게? The Crown to Whom? (3/25/20)

성경에서와 같이 우리는 이름에 의미를 부여한다. 천수, 만복이라 부르며 오래 살고 모든 복을 받아 이름대로 되기를 바라지만 하나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그대로 된다. 열국의 아버지란 이름을 받은 아브라함은 유대인, 기독교인, 회교도의 조상이 되고 반석이란 베드로는 믿음으로 교회의 초석이 되었다.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며 이름을 죄와 죽음에서 구원자, 예수라 하였다. 멀리서 찾아온 천체연구가는 그를 유대인의 왕으로 불렀다. 예수는 멸시받는 어촌 가버나움(위로의 마을)에서 사역을 시작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회당에 들어갔다. 마침 그곳에 왔던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를 보더니 하나님의 아들이라소리지르며 귀신이 떠나가다. 예수는 위로와 평안, 치유와 생명을 주신다. 이 예수를 사형집행한 세계의 권력 로마의 백부장은 마지막 그에 대하여 이 사람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다고백하고 선포하였다(15:39). 예수께서 사역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그의 보좌에 앉으니 둘러 선 생물과 장로들이 그 앞에 엎드려 머리의 면류관을 벗어 그에게 드리며 왕으로 찬양한다(4:10). 온 교회가 그를 구원자 왕으로 믿고 선포하며 면류관 벗어서 주 앞에 드리세’(25), ‘왕관 드려 왕관 드려 승리하신 주님께’(12)를 찬양한다.

지금 온 세계가 유례 없는 공포로 거의 정지상태에 빠졌다. 이상한 바이러스의 영향이다. 그것이 공에 대못이 박힌 것처럼 생겼다고 세계보건기구가 코로나바이러스라 이름하다(Covid-19). 코로나는 라틴어로 왕관(Crown)이며 코로나바이러스라 하면 왕관을 바이러스에게로 해석된다. 같은 바이러스가 이전에는 SARS (심한 호흡장애증), MERS(중동 호흡장애증)로 끝났으나 이번에는 왕노릇한다.
내가 볼 때 이 바이러스는 중세시대 고문과 매질에 사용된 철퇴 (Mace)와 같다. 이것이 들어오면 처음엔 증상 없이 숨어서 이웃으로 전달하다가 결국 호흡을 곤란하게 하고 숨통을 막는다. 은밀히 삽시간에 남극을 제외한 온 세계, 미국 50개주 전체에 퍼져 부와 과학, 기술과 무력을 손들게 하고 공장과 회사, 학교, 교회, 식당 등 모든 모임을 해체하고 격리시키며 서로에게 불신을 일으킨다. 누구나 어디서나 코로나바이러스!’라며 항복하니 진행되는 일이다.

바이러스는 생명체이기에 적응한다. 자기를 감추고 속이면서 침투하고는 퍼져가다가 숨을 끊어 죽인다. 개인이나 단체, 국가가 정상 활동을 중지하고 죽은듯 그에게 항복하고 왕관을 바치니 그는 왕이라 자처하며 마음대로 뻗어간다. 이는 바로 사탄이 하는 일이다. 사탄은 처음부터 가장하여 거짓으로 속이고 사람을 하나님과 갈라놓고 죽이고 멸망시킨다. 그는 예수에게도 나타나 내게 엎드려 경배하라 그러면 온 세상을 주겠노라했으나 주께서는 오직 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섬기라고 명하니 사탄은 떠나갔다. 그러자 사탄이나 그 졸개 귀신은 예수를 보기만해도 두려워하고 떨며 도망하다가 마지막은 불못에 던져진다. 호흡과 생기,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구주 예수와 사탄은 공존할 수가 없다.

그간 교회와 성도라도 대개 자신과 세상을 왕으로 섬겼다. 그러다 바이러스를 앞세운 사탄 앞에 우리가 자랑하던 모든 영광 왕관을 맥없이 벗어 바치고 있지 않은가! ‘철퇴를 바이러스에게!’ 힘차게 외칠 일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왕이신 주를 모시면서도 그동안 스스로 왕노릇하던 것을 회개하고 새롭게 구주 예수를 왕으로 모실 때가 되었다. 주 예수가 왕으로 다스리면 생명과 사랑, 자유와 평화가 가득한 천국이 임한다. 나와 가정, 교회가 예수께 왕관드려' 신령과 진정으로 찬양함으로 살기 위한 신앙개혁을 일으켜야 하지 않을까!

Friday, March 20, 2020

고난과 단련 Adversity and Training

고난과 단련 Adversity and Training (3/18/20)
은퇴 후 미네소타에서 목사 없는 교회의 임시목회를 할 때 교회에 나오지 않은 사람의 장례식 집례를 부탁받았다. 카작스탄의 고려인으로 미국에 와 살다가 세상을 떠난 블라디미르 김씨의 장례식이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는 눈물겨운 우리 조국의 이야기였다. 조선의 가난과 기근을 벗어나고자 만주와 북간도, 연해주로 옮겨간 이들이 많았다. 열심히 살고 있는데 스탈린 정책으로 연해주에 살던 고려인 20만명 가량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할 때 고인은 네 살 아이로 끌려가며 부모를 잃고 기차 짐칸에 던져졌다. 황량한 들판에 내버려진 사람들 중에서 이 아이는 마침 삼촌의 손길을 만나 거둠을 받았다. 맨손으로 땅을 일구고 생존해야 하는 그들의 새로운 운명이 시작되었다. 미국같이 풍요한 나라에서도 이민 일세가 밤낮으로 온갖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그들의 삶이 어떠하였을까! 고난 속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은 꿈의 힘으로 일어나 뻗어가고 가정을 이루며 자녀를 길렀다. 이들 중 고인의 딸 하나가 1976, 80년 올림픽 체조종목에서 금메달 다섯을 차지한 소련 대표선수 넬리김이었다. 고난을 통하여 강인하게 훈련된 결과를 안았다. 그 후 넬리는 국제 체조연맹 이사가 되어 1996년 미국으로 오고 부모와 가족을 초청한 것이다.
우리 민족처럼 강인한 민족도 드물다. 먹을 것이 없는 가난만 아니라 외국의 침략을 받으며 모든 것을 빼앗기는 가운데도 연단과 인내로 살아남아 오늘같이 자랑스런 한국을 만든 것이다. 미국 이민역사에도 한인처럼 단시일에 일어난 민족이 일찍 없었다고 한다. 어떤 형편에나 굴하지 않고 이기고 일어나 밀고나가는 끈질긴 면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고난 속에 단련되고 이로 인하여 역경에 대한 면역이 강해진 것이라 본다.
삶자체가 전쟁이라 항상 생사의 위험을 안고 산다. 우리 몸과 건강을 위협하는 병균과 질병이 너무나 많다. 이상한 코로나바이러스로 세계가 마비되고 감염과 죽음의 두려움이 삶을 누르고 있지만 면역이 강한 젊은이들은 설령 감염이 되어도 별 증상 없이 잘 감당하고 이겨낸다고 한다. 음식이나 운동이 면역 향상에 도움되지만 고난과 단련으로 속에서 생성되는 힘은 더 크다. 노숙자 사역자는 노숙자들은 면역이 강하여 감기나 병에 잘 걸리지 않지만 일단 걸리면 감당하기 어렵다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데 조그만 나라로서 역사상 어떤 나라보다도 고난을 많이 겪고 나라 이름이 없어지기도 했다. 하나님이 과연 계신가? 계신다면 그들에게 왜 그런 고난이 일어나나? 하나님은 그만큼 힘이 없는 분인가? 이런 질문은 성경에나 지금에나 계속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외국의 침략과 점령으로 나라를 잃고 포로로 잡혀가 세상에 흩어지고 사는 곳에서 멸시와 천대, 학살까지 당하였다. 그러나 그 민족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아 일어날 뿐 아니라 옛 조국땅에 나라를 회복하고 현재 경제 과학 언론 등 각방면에서 온 세계와 미국에 뛰어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잘 산다는데 왜 이런 고난을 겪는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 길을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에 좋은대로 살아간 결과이지만 하나님은 죽음같은 고난으로 이들을 단련하신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우리는 함께 겪는 어려움 속에서도 훈련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된다.

Thursday, March 12, 2020

알자 힘써 알자 Know, Press on to Know

알자 힘써 알자 Know Press on to Know (3/12/20)

셀폰은 우리 삶에 필수가 되어 있다. 전화만 주고 받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이메일, 화상대화, 사진, 비데오, 음악, 영화, 정보 등 과거에 상상하지 못하던 많은 것을 언제 어디서나 즐기고 있다. 사진을 찍으면 그것을 용도별로 분류하여 앨범이나 책을 만들고 행사별 연도별 슬라이드 등으로 유용하게 활용한다. 알지 못하면 무용이기에 계속하여  힘써 배우고 익힌다.
세계를 위협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도 지금 연구하는 개인과 기관이 많다. 그것이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자 재정을 투자하고 힘써 연구하고 있기에 멀지 않아 그 정체가 들어나면 접종 예방도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그 때가 오기 전에 수 많은 사람이 감염되어 죽고 있는 현실이기에 감염되지 않도록 나라나 개인이나 접촉을 제한하여 격리하고 손을 씻어도 잘 씻어야 하는 지침이 나와 있기에 잘 따르면 어느 정도 안전할 수가 있다.
이민자로 이 땅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살기 위하여는 배울 것이 전부다. 평생을 살아도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지금도 힘써 배우며 알아가고 있다. 모르면 당장 손해를 보기도 하지만 이 나라의 사회 경제 문화 자연의 다양한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 아는 것은 생존, 잘 사는 힘이 된다.
성경에서 구원 의미의 이름 호세아 선지자는 그 백성이 지식이 없어 망하고 있다며 알자, 힘써 알자고 한다. 알면 구원과 생명을 얻는다는 것이다. 열심히 탐구하고 애써 알면 삶의 유익과 편리함을 즐길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학생이 대학에 진학하고자 열심히 애써 공부하면 원하는 학교에 들어갈 수도 있다. 원하는 학교에 들어가면 의욕과 동기가 생기고  사회 위치와 장래에 도움과 유익을 얻을 수는 있으나 그것이 정말 원하는 구원과 생명을 약속하는 것은 아니다.
호세아는 구원과 생명을 위하여 여호와를 알자고 한다. 여호와는 영원히 스스로 계신 창조자로 생명의 근원이며 생명의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는 하나님, 오늘 그리스도인이 믿는 예수, 구원자로 오신 하나님이다. 그를 알되 무엇보다 앞서 힘써 아는 것이 구원과 삶의 길이요 한 평생 잠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식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을 알면 그것을 섭취하듯이 생명을 누림에는 생명 원천 소유임을 알게 되면 그를 받아드린다. 여호와를 어떻게 아나?
어떤 것을 알려면 매뉴얼을 본다. 하나님 자신과 생명의 길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성경이다.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에 그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을 힘써 알아야 한다. 또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면 성경에서 아는 하나님을 경험으로 더욱 확인한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친구 관계를 맺음으로 그를 알렸다. 그를 알고 받아드려 그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의 생명 사랑 능력 평안을 경험한다.
때로 우리는 눈으로 하나님을 보고 싶으나 너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내 등을 볼 것이라하신다. 앞에서가 아니라 그가 지난 자취를 보라는 말이다. 내 삶과 역사에 그가 지나간 자리는 내가 그를 확실하게 알고 믿음으로 생명과 구원을 얻는 길을 열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