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17, 2017

막힌 담을 허시고 Breaking Down the Dividing Wall

에베소2:14-18 막힌 담을 허시고 breaking down the dividing wall
우리를 제일 어렵게 하는 것이 무엇? 재정, 학업, 직장, 건강 등 여러 문제가 있겠으나 가장 어려운 것은 잘 지나던 관계가 막히는 것이다. 피의 흐름이 막히면 병이 생긴다. 담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삶에 보는 담을 생각해보자. 이전 한국에서 집에 높은 담이 있고 담 위에 철조망을 두었다. 도둑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교도소의 담이 높다. 죄수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중국의 만리 장성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건설, 동독과 서독 중간에 막았던 담, 남과 북의 휴전선 철조망. 안과 밖, 이쪽 저쪽을 구분하고 자유롭게 내왕하지 못하고  서로 갈등 대립되고 있다. 인종과 종족간, 가진 자 못가진 자, 남과 여 등 많은 계층간의 갈등이 있다. 미국에도 50년전만 해도 흑백 사이에 높은 담이 있었다. 특히 오늘 성경에서 보는대로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에 높은 담이 있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으로 율법을 지키며 할례를 행하는 언약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비 유대인을 이방인이라 하며 멸시하다. 유대인이 자기 나라를 떠나 갔다가 돌아오면 자기 땅에 들어가기 전에 발의 먼지를 떨고 들어간다. 이방의 먼지로 자기 땅을 더럽히지 않기 위함이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성전에도 담이 있다. 성전은 성소와 지성소 그리고 마당으로 되어 있고 주위에 벽이 있다. 그 전체를 성전이라 한다. 성전에 들어가면 먼저 이방인의 뜰, 그리고 이스라엘 여인의 뜰, 이스라엘 남자의 뜰 제사장의 뜰이 있고 맨 가운데 지성소에는 오직 대제사장 일년에 일차 들어간다. 이방인이 유대교로 개종한다고 하여도 그들이 예배를 위하여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이방인의 뜰이다. 고고학 발굴에 의하면 이방인의 뜰과 여인의 뜰 사이에 높이 넉자가 되는 담이 있는데 거기 문구를 써 붙여 두었다. 이방인이 이 벽을 넘어 서다가 죽임을 당하는 것은 자기 책임이다라는 것이다. 중간에 막힌 담을 넘어서는 것은 전쟁과 죽음을 의미한다.
1  왜 이런 담이 있나? 이기적인 욕심, 불신과 교만으로 생기다. 이것은 인간 시초로 돌아간다. 에덴동산은 평화의 동산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고 서로 친밀한 관계로 사랑을 나눈다. 평화와 질서가 있다. 그러다가 그것이 깨어지다. 인간에게 금지된 선악과를 먹음으로 깨어지다. 왜 그것을 먹나? 그것 먹으면 그가 하나님처럼 된다 하는 사탄의 말을 믿은 것이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마음이 생기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겠다 생각으로 먹은 것이다. 자기 욕심과 교만의 발로다. 그러자 하나님이 두려워 숨게 되었다. 스스로 하나님을 피하여 담을 만들었다. 하나님이 그를 찾아 연유를 묻다. 왜 내게 하와를 만들어 주었나? 그가 주어 먹었다고 핑계한다. 내 살중의 살이요 뼈중의 뼈라며 하나 되어 살던 그가 하와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를 비난한다. 하나님께서 이들이 생명나무에 접근 하지 못하게 불칼을 세우고 그들을 그 동산 에서 쫓아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넘어가지 못할 담이 생기다.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에는 더욱 갈등이 심화된다.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고 아벨의 제물은 받았다. 가인의 안색이 변하다. 왜 내 제물은 받지 않아? 그 이유를 생각하고 고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동생이 미워 그를 죽이게 되다. 이 인간 갈등이 연속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원수가 되니 사람간에도 원수가 되어 서로 갈등하고 싸움을 한다. 노르웨이 한림학회 전회장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주전 3600년 이래 오직 292년의 평화가 있었는가 하면 14351회의 전쟁으로 364천만 이 죽임을 당하고 재산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이 중 많은 전쟁이 평화를 위한 전쟁이라 한다. 주전 1500에서 1865년까지 평화조약이 8천 이상 체결이 되었으나 각각 유효기간은 2년미만이라 한다. 사람은 평화를 추구하나 전쟁은 계속된다. CNN테레비 창설자 Ted Turner가 아틀란타에서 세계 뉴스 보도자들을 위한 회합에서 세계 평화와 환경 조화의 비전을 위한 글을 시상 모집하다. 그가 1만건 이상 아이디어를 받고 검토한 결과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적절한 내용을 만나지 못하였다. 적절한 안이 없으면 평화를 세우는 전망은 어둡다고 하였다. 그는 기독교를 조소하고 기독교 진리가 현대에 맞지 않은다고 비난하는 사람이다. 그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화를 알지 못하고 더욱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있은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2  오늘 본문의 에베소 교회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은 이전에 서로 경멸 비난하고 살던 형편이나 지금은 한 가족 공동체 교회를 이루고 있다. 어떻게? 예수가 우리의 평화라 한다. 9:6 한 아이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이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하다. 이 아들 예수께서 평화의 왕으로 오시다. 그는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무너뜨리는 일을 하셨다. 1) 이제 본대로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 막고 있는 담은 바로 불순종이요 죄다. 59:2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제사 제도를 설정하여 주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죄를 지은 자가 죽어야 하기에 그를 대신하여 짐승을 죽여 희생하는 것이다. 짐승이 죽어 사람의 죄가 용서됨은 상징적인 의미는 되지만 짐승과 사람이 같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다. 죄인의 완전한 용서와 회복을 위해서는 죄 없는 인간이 대신하여야 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이 아들 예수를 보내신 것이다. 그는 인간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담을 흘어버리고 사람이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그는 중보자요 또 제사장이 되시다.
Don Richardson선교사가 파푸아 뉴기니에 가서 사역을 하는데 많은 부족이 서로 싸우고 불화하고 있어 복음을 전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그러는 중 그들의 한 가지 관습을 보게 되었다. 부족끼리 계속 갈등하고 전쟁 하다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를 원하면 한 부족의 추장이 자기 아들을 상대편 부족 추장에게 보내는 것이다. 상대편 추장이 그 아들을 받아주고 평안이 돌려 보내면 평화 협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 복음을 전하며 그들을 주께로 인도하였다. 아들을 희생할 각오로 원수 부족에게 보내는 것이다. 예수께서 오시되 율법을 따라 인간 죄의 형벌을 대신 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을 완성하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담을 헐고 사람이 하나님께 나가는 길을 열어주셨다.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그를 받아드리는 자는 평화를 가진다.
오래 전 영국 왕궁 앞에 어떤 소년이 나타나다. 왕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보초가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하루 종일 있어도 왕을 볼 길이 없다. 다음 날 다시 온다. 안에서 한 젊은이 나오더니 보초를 제치고 그 소년을 데리고 들어간다. 왕궁을 여기 저기 구경시킨다. 그리고 왕 앞으로 가서 아버지 제 친구 빌입니다 하였다. 아들이 나와 친구를 데리고 가면 아버지 왕을 만날 수 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이다. 담을 헐어버린 것만 아니라 우리로 하나님을 만나고 친근한 관계를 맺도록 하신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실 때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있던 휘장이 찢어지다. 곧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담이 무너지다. 우리가 우리 죄를 인정하고 예수께서 나를 대신하여 하신 일을 믿음으로 아버지께 돌아오면 하나님이 받아주시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한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받아 먼 나라로 가서 다 탕진해 버리다. 먹을 것이 없어 남의 집 돼지를 치는 일을 하지만 배가 고파 돼지가 먹는 것을 먹을 정도였다. 그때 생각이 난다. 내 아버지 집에는 품군들도 배부르게 먹는데! 내가 돌아가서 아들의 자격이 없으니 나를 품군으로 써 달라고 해야겠다.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아버지가 멀리서 보고 뛰어 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춘다. 좋은 옷을 입히고 살진 소를 잡아 이웃을 불러 모으고 잔치한다. 이 내 아들은 잃었다가 다시 찾았다. 하나님의 기쁨이 넘친다.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주께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뛰어나와 우리를 맞아주시는 것을 생각하며 감사하자.

2) 예수께서 하신 일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막힌 담을 허는 것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도 헐어주시는 일을 하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사람은 유대인만 아니라 이방인 누구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된다. 그도 하나님의 자녀요 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의 가족 그리스도의 공동체 교회의 한 가족이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이 무너진 것이다. 예수께서 유대인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한 평화로 오셨다. 그는 유대인으로부터 멸시 받는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고 개처럼 취급하는 사마리아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이방 지역 두로와 시돈으로 가서 사역을 한다. 죄인으로 멸시당하는 세리를 제자로 삼고 세리 집에 가서 함께 식사하고 잔치한다. 병들고 추한 나환자 중풍병자를 치료하신다. 여자와 어린아이를 세워주신다. 사회 계층간의 모든 담이 무너지는 것이다. 한 장 밖에 안되는 빌레몬서는 참으로 아름다운 내용이다. 빌레몬에게 종 오네시모가 있다. 오네시모가 주인의 물건을 훔치고 도망을 하여 로마에까지 가서 바울을 만나다. 그는 바울을 통하여 예수를 믿게 되고 바울의 심복이 되었다. 그가 빌레몬의 종인 것을 알고는 그를 돌려 보내며 그를 종으로 대하지 말고 주 안에서 형제로 대하라고 한다. 주 안에서는 종이나 주인이나 함께 형제가 된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 시카고 매코믹 신학교 출신 무어 선교사가 1892년 한국에 도착하여 주로 천민을 상대로 사역, 을지로의 곤당골 교회, 마포의 동막교회 설립 주로 천민들이 모이니 계급 철폐라는 소식을 들은 자들이 모이다. 그러다 계급을 넘어서는 교회라는 의미로 승동 교회를 설립하고 나중에는 백정 출신 박성춘이 장로가 되기까지 하였다. 물론 양반의 반발이 있기도 하였으나 무어 선교사의 사역으로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는 꼭 같이 존귀함을 일찍부터 알게 되었다. 우리이민 교회는 정말 다양한 계층이 모두 함께 모여 한 공동체를 이룬다. 사람과 계급 사이의 모든 담이 무너지고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한다. 독일이 1949년 분단되고 베르린이 동서로 나뉘었다 동쪽에서 자유진영 서쪽으로 사람들이 넘어가자 1952년 경계선을 봉쇄하고 넘어가지 못하게 하다. 그래도 넘어가니 1961년 벽을 쌓다. 1949-61년까지 250만이 동독을 탈출하다. 1987년 동독 정부가 여행 금지 조항 철폐하고 겱국 담을 헐었다. 사람들이 춤을 추고 즐거워하던 것을 기억한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에집트에 팔려가다. 하나님의 인도로 당시 세계 최강 나라의 총리가 되다. 풍년 흉년 관리를 잘 하였다. 형들이 양식을 구하러 온 것을 알다. 자기를 아리고 온 가족이 이거해 오게 하였다. 아버지가 죽자 형들은 동생이 복수할 것을 두려워 하다. 동생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하나님이 자기들을 살리기 위해 하신 일이라며 받아주고 그 자녀들을 돌보겠다고 한다. 얼마나 큰 감격인가! 담이 무너지는 것을 확인함은 기쁨이요 감사다.


3 예수께서는 평화의 왕으로 오시어 평화를 이룩하시면서 또한 평화를 전하는 일을 하시다. 예수께서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하나님께 영광이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에게 평화라 하였다. 이 평화는 하나님과의 평화, 다른 사람과의 평화도 되지만 우리가 가지는 우리 자신의 냇적 평화도 된다. 내가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않다고 하시며 평화를 전하시다. 주를 모신 사람은 마음에 평화를 가진다. 이해를 초월하는 평화를 가진다.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과 하나 되니 마음에 평안이 일어난다. 마음이 평안하니 이웃을 받아주고 하나가 되는 길이 열린다. 주의 평화는 환경을 넘어선다. 환경이 변하여 마음에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이라도 주 안에서 평화를 가지니 환경에 변화가 오는 것을 본다. 어제 만난 박혜연에게 일어난 일이다. 불교 가정 출신으로 유학 와서 한국 음식을 먹고자 교회에 왔으나 집안과 개인의 어려운 문제를 가지고 기도했으나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기독교의 하나님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던 중 지난 사순절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면서 삶이 새로워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다. 환경은 그대로인데 마음이 평안해지자 점점 환경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예수 외에 참 평화의 길이 없음을 알게 된다. 성령이 주시는 평화다. 이 평화는 샬롬, 전쟁과 갈등이 없는 것도 되지만 그 보다 우리가 참 삶을 누릴 수 있는 안정과 온전함, 인간의 인간 됨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만들고 에덴동산에서 누리던 그 온전한 평화다. 주 안에서 이것이 이루어진다. 세상 어디에서 무엇으로 참 평화를 얻을 수 없다. 어느 사람이 의사를 만나 당뇨병 진단을 받다. 인슈린 처방을 하면서 그것 사용하면 고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상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환자는 그것 아니라 아스피린이나 항생제를 사용하겠다고 한다. 인슈린만 도움이 된다고 하면 왜 그리 마음이 좁은가 할 수 있나? 그 약 뿐이다. 예수 외에는 중간에 막힌 담을 헐 수가 없고 참 평화를 가질 수가 없다고 하면 왜 그렇게 좁은 생각인가 하는 자가 있다. 그러나 길은 그 하나 뿐이다. 그러기에 평화의 왕, 원수로 막힌 담을 헐고 하나로 화해하게 하신 주 예수를 받아드리고 그를 나누고 전하는 일을 하여야 할 것이다. 갈등과 반목이 많고 담과 간격이 많은 세상이다. 참 평화와 화해를 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한다. 우리 속에 주를 모시고 그 주님을 나눌 때에 참 평화가 일어난다. 먼저 내 속에 평화가 일어나고 이로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그리고 나와 이웃 사이에 참된 평화의 축복을 누릴 수 있다.

동영상은 kpc,.org

I Speak What I Hear 들은 것을 말하노라

요한복음 8:25-30 들은 것을 말하노라 I Speak what I hear (12/3/17 주일) 이종형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은 셀폰을 점검하여 카톡, 텍스트, 어떤 이메일이 왔는가 본다. 누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보는 것이다. 식당에 가도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심지어 예배에 참석하면서도 셀폰을 켜 둔다. 누가 무슨 말을 하나? 어떤 일이 있나?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사람은 듣는다. 듣는 것에 따라 생각이 정해지고 그에 따라 행동을 하게 되고 나아가 인격이 형성되기도 한다. 엄마가 아들에게 얘 너는 참으로 귀한 내 아들이야 하나님이 어떻게 너같이 귀한 아들을 우리 집에 주셨는지 네가 있는 우리 집은 정말 복을 받았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들으면 아들이 어떻게 될까? 아주 밝고 자존감이 생기고 삶의 기쁨을 가질 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얘 그것도 몰라 바보 같이. 정말 바보로구나. 너 같은 바보가 태어난 것이 슬픈 일이다. 잘 해 보아라. 이런 말을 계속 들으면 어떻게 될까?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바보라 생각이 되고 삶의 의욕을 다 잊어버린다.
동시에 우리는 듣는 것을 선택 한다. 어떤 것은 듣고 어떤 것은 듣지 않은다. 귀에 헤드셋을 하여 무엇인가 듣는다. 이런 경우는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다른 것에는 귀를 막고 있다. 헤드셋을 하지 않아도 거의 모든 사람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을 듣고 듣고 싶지 않은 것은 듣지 않는다. 아무리 말이 많아도 듣지 않으면 그 말하는 자와는 아무 상관을 맺지 않고 지난다. 정말 들어야 할 말은 생명과 평안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듣지만 또한 말한다. 무엇을 말하나? 우리 생각에 있는 것을 말한다. 많은 경우 우리 생각은 우리 스스로 하는 것보다 남의 말을 듣고 읽은데서 형성이 된다. 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전달하든지 아니면 내것으로 만들어 말을 한다. 설교는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어떤 의미인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했나? 하나님이 지금 주시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설교를 작성한다.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알 수가 있다. 말은 그 사람을 나타낸다. 말을 잘 하고 유익한 말을 하면 사람들이 그 말을 듣고자 모인다.

네가 누구냐?
예수께서 말씀으로 지도하고 기적을 베푸시니 사람들은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고자 모여들다. 유대인들이 네가 누구냐? 질문한다. 나는 처음부터 너희에게 말하여 온 자다. 내가 말하는 것을 보면 나를 알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그분이 내게 하시는 말씀이다. 나는 스스로 말하거나 행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치고 말씀하신 것을 한다고 하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것을 그대로 말씀한다고 하신다. 하나님 아버지가 참 되시기에 그의 말도 참된 진리임을 말씀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하나님 대변인이요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알리는 분이다. 처음부터 자기는 그런 사람이라고 한다.
하나님 대신 말하는 자는 선지자다. 하나님은 백성이 들어야 할 말씀을 하신다. 죄인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를 두려워한다. 모세 때 하나님이 불가운데 나타나 말씀하자 백성들은 두려워 하다. 18:16 내가 다시는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 하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말이 맞다. 내가 그들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고 내 말을 그 입에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말하리라 (18:18). 하나님은 모세 뒤에 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운다고 하시다. 사람은 이 선지자를 기다린다. 세례 요한에게 당신이 그 선지자인가? 아니라 한다.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에게 성경에 말한 그 분을 만났다고 한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를 선지자라 하였다. 52어로 5천명을 먹이자 예수는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 (6:14).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 받지 못한다(6:4)고 자기가 선지자임을 말씀한다.

1)선지자는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알린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면서도 사랑이라 백성이 죄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와 생명을 얻고 살도록 하신다. 그의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돌아오라고 한다. 선악과를 먹고 숲에 숨어 있는 아담에게 하나님이 나타나 네가 어디 있나? 물은 것은 그의 잘못을 알고 돌아오라고 함이다.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진홍같이 붉어도 양털처럼 되리라. 돌아오라 (1:18) 하나님이 요나를 악한 백성 니느웨에 보내다. 40일이 지나면 망할 것이라고 전하다. 모든 백성과 왕, 그리고 동물까지도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다. 하나님이 그들을 용서하였다. 예수께서 외치신 첫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자기를 알고 돌이켜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시다.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싫어하고 오히려 자기 죄가 들어나는 것 싫어하고 선지자 박해한다.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하던 사울을 주께서 만나시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나? 뉘신가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사울은 거꾸러지다. 변하여 새 사람이 되다. 어둠의 눈이 열려 빛 가운데 주님을 보고 주를 전하게 되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 하여 복음을 전하다. 어떻게 하면 구원 얻겠나? 회개하고 주 예수 믿으라 3천명이 세례 받고 초대 교회를 이루었다 (2:38).
우리가 사는 미네소다 개척자는 스칸디나비아 바이킹 후예들이다. 바이킹은 해적이었다. 침략 공격 죽이고 약탈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복음을 받다. 변화가 되다.새로운 사람 새로운 민족이 되다.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되다. 한국 전쟁으로 폐허가 되고 병원 시설이 부족한 때 서울에 메디컬 센터를 만들어 병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다. 한국 지도자 양성 위해 교육이 필요한 때 미네소타 대학이 문을 열고 한국 학생을 받아주어 지도자 양성을 도왔다. 세계의 많은 난민, 라오스 월남 아프리카인들을 받아주고 고아를 받아주어 살게 한다. 이렇게 변화가 오니 바이킹의 후예 나라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되다.

2)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받아 말한다. 현재와 미래에 일어날 중요한 일을 말한다. 예언이라는 말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니 예언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가슴에 예치하고 그 말씀을 하기에 예언이다. 앞으로 될 일을 선지자는 말씀하신다. 29:11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는 것이라 예언은 소망을 준다. 하나님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주신다. 소망으로 기다린다. 예수께서 예루살렘 들어가 잡혀 죽을 것이나 3일에 부활할 것이라고 여러번 말씀하시다. 제자가 믿지 못하다. 너희가 인자를 든 후에 내가 그인 줄을 알 것이다. 든다 들린다는 것은 십자가에 달린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달릴뿐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는 것을 보면서 그가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지니 그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의 말씀은 확실하게 이루어짐을 알게 된다. 성령이 임할 것을 말씀한대로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고 제자들이 모두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다. 예루살렘이 멸망당할 것을 말씀, 아무도 믿지 못하다 그러나 40년 후에 로마의 디도 대장이 공격하여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그 후 성전도 성도 재건되지 못하고 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집을 준비하시고 우리를 데려가기 위하여 다시 오신다고 하시다. 주의 말씀은 모두 이루어진다.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이라 한다.
동시에 주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리가 숨기지 못할 것이라 그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라 (5:16) 이 말씀을 미국을 개척한 청교도들이 받아드리다. 온 세상에 빛을 비치는 역할 하고자 세계 선교사를 파송하여 복음을 전하고 학교를 세워 교육하고 병원을 지어 치유하고 고아를 돌보는 긍휼 사역 지역 사회 개발하는 주님의 일을 하다. 세계를 인도하는 나라가 되니 하나님이 축복하여 그 일을 할 수 있게 하다. 주께서 세상의 빛이시다. 주님을 받으면 사람이 어둠에 다니지 않고 빛 가운데 자기를 보고 아름다움을 보며 깨어난다.

3)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 생명을 일으키고 번성하게 한다. 병든 자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게 한다. 풍랑을 잔잔하게 한다.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말씀이 임할 때 일어나는 일이다. 38년된 병자, 회당장의 죽은 딸이라도 주의 말씀 들으니 일어나다. 흉악한 귀신이 들린 사람도 치유가 된다. 주께서 생명을 주시되 풍성한 생명을 주신다.
주의 말씀은 힘이 있다. 개인이나 나라를 새롭게 한다. 살아난다. 우리 한국은 근대의 기적이다. 이차대전 후 해방된 나라 가운데 유일하게 경제나 정치에서 발전한 나라다. 우리 민족이 부지런하고 똑똑해서일 수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의 역사라 본다. 한국에 선교사가 들어오기 전 한국은 은둔 쇄국의 나라였다. 우리 선배가 책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다. 정치적으로 남인들이 모여 중국서 가지고 온 책을 공부하며 마태오리치의 천주실의를 접하다. 천주실의는 하나님의 교리다. 알기 어려워 이승훈을 동지사에 따라 보내 그 내용을 배워오라고 하다. 그가 말씀을 배우고 세례를 받아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어 돌아와 한국 캐톨릭의 시작을 하다. 개신교도 마찬가지다. 의주 상인들이 일년 두 차례 중국에 가서 장사를 하다가 영국서 온 로스 선교사를 만나 말씀을 배우고 세례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다. 이들은 누가복음을 우리 말로 번역하다. 서상윤은 이 번역한 성경책을 지고 돌아오다가 세관에 뺏기게 되었지만 그래도 몇 권을 숨겨 와서 의주에서 전하다가 반대를 받자 고향 황해도 장연 솔래 마을에 가서 전도하고 선교사가 오기도 전에 처음 예배당을 지었다. 이수정은 일본에 가서 복음을 받고 한문 으로 된 마가복음을 우리 말로 토를 달아 번역을 하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일본을 통해 한국에 올 때 이 번역된 마가복음을 들고 오다. 선교사가 오기 전에 이미 성경이 번역 되어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한국 선교사들은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살도록 지도 하다. 그 말씀에 근거하여 기도하고 도우며 신앙생활하니 하나님이 한국 교회를 축복 하고 한국을 축복하다. 우리만 잘 살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선교를 하자고 하여 세계 170 여 나라에 27천명 정도의 선교사를 파송하다. 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나 교인수에 비하면 최다 선교사를 보내다. 말씀을 받으면 개인이 새로워지고 가정과 나라가 새로워진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이 곧 영이요 생명이라 (6:63)


4)선지자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하나님의 사람이라 하나님이 버리지 않고 책임지고 돌 보신다. 선지자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순종하고 산다. 가라면 가고 말하라면 말한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선지자로 하나님의 위대함을 나타내었으나 악한 왕후 이세벨이 그를 대적하여 죽이겠다고 한다. 그는 피해 도망하며 탈진하고 쓰러져 차라리 죽고 싶어 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버려두지 않고 그와 같이 하여 힘을 주고 일으켜 남은 일을 할 수 있게 하신다. 마지막 그를 회리 바람으로 주 앞으로 데리고 가시다. 예수께서 아버지 말씀을 순종하고 듣다. 십자가를 지고 죽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버지 뜻에 순종하여 자기를 내어드리다. 이렇게 순종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하니 하나님이 그를 버려두지 않고 항상 능력으로 같이 하시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 그것을 말씀한다고 하시다. 자기를 나타내지 않고 아버지를 높이다. 하나님이 그를 높이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주시고 우리의 주와 세상의 주가 되시다. 그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씀한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고 하신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 내가 함께 한다 하신다. 어떤 말을 듣기 원하나? 어떤 말을 하기 원하나? 우리가 받은 주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다. 주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우리 자녀들이 먼저 부모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하루 일을 하면서도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을 받음으로 내 삶의 기쁨과 안식 생명과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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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esday, November 28, 2017

가장 큰 감사 The Greatest Gratitude

로마서 6:17-23 가장 큰 감사 the greatest gratitude  이종형 

감사절을 지나면서 무엇을 감사하였나? 가족이 함께 모인 것, 서로 사랑하는 것, 음식이 풍부한 것, 지난 1년간 건강과 함께 직장 사업 학업이 은혜로 지난 것,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것은 매우 상대적이기도 하다. 집도 가족도 친구가 없어 이런 때 외로움과 아픔으로 우울에 빠지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도 많이 있다. 가정이 행복을 누리지만 뜻하지 않은 슬픔과 아픔을 당한다. 음식이 풍부하고 맛이 좋지만 입맛을 잃어버리면 음식이 반가운 것이 아니다. 또 풍부한 세상에서 먹을 것이 없어 하루 한끼로 겨우 사는 자들도 많다. 결혼에 행복을 누리며 감사하나 결혼 생활 어려워 고통을 겪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교회 생활이 감사하나 또 교회 생활로 인해 상처 받는 경우도 많은 것을 본다.
우리 이민이 한 세대 전과 지금은 아주 다르다. 한국이 가난한 때 미국의 꿈을 가지고 잘 살려고 와서 밤낮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하여 집이나 자녀 교육 등은 안정되었지만 직장에서의 진급이 잘 되지 않고 어려움 겪으면서 역이민으로 한국에 돌아간 자도 많다.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제대로 인정 받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남편은 돌아가기 원하나 대개의 부인들이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기가 자유롭다는 것이다. 한국에 가면 옷 자동차 집 등 생활하는 것에 눈치를 많이 보게 되고 자유가 없다고 한다. 여자가 남자보다 일을 더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여기가 좋은 것은 자유다. 자유는 무엇보다 귀하다. 미국이 영국의 식민지로 있을 때 1775 3 23일 토마스 제퍼슨, 조지 워싱턴도 참여한 버지니아 의회에서 Patrick Henry가 나에게 자유를 달라 그러지 않으면 죽음을 달라 하는 연설을 하여 독립운동의 불길을 붙이다. 자유는 생명 만큼 귀한 것이다. Freedom is not free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피를 흘리고 싸워 영국의 식민에서 해방하여 자유를 얻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은 1941 1 6일 국회 연두 교서에서 미국의 네가지 기본적 자유 곧 언론 자유, 예배 자유, 가난에서 자유, 두려움에서 자유를 말하다. 이런 자유를 누리는 것이 감사하나 지금도 우리는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
사람에게 욋적인 자유는 있을 수 있으나 속으로 얽매는 것이 많이 있다. 대학 때 읽은 소설 인간의 굴레라는 작품이 있다. Of Human Bondage Somerset Maugham 필립이란 주인공, 그는 부자집 아들로 태어났으나 절름발이였고 부모가 일찍 죽어 큰 유산을 받고 목사인 삼촌의 양육을 받다. 엄한 신앙 규칙을 따르며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학교 공부를 하는데 성적은 좋으나 절름발이로 많이 놀림과 따돌림을 당한다. 교회의 엄한 가르침과 실제 생활이 다른 것을 보고 회의를 가지며 독일에 가 철학을 공부하여 자기를 찾고자 하는데 신앙을 버리고자 하나 대신할 다른 것을 찾지 못한다. 밀드레드라는 여인을 만난다. 매우 이기적이라 돈 많은 필립을 이용하나 필립은 그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에게 얽매인다. 이 일 저 일을 하다 실패, 의사가 되고자 의대에 다니며 유산을 투자한 것이 파산하여 가난을 처음 맛 보며 그 때 가진 것의 고마움을 안다. 결국 사라라는 평범한 사람을 만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평범한 삶을 살면서 많은 성공보다 실패를 받아드리는 것이 행복이라 한다. 중요한 것은 인간은 자유를 원하나 굴레를 쓰고 사는 것이다. 재산 건강 종교 사랑 가정 직업 모두가 중요한 것이나 그것이 자유라기 보다는 굴레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오늘 취미 약물 등 즐기는 것에서 시작하여 중독, 굴레가 되어 그로 인해 생명을 잃는 자도 많이 있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자유를 어떻게 얻나? 많은 고생과 실패를 통한다. 인도의 간디는 계급제도 아래 눌림 받는 자의 자유를 위해 30년 이상 투쟁하며 무저항 운동을 이끌다. 그가 이루고 싶은 것은 정치적 사회적 자유와 함께 인간의 냇적 자유다. 냇적 자유는 하나님 앞에서 오는 영적인 해방임을 아나 그는 아직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게서 멀리 있다고 고백하며 고민하였다. 그가 찾는 자유가 참으로 먼 것을 실감하다.
외적인 자유와 냇적인 자유를 누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최근 알라바마의 Roy Moore상원 중진 위원, 미네소타의 Al Franken상원의원이 성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있다. Franken 의원은 사과를 하였으나 무어 의원은 부인하는데도 1212일 그의 재선 출마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받고 있다.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일을 저지르나! 냇적인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속에 있는 죄성의 종이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속에는 음난 욕심 교만 등 죄성이 있다.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우리가 본래 죄의 종이라 한다. 죄성이 우리 속에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배하고 왕노릇하니 우리는 그것의 종이 되어 그가 이끄는대로 끌려가며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아무도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의 부정 불법을 행하며 부끄러운 열매를 맺어 결국은 파멸과 죽음에 이른다. 인간이 겪는 굴레의 현실이다.

여기 좋은 소식 복음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굴레를 끊어버리는 일이다. 예수께서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 죄인 가운데 오시어 육체와 정서, 관계의 굴레를 대신 담당하시다. 이 굴레의 근본이 바로 죄라 주께서 그 죄의 값을 치르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우리 모든 죄를 풀어주시는 일을 하였다. 우리가 잘 하여서가 아니라 오직 그의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어 하신 일이다. 오늘 우리가 주께서 제정하신 성찬을 행한다. 유월절 만찬을 하시다가 떡을 드시고 감사기도를 하신 후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다. 이를 먹으며 나를 기억하라. 식후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이 잔은 너희 죄를 사하려고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이를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 하시다. 주님은 자기 몸을 주시며 감사기도를 드리고 자기 피를 주시며 감사기도를 하였다. 자기 생명을 주시며 감사하였다. 자기 생명을 바쳐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 모든 죄의 형벌과 값을 치르심으로 그를 믿는 자는 죄 용서와 자유함을 받고 하나님 앞에서 생명을 얻게 하되 영생을 얻는 길을 여셨다. 온 인류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 주셨으니 그것이 감사한 일이라 이로서 자기를 드리며 감사 기도를 하신 것이다.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죄 용서와 자유, 생명 주시기 위하여 은혜로 하신 일이다. 이를 받아드리기만 하면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여 의롭다 하시고 거룩하게 하여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6:23) 십자가에 죄용서와 자유, 생명이 있다.
바울은 죄와 죽음의 고통에서 승리: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벤허 영화에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때 멀리서 나병환자가 친구들이 예수로부터 고침 받은 것을 생각하여 그 십자가를 바라보자 그 순간 자기 몸의 병이 사라지는 것을 보다. 그는 병의 굴레에서 놓여 자유함을 얻다. 천로역정에서 기독도가 세상 살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나 십자가를 바라보는 순간 모든 짐이 풀림을 보다. 내가 아는 홈레스 마약 중독자가 오래 고난을 겪다가 주의 십자가 복음을 듣고 그를 바라보는 순간 자유함을 얻어 새 사람이 된 자가 여럿 있다. 어떤 굴레가 있고 얽매여 종으로 지난다 해도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 보는 순간 자유함을 가진다. Michael Robert, At the Cross십자가에서. 십자가에서 처음 빛을 본 때 내 마음의 짐이 굴러갔도다 십자가에서 믿음으로 빛을 받았으니 이제 온 종일 행복하도다 Minnie Steele찬송: 나는 언제 내 짐이 굴러간지를 기억한다. 밤 낮 수년간 짐을 지고 다녔다. 내가 주님을 찾고 그의 말씀대로 믿었더니 바로 내 모든 짐이 굴러 갔도다 굴러갔도다 굴러 갔도다 내 모든 짐이 굴러가 기쁘도다. 예수 안에서 십자가를 통하여 참 자유를 얻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이보다 큰 감사가 있을까?

우리가 주를 믿음으로 세례 받고 예수의 죽음에 참여하여 나의 모든 죄성과 이로 인한 모든 죄의 실상을 십자가에 못박아 처리하고 부활하신 주와 연합하여 주님의 새로운 생명을 입게 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고후5:17). 주의 사람이 되면 죄가 더 이상 왕노릇하지 못하고 예수의 은혜가 우리를 덮고 다스림으로 주께서 우리 왕이 되심을 알게 된다. 그가 나의 주요 나의 왕이라 고백하고 그를 나의 왕으로 모시면 죄의 세력이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고 이끌지 못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우리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한다 (요일5:18). 이제는 육체가 원하는대로 살지 않고 주께서 원하시는대로 살게 된다. 주께 속한 주의 종이 된 것이다. 우리 스스로 자유로 선택한 것이다. 생명을 위한 선택이다.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북쪽의 어떤 사업가가 남쪽을 여행하다가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팔고 사는 것을 목격하다. 노예를 가운데 세우고 입찰로 경매를 한다. 나이 남여 건강 상태 등을 점검하고 값을 정한다. 한 여자 노예를 입찰한다. 50 100불 돈이 올라간다. 350불까지 올라간다. 사업가가 400불을 걸었다. 아무도 더 이상 부르지 않는다. 낙찰이 되다. 그가 돈을 지불하고 그를 샀다. 노예 시장에서 그를 건져 내었다. 그 여인은 이전 주인에게서 떠나 이제 새로운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어떤 사람일지 모른다. 주인이 호텔에 가서 저녁을 잘 먹게 하고 하룻밤을 자게 한다. 그리고 아침을 먹게 한 후 두툼한 봉투를 건네 주며 이제 너는 자유다. 여기 네가 한 동안 살 수 있는 돈을 넣었으니 가서 새로운 삶을 살아라 그에게 자유를 주었다. 그 순간 그 여인은 그 사업가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하다고 하며 말한다. 지금까지는 내가 자유 없는 노예로 주인을 섬겼지만 이제 내가 자유인으로 당신을 내 주인으로 평생 섬기며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는 자유를 가진 종으로서 사업가를 새롭게 섬기며 살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주님을 향한 태도다. 1970년대 가수 Bob Dylan Gotta serve somebody 누군가를 섬겨야 해. 당신이 영국이나 프랑스의 대사가 되거나, 놀음을 하고 싶거나 춤을 추고 싶거나, 세계 중량급 권투 선수가 되거나 패물을 주렁 주렁 찬 사교계 명사일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당신은 누군가를 섬겨야 하리라, 예 정말, 누군가를 섬겨야 하리라 그것이 마귀이든지 아니면 그것이 주님이든지 당신은 누군가를 섬겨야 하리라. 우린 누구를 섬기나?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만 아니라 우리의 왕이시다. 그는 왕으로서 우리를 마귀와 죄악의 세력을 정복하고 우리를 구하여 참 자유를 주신다. 아들이 자유케 하면 참으로 자유한다. 진리 안에서 자유를 가진다. 다른 누가 줄 수 없는 자유다. 그것은 뺏길 수 없는 자유다. 예수께서는 우리 왕으로 그를 따르고 믿는 자에게 참 자유,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진다. 일시 누리는 생명이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의 생명을 누린다. 이보다 더 감사한 것이 있나? 가장 큰 감사는 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 기쁨 그리고 영생을 얻는 것이다. 이를 누리기를 바란다. 참 자유와 생명,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주신다. 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며 그가 나의 왕임을 받아 드리는 이 성찬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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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27, 2017

자기를 주는 감사 Thanks of Giving Self

자기를 주는 감사   Thanks of Self Giving   이종형
감사절을 맞아 많은 감사를 한다. 우리가 받아 누리는 것, 우리가 겪는 어려움과 고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은혜 등에 감사를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주는 것으로 감사를 가진다. 가족이나 다른 이에게 선물을 할 때 선물을 줄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섬기며 나누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시어 평소 죄인을 찾아 가르치고 치유하고 섬기며 기쁨으로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마지막 제자들과 만찬을 하면서 떡을 가져 감사 기도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22:19). 식후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6:27,28) 하시다. 떡과 잔으로 만찬을 하면서 감사 기도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다. 주님은 떡을 찢기는 자기 몸이라 잔을 쏟아 붓는 자기 피라 하시며 자기를 깨뜨리고 생명을 주신다고 한다. 주님은 의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죄와 죽음의 심판을 받고 있는 죄인, 하나님과 원수되어 있는 악한 자를 위하여 자기 몸과 생명을 주신다 (5:7,8,10). 그러면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린다. 자기를 주시되 희생하여 자기를 주시며 감사한다. 어떻게 그런 감사를 할 수 있을까?

1)하나님께서 그를 보낸 목적을 피하지 않고 이루심이다. 하나님은 저희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가 오신다고 말씀하셨고 예수님 자신도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함이라 하시다 (10:45).  보통은 살기 위하여 오셨지만 주님은 죽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셨다. 그것을 이루시는 것이 감사한 일이다.
2)자기 생명을 버림으로 많은 사람의 생명을 얻게 되니 그것도 귀하고 감사한 일이다. 한 번 죽는 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지만 죽음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살리고 구원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는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이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다. 자기가 한 알의 밀과 같이 죽임을 당하여 믿는 모든 사람을 멸망에서 구하여 생명을 얻게 하니 감사한 일이다. 감자를 심을 때 감자를 여러 개로 쪼개어 심으면 하나 하나가 감자로 자라나고 여러 감자가 달린다. 하나의 감자가 죽음으로 감자 밭을 이룰 정도이니 그것을 본다면 감사한 일이 아닐까?
3)예수께서는 자기 몸인 떡과 자기 피인 잔을 주시며 받아 먹고 마시라 하신다. 주의 몸과 피를 받아 들이면 그것이 우리 몸에 퍼지고 우리는 주의 생명으로 살며 주의 지체로 주의 사역을 하게 되니 주님은 죽으시지만 주의 백성을 통하여 살아 일하고 계시니 감사한 일이 아니겠나? 온 세상에서 성찬에 참여하여 주의 떡과 잔을 받는 자는 모두 주께 접붙임을 당하여 주의 몸의 지체가 되니 주님은 온 세상에 그만큼 퍼져 나가는 것이니 감사하다.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살려고 하면 자기 생명을 잃고 자기 생명을 잃으면 얻는다 하시며 우리에게도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지고 따르라 하신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복이 있다 하신다(20:35). 받기를 좋아하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나를 드리고 희생하여 다른 생명을 살릴 수 있을까! 그것이 우리의 과제로 주어지고 있다.